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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나는 이환과 함께 사는 아파트로 들어섰다. 그는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잘생기고, 아무런 근심도 없는 얼굴이었다.

“일찍 왔네.” 그가 돌아서서 내게 키스하며 미소 지었다. 나는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고, 그의 입술은 내 뺨에 닿았다.

“피곤해서.” 나는 그가 긴 당직 후에 으레 기대할 만한 변명을 중얼거렸다. “오는 길이 힘들었어.”

“우리 아기, 고생했네.” 그가 나를 감싸 안았다. 그의 포옹은 감옥처럼 느껴졌다. 모든 말, 모든 손길이 거짓이었다. “내 회의는 너무 늦게 끝났어. 계약 성사된 거 축하도 할 겸… 그리고… 벌써 5년이네.”

나는 조심스럽게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뭐가 5년인데?”

“세라가… 떠난 지.” 그는 가짜 동정심이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그 애가 한 짓 때문에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그래서 말인데, 너랑 부모님 모시고 조용히 저녁 식사라도 할까 해서. 기념으로. 우리가 얼마나 잘 이겨냈는지 축하하는 의미에서.”

그 대담함에 숨이 막혔다. 그들은 나를 중심으로 쌓아 올린 거짓말의 기념일을 축하하고 싶어 했다. 차갑고 날카로운 분노가 고통을 가르고 솟구쳤다.

“그거… 세심한 생각이네, 이환 씨.” 나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좋아. 부모님께 말씀드릴게. 네가 그 일에 대해 마음 편해진 걸 아시면 정말 기뻐하실 거야.”

그는 나를 너무나 확신했고, 자신의 기만에 자신만만했다. 그는 휘파람을 불며 출근했고, 나는 이제 감옥처럼 느껴지는 이 차갑고 아름다운 아파트에 홀로 남았다. 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곧장 그의 서재로 향했다.

서재는 늘 잠겨 있었다. 그는 민감한 업무 서류 때문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그 말을 존중했다. 이제는 그곳이 그의 비밀을 담은 금고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나는 의사다. 약점을 찾는 법을 안다. 그리고 나는 이환을 알았다. 그의 비밀번호는 복잡하지 않았다. 오만했다. 그가 내게 청혼한 날짜였다.

나는 날짜를 입력했다. 자물쇠가 딸깍, 하고 열렸다.

방은 거대한 마호가니 책상이 중심을 잡고 있는, 티 없이 깨끗한 공간이었다. 나는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잠긴 서랍 안에서 작고 가죽으로 장정된 사진첩을 발견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열었다.

우리 사진이 아니었다. 이환과 세라, 그리고 그들의 아들 레오의 사진으로 가득했다. 공원에서, 해변에서, 촛불 꽂힌 케이크와 함께 생일을 축하하는 모습들. 완벽하고 행복한 가족. 한 사진에는 나의 부모님도 함께 있었다. 어머니는 레오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었고, 아버지는 세라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그들은 그 도둑맞은 순간에, 나와 함께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해 보였다.

증거는 차고 넘쳤지만, 나는 더 많은 것이 필요했다. 나는 그의 노트북으로 향했다. 비밀번호는 같았다. 그의 파일들은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개인’이라는 폴더를 찾았다. 그 안에 또 다른 폴더가 있었다. ‘L’.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레오의 첫걸음마 영상. 첫 단어들. 이환이 아버지로 기재된 출생증명서 스캔본. 그리고 ‘재무’라는 하위 폴더.

나는 그것을 클릭했고, 피가 차갑게 식었다. 내 부모님, 서진 그룹의 서정훈 회장과 이혜경 여사의 공동 계좌에서 유령 회사로 매달 송금된 내역이 있었다. 액수는 어마어마했다. 5년 동안 수십억 원. 각 송금 내역의 메모란은 똑같았다. ‘K.S.R. 생활비’.

그들은 이 일을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금을 댔다. 그들이 내게 했던 모든 다정한 말, 모든 비싼 선물, 모든 공허한 가족의 약속은, 그들이 나를 망치려 했던 여자와 내 약혼자가 그녀와 함께 키우고 있던 비밀 가족을 부양하는 데 쓴 바로 그 돈으로 지불된 것이었다.

그들의 사랑이라는 환상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거래였다. 나는 세라에 대한 그들의 죄책감을 달래기 위해 지불된 대가였다.

나는 모든 것을 작고 암호화된 USB에 복사했다. 모든 사진, 모든 영상, 모든 은행 거래 내역서. 파일이 전송되는 동안, 내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탐정 놀이 재밌어? 아무것도 못 찾을걸. 그들은 날 사랑해, 서아린. 언제나 그랬어. 넌 그냥 편리한 대체품이었을 뿐이야.”

세라였다. 서재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둔 게 틀림없었다. 그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가 사진을 한 장 보냈다. 방금 내가 본, 내 부모님과 함께 찍은 그 가족사진이었다.

“우리 잘 어울리지 않아? 진짜 가족처럼.”

또 다른 메시지가 뒤따랐다. “이환 씨는 동정심 때문에 너랑 있는 거야. 그리고 네 부모님? 그냥 죗값 치르는 중이지. 넌 언제나 외부인일 거야. 보육원 출신에 어울리지 않는 애.”

그 조롱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동안은, 정말 그랬다. 나는 USB를 손에 꽉 쥔 채 책상에 기댔고,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내 그 슬픔은 다른 무언가로 굳어졌다. 차갑고 명료한 무언가로.

그녀는 틀렸다. 나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세상을 깡그리 불태워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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