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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상처투성이인 남자
"여보! 쟨 그냥 도둑이에요!" 심옥란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는 동시에 분노로 끓어올랐다. "당장 경찰을 불러요!"
윤여름은 늘 그렇듯, 가식적인 태도로 나섰다. "아빠, 엄마,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지 마세요. 어쩌면 단순한 오해일 수도 있잖아요. 나래 언니가 모르고 팔찌를 가방에 넣었을 수도 있고요. 분명히 그런 의도는 아니었을 거예요."
"뭐? 그런 의도가 아니야? 그 팔찌를 모르고 가방에 넣었다는 걸 믿으라고? 이건 그냥 보통 팔찌가 아니야. YUN이 직접 디자인한 작품이고, 예술품이라고! 세상에 하나뿐인 건데, 그걸 얘가 모를 리 없잖아. 얘는 아주 얼굴에 욕심이 써 있어. 내가 그래서 걱정했던 거야. 우리가 아무리 오래 키웠어도 본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경멸이 가득한 심옥란의 말은 채찍처럼 날카로웠다.
"엄마, 그냥 넘어가세요." 윤여름은 일부러 부드러운 어조로 심옥란을 말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윤나래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입술에는 희미한 동정의 미소가 떠올랐다. "언니가 그렇게 갖고 싶어 하는데, 그냥 줘버려요. 어차피 이제 다시 볼일도 없을 테니까요. 물론, 이 팔찌가 저한테 특별하긴 해요. YUN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라, YUN의 작품은 제게 정말 소중하거든요."
윤나래는 아무 말없이 이 짜고 치는 고스톱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 모든 몸짓은 마치 연극 대본처럼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당장이라도 연기에 도전하면 아주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연기력이다. 이들을 지켜보던 윤나래는 그 황당함에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녀는 차분히 몸을 숙여 팔찌를 집어 들었다. 팔찌가 조명 아래에서 반짝였다. 그리고 아무 말없이 천천히 윤여름에게 다가가 팔찌의 잠금 부분을 눈앞에 들이밀었다. "잘 봐." 윤나래가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새겨진 글자를 읽어봐."
윤여름의 미소가 흔들렸다. 그녀의 자신감도 미소와 함께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윤여름이 눈을 가늘게 뜨며 팔찌에 새겨진 글자를 들여다보았다. 우아하게 새겨진 이니셜 'Y.R'이 또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Y.R'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윤여름이 당황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YUN이 만든 작품들 다 꿰고 있는 거 아니었어? 그럼 잘 알겠지. 이 시리즈는 이니셜 각인이 옵션인 디자인이야. 모든 팔찌가 주문한 사람이 원하는 이니셜이 각인된 채로 만들어진다고. 그리고 이건 한정판이야. 모든 작품이 고유의 시리얼 넘버로 등록돼 있지. 하나뿐인, 절대 복제 불가능한 작품." 윤나래가 입술을 말아 올리며 냉소를 지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조롱이 담겨 있었다.
윤여름이 대답도 하기 전에, 계단에서 바삐 내려오는 발소리에 방 안의 침묵이 깨졌다. 하인이 손에 다른 팔찌를 들고 내려왔다.
"여름 아가씨, 찾으시는 팔찌가 이건가요?"
방 안은 순간 얼어붙었다. 모두의 시선이 하인의 손에 들린 팔찌로 향했다.
윤여름은 곧바로 얼굴에 미소를 띠며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그녀는 과장되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여기 있었네! 여기에 두고 찾고 있었다니, 내가 무슨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야."
윤여름은 억지로 밝은 목소리를 냈지만, 속으로는 아주 당황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분명히 윤나래의 가방에 팔찌를 넣었다고 생각했다.
윤나래는 싸늘한 눈빛으로 윤여름을 바라보며 입가에는 멸시가 담긴 미소가 스쳤다. "윤여름, 아직도 내가 네 팔찌를 훔쳤다고 생각하는 거야? 정말 경찰 부를 거야?"
윤여름은 순간 흔들렸지만, 재빨리 마음을 다잡으며 대답했다. "이 팔찌, 엄청나게 비싼 건데. 언니가 어떻게 이 팔찌를 가지고 있는 거야? 설마..." 윤여름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설마 조금... 부끄러운 방법으로 산 건 아니지? 요즘 여자애들 돈만 많이 준다고 하면 뭐든지 하잖아."
이 말을 들은 윤나래가 냉소를 지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에는 경멸이 가득했다. "그런 쪽에 대해서 아주 잘 아는 것 같네? 말해 봐. 혹시 직접 겪은 경험에서 나온 말인가? 윤씨 가문에 돌아오기 전에 그런 식으로 일한 거야? 그래서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거야?"
윤여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입술을 실룩거리며, 분노에 말을 잇지 못했다. "지,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거야?"
"윤나래! 이 버릇없는 계집애 같으니!" 심옥란이 소파 팔걸이를 주먹으로 내려치며 분노에 찬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어디 감히 여름이한테 그런 말을 해? 당장 이 집에서 나가! 다시는 우리 가족 앞에 나타나지도 마!"
윤나래는 더 환하게 웃었다. "무릎 꿇고 빌어도 다시는 이 집에 발도 들이지 않을 거예요." 윤나래가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가방을 어깨에 메고 문 쪽으로 걸어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이다. 윤씨 가문과 그들의 가식적인 행동들은 이제 그녀의 삶에서 완전히 과거가 되었다.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감이 들 뿐이었다. 이제 연극은 모두 끝났다.
"잘 가라! 이 고마운 줄도 모르는 계집애야!" 심옥란은 뒤에서 독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빈정거렸다.
그녀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이제야 집안에서 성가신 짐 하나를 덜어낸 기분이었다.
윤나래는 차가운 저녁 공기를 가르며 저택을 떠났다. 점점 멀어지는 저택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렸고 그녀는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
"나래 누나, 들었어요. 결국 쫓겨난 거예요?"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이태호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됐어." 윤나래가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더니, 이태호가 굳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인간들 진짜 뻔뻔하네요."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딱 '좋을 때만 친구.라는 거죠. 누나 덕분에 성공한 줄도 모르고. 양심도 없는 거죠.."
"그만해." 윤나래는 그를 진정시키려는 듯 담담히 말을 잘랐다. "내 친부모에 대한 소식은?"
윤홍걸은 모든 것이 병원의 실수였다고 주장했다. 아이를 고의로 버린 게 아니라 단순한 착오였다는 얘기였다. 윤나래는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해야만 했다. 그 진실을 찾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친부모를 꼭 만나야 했다.
이태호가 크게 한숨을 쉬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진행 중이에요. 곧 구체적인 결과가 나올 거예요."
"그래." 윤나래는 간결하게 대답하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큰길로 접어들려는 순간, 찬 바람 속에서 어디선가 날카로운 금속 냄새가 스쳐 지나갔다.
걸음을 멈춘 그녀는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 등에 느껴지는 섬뜩한 기운을 감지했다.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그의 흰 셔츠는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고, 가슴과 손에는 핏자국이 선명했다. 그는 점점 힘이 빠지는 듯 느리게 걷기 시작했고, 어딘가에 기대려 하는 듯 위태롭게 비틀거리고 있었다.
"도망치지 마, 이 비겁한 놈아! 얌전히 있으라고!" 그의 뒤에서 위협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나래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피투성이 남자를 사냥하듯 뒤쫓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느리고 침착했지만, 의도는 너무도 분명했다.
피투성이가 된 남자, 최시훈은 휘청거리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숨소리는 거칠었지만 그의 목소리만큼은 놀랍도록 단단했다. "누구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거지?"
"닥쳐! 얘긴 끝났어." 무리 중 한 남자가 소리쳤다. 그는 동료들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이제 끝내자."
"잠깐." 다른 한 남자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옆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 누가 또 있어."
모든 시선이 일제히 윤나래를 향했다.
이런. 타이밍도 아주 기가 막히네. 오늘 하루는 이미 최악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런 불청객들까지.
남자들이 적의를 품고 그녀를 바라보는 순간, 윤나래는 깨달았다. 이들이 목격자를 살려둘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그녀를 이런 상황에 빠뜨린 원인은 바로 앞에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비틀거리는 남자.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커다란 남자가 차가운 미소를 띤 채 앞으로 나섰다. 그는 윤나래를 위아래로 훑으며 뚫어져라 쳐다봤고, 입가에는 불쾌한 웃음이 번졌다.
그의 주위에 있던 남자들도 낄낄거리며 비열한 웃음을 터뜨렸다.
"겁먹지 마, 아가씨." 그들 중 한 명이 윤나래를 향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이 놈만 처리하고 나면, 아주 잘 모셔줄게.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윤나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녀의 차갑고 흔들림 없는 눈빛이 그들의 시선을 꿰뚫고 있었다. 긴장된 분위기를 가르며 그녀는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꺼져."
남자들은 비웃으며 재밌다는 듯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지만, 이내 이들의 웃음은 얼어붙었다. 희미한 은빛의 무언가가 어둠 속에서 반짝였기 때문이다.
윤나래의 손에는 길고 매끈한 바늘이 쥐어져 있었다. 바늘 끝이 빛을 반사하며 서늘하게 빛났다.
그녀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눈빛은 살기 어린 냉혹함으로 차 올랐다. 그들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윤나래가 먼저 움직였다. 우아하고 재빠르게 손을 들자 바늘은 어둠 속을 가르며 날아가 정확히 목표를 맞췄다.
목, 어깨, 다리. 바늘은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이 박혔다. 비명 한 번 내지르지 못한 채, 남자들은 차례로 바닥에 쓰러졌고 손에 쥐고 있던 무기들도 힘없이 떨어졌다. 조롱으로 가득 찼던 남자들의 자신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든 일이 끝났을 때야 비로소 남자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깨달았다.
간신히 몸을 버티고 서 있던 최시훈은 넋이 나간 듯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 여자는 대체 누구지?
그녀의 움직임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하고 계산되어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본 어떤 것보다도 놀라웠다. 이 여자의 솜씨는 단순히 숙련된 수준이 아니었다. 아주 완벽했다.
챕터 목록
총 25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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