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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서아린 POV:
한 시간 후 강지혁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의 목소리는 세상을 정복한 남자의 만족감으로 가볍고 활기찼다.
“자기야. 박 변호사한테 서명했다는 얘기 들었어. 날 위해, 우리를 위해 해줄 줄 알았어.”
우리를 위해. 그 말은 혀 위에서 쓴 약처럼 느껴졌다. 그는 마치 내가 케이블 TV 회사를 바꾸는 데 동의한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우리 결혼을 해소한 것이었다.
“축하하는 의미에서 ‘더 탑클라우드’에 예약했어.” 그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가득 찼다. “우리 단골집. 내가 좋아하는 그 빨간 드레스 입고 와. 8시에 봐.”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다.
나는 갔다. 빨간 드레스를 입었다.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도시의 불빛이 떨어진 별들의 융단처럼 아래에서 반짝였다. 이곳은 그가 처음으로 회사 시드 펀딩을 확보했다고 말해준 곳이었다. 바로 이 테이블 너머로 내 손을 잡았을 때 그의 손은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이제 그 손은 하얀 테이블보 위에 무심하게 놓여 있었다. 나와는 멀리 떨어진 세상처럼. 그는 IPO, 시가총액, 스톡옵션, 다음 주에 찍기로 한 포브스 코리아 표지에 대해 활기차게 이야기했다. 그는 초신성이었다. 너무 밝게 타올라서 자신의 불꽃에 삼켜지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나는 와인 잔을 들었다. “당신을 위해, 지혁 씨.” 내 목소리는 놀랍도록 안정적이었다. “당신이 원했던 모든 걸 가졌네.”
그는 활짝 웃으며 내 잔에 자기 잔을 부딪쳤다. “우리를 위해, 아린아. 우리가 원했던 모든 걸 가졌지.”
그는 내 건배사에 담긴 마지막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 눈 속의 작별 인사를 보지 못했다.
나는 와인을 한 번에 길게 들이켰다. 비싼 빈티지 와인이 입안에서 재처럼 느껴졌다. 나를 위해, 서아린. 이 술은 너를 위한 거야. 너의 자유를 위해.
웨이터가 우리 접시를 치운 후, 강지혁은 얇은 서류철을 테이블 너머로 밀었다. “이건 당신 거야.” 그는 관대한 어조로 말했다. “작은 감사의 표시야. 내 개인 주식의 10%. 상장되면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거야. 다시는 돈 걱정 안 해도 돼.”
내 희생, 내 젊음, 내 미래 전체가 주식 포트폴리오로 요약되었다. 퇴직금.
쓴웃음이 터져 나오려 했지만, 나는 그것을 삼켰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스카이라인을 눈으로 좇았다.
그의 전화가 울렸다. 비서에게서 온 문자였다. 그는 그것을 흘끗 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젠장. 윤세라네. 아래층 호텔 바에 있는데, 금융감독원 서류 관련해서 급히 논의할 게 있대.” 그는 이미 재킷을 걸치며 일어섰다. “미안해, 자기야. 일이 부르네. 여기서 마무리해. 차는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는 내 뺨에 키스하기 위해 몸을 숙였다. 의례적이고 무심한 제스처였다. 그러고는 사라졌다. 반짝이는 불빛과 피 묻은 돈으로 가득 찬 서류철만 남겨두고.
나는 머물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서류철을 테이블에 두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 바 근처의 한적한 공간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지혁 씨, 하필 오늘 밤에 그녀와 저녁을 먹어야 했어?” 윤세라의 목소리에는 조급하고 소유욕 넘치는 어조가 섞여 있었다.
“마지막이었어, 약속할게.” 강지혁의 목소리는 낮고 달래는 듯한 속삭임이었다. “서류에 서명했어. 주식 양도 서류 주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해야 했어. 이제 다 끝났어. 완전히.”
“잘했어. 우리가 더 이상 몰래 만나지 않아도 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3년이나 됐잖아, 지혁 씨. 당신의 더러운 작은 비밀이 되는 거 지쳤어.”
3년.
그 숫자는 물리적인 타격처럼 나를 덮쳤다. 3년간의 그의 거짓말, 그의 안심시키는 말, 이 모든 것이 일시적이라는 그의 약속들.
음식 쟁반을 든 웨이터가 주방에서 나와 그들의 테이블로 향했다. 쟁반 위에는 사프란 리조또를 곁들인 구운 가리비 요리가 있었다. 내가 방금 먹은 것과 똑같은 요리였다. 강지혁이 나를 위해 주문하며 셰프의 특선 요리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는 우리 둘에게 똑같은 식사를 주문했다. 나는 심지어 다른 선택을 할 가치조차 없었다. 나는 작별 인사의 복사본이었다.
메스꺼움과 현기증이 밀려왔다. 나는 뒤로 비틀거리며, 몸을 지탱하기 위해 벽을 더듬었다. 내 손가락이 받침대 위의 장식용 유리 조각상을 스쳤다.
세상이 기울었다.
고통을 느끼기 전에 역겨운 충돌 소리를 들었다. 조각상은 대리석 바닥에서 산산조각 났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내 손바닥을 베었다. 어둡고 충격적으로 붉은 피가 즉시 솟아나 깨끗한 흰색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저게 무슨 소리야?” 윤세라가 묻는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 그들은 복도 끝에 나타났고, 부드러운 조명에 얼굴이 비쳤다. 강지혁은 피 흘리는 내 손을 움켜쥔 나를 보고 눈이 커졌다.
찰나의 순간, 옛날의 강지혁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공황. 걱정. 그는 나를 향해 한 걸음 다가왔다. “아린아? 무슨 일이야?”
하지만 그때 그는 윤세라의 날카롭고 의문스러운 시선을 포착했다. 그는 얼어붙었다.
“지혁 씨, 이 여자 누구야?” 윤세라가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눈은 내 평범한 빨간 드레스, 충격받은 내 얼굴, 그리고 내 발치에 고인 피를 노골적인 경멸로 훑어보았다.
강지혁의 얼굴은 텅 비었다. 잠시 스쳐 지나갔던 걱정은 사라지고, 차갑고 무서운 무관심의 가면으로 바뀌었다. 그는 윤세라의 요구하는 얼굴과 피 흘리는 내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그는 선택을 했다.
그는 윤세라에게 다시 몸을 돌리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모르는 여자야.” 그는 평평하고 무시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서투른 손님인가 보지. 가자. 호텔에서 처리할 거야.”
모르는 여자야.
그 말들은 내 마음의 갑작스러운, 울리는 침묵 속에서 메아리쳤다. 내 인생의 10년, 사랑과 희생의 10년이 단 한 번의 잔인한 문장으로 지워졌다. 그는 나를, 그의 아내를, 그에게 모든 것을 준 여자를 보고, 나를 낯선 사람이라고 선언했다.
그저 낯선 사람.
그는 윤세라를 안내하며 나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팔은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고, 내 존재의 불쾌함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했다.
내 다리에 힘이 풀렸고,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의 통증은 그가 방금 내 가슴에 찢어놓은 거대한 상처에 비하면 둔하고 먼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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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목록
총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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