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5007/coverbig.jpg)
/0/97788/coverbig.jpg)
제2화
깨어났을 때, 병실은 낯선 사람들로 가득했다. 흰 가운을 입은 젊은 의사들이 내 침대 주위에 서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누… 누구세요?” 쉰 목소리로 물었다.
안경을 쓴 젊은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저희는 레지던트입니다, 서이현 씨. 강주혁 교수님이 저희 멘토신데, 환자분 케이스를 참관해도 좋다고 하셔서요.”
그가 말을 잇기도 전에,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뭘 참관해? 부잣집에 빌붙는 법이라도 배우게?”
고개를 돌리자, 비웃는 표정의 여자가 보였다. 그녀 옆에는 수줍고 순진한 표정의 윤채아가 서 있었다.
“당신이 강 교수님 발목 잡고 있는 그 여자 맞죠?” 여자의 목소리에는 경멸이 뚝뚝 묻어났다. “옛날 집안 신세 진 거 하나로 사람을 옭아매? 죄책감 이용해서 덫을 놓은 거잖아.”
추악한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 수치심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몇 년 동안 나는 우성가의 보살핌을 당연하게 여겼다. ‘감사의 빚’이라는 것에 나 자신을 묶어두었다.
“당신만 아니었으면 강 교수님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랑 자유롭게 만났을 거라고요.” 그녀는 보란 듯이 윤채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교수님한테 어울리는 사람이랑. 빌어먹고사는 거머리 말고.”
윤채아는 고개를 숙였다. 뺨에 옅은 홍조가 어렸다. 억울하지만 착한 영혼의 전형적인 모습. 그 광경에 속이 뒤틀렸다.
다른 레지던트가 거들었다. “분명 당신 엄마가 시킨 짓일 거야. 아버지 죽자마자 우성가에 빌붙어서 부잣집 사위 하나 물려고 했겠지.”
“그러게, 완전 계략꾼이네.”
그들은 비웃고 떠들어대며, 그저 내가 행복하기만을 바랐던 엄마의 기억을 더럽혔다.
그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그만해.” 나는 몸을 일으키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엄마 함부로 말하지 마.”
분노가 힘을 솟게 했다. 나는 엄마를 모욕한 여자의 뺨을 때리려고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순식간에 윤채아가 움직여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내 손이 그녀의 뺨에 닿았다. 세게 때린 건 아니었지만, 소리는 조용한 병실에 울려 퍼졌다.
윤채아는 뒤로 비틀거리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녀의 눈은 거짓된 충격으로 커져 있었다.
“서이현!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주혁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문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가 막 들어온 참이었다. 그는 뺨을 감싸 쥔 윤채아와 아직 손을 들고 있는 나를 보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성큼성큼 다가와 나를 침대로 거칠게 밀쳤다. 머리가 헤드보드에 부딪혔다. 그는 윤채아를 자기 뒤로 보호하듯 끌어당겼다.
“너 미쳤어?” 그가 내게 으르렁거렸다. 그의 분노가 뿜어내는 기세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가슴이 새로운 고통으로 아려왔다. 그는 단 한 번도 내게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
그는 윤채아에게 몸을 돌렸다. 목소리가 즉시 부드러워졌다. “괜찮아요? 다쳤어요?” 그는 더 이상 내게 보여주지 않는 다정함이 가득한 손길로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쓸었다. 그는 얼음찜질을 해주겠다며 그녀를 데리고 방을 나갔다.
다른 레지던트들은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고는 그들을 따라나갔다.
몇 분 후, 주혁이 돌아왔다. 그의 얼굴은 차갑고 딱딱한 가면 같았다.
“그녀에게 사과해.” 그가 명령했다.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침묵하며 반항했다. 그녀가 스스로 판 함정에 대해 사과할 생각은 없었다.
“내 말 안 들려?” 그의 목소리가 위험할 정도로 낮아졌다. “넌 우리 집안에서 너무 오냐오냐 자랐어, 이현아. 네가 원하면 아무나 때려도 되는 줄 알아?”
“그 사람들이 우리 엄마를 모욕했어요.” 내 목소리가 떨렸다. “윤채아가 일부러 그 여자 앞에 끼어들었다고요. 때릴 생각은 없었어요.”
주혁의 표정은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차가워졌다. “그럼 걔네가 틀린 말이라도 했어? 네가 내 발목을 잡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
세상이 멈췄다. 숨이 턱 막혔다. 그는 그들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이 이야기의 악당이라고 믿었다. 나를 짐 덩어리로 보고 있었다.
씁쓸하고 자조적인 미소가 내 입가에 번졌다. “알았어.” 내가 속삭였다. “사과할게.”
아픈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나와 그의 사무실로 천천히 걸어갔다. 복도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느껴졌다.
윤채아는 그의 사무실에 혼자 있었다. 그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 스친 승리감은 이내 부드러운 걱정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주혁이 내게 그의 사무실은 출입 금지라고 말했던 모든 순간이 떠올랐다. “일은 일이야, 이현아. 방해받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하곤 했다.
분명 그의 원칙은 그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가슴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나는 내 자존심, 내 존엄, 내 사랑을 삼켰다. “윤채아 씨.” 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그녀는 놀란 척하며 일어섰다. “아, 이현 씨, 제발 그런 말 마세요. 교수님 약혼자시잖아요. 제 사모님이신데. 제가 사과드려야죠.”
“그렇게 부르지 마.” 문가에서 주혁이 말했다. 그가 나를 따라온 것이었다. 그의 미간은 짜증으로 찌푸려져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가 나를 그의 아내라고 부르는 것을, 심지어 가식으로라도 원치 않았다.
내 부서진 마음의 마지막 조각이 먼지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윤채아는 얌전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더 조심할게요.” 그녀는 내게 몸을 돌렸다. “이현 씨, 용서할게요. 그냥 오해였잖아요.”
그녀의 관대함은 어떤 뺨보다 더 모욕적이었다.
“이제 가봐.” 주혁이 내게 무심하게 말했다.
나는 돌아섰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걸어 나왔다.
얼마 가지 못했다. 문을 지날 때, 복도를 급히 달려가던 누군가와 부딪혔다. 나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사무실 안에서 주혁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채아 씨, 괜찮아요? 놀랐죠?”
나는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 쓰러져 완전히 무시당했다.
마침내 둑이 터졌다. 눈물이 뜨겁고 소리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몸을 뒤흔드는 흐느낌을 참으려 입을 막았다.
몇 분 후, 주혁과 윤채아가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는 그녀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특별한 점심을 사주겠다고 했다. 그들은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내 옆을 지나쳐 갔다.
남은 입원 기간 동안, 나는 간호사들과 레지던트들이 강 교수님이 유망한 제자 윤채아에게 얼마나 헌신적인지에 대해 속삭이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들은 함께 학회에 참석했다. 그는 복잡한 수술을 직접 지도했다. 그는 매일 그녀에게 점심을 사주었다.
각각의 이야기는 새로운 상처였다. 그는 항상 나와 그런 것들을 하기엔 ‘너무 바빴다’.
심장이 체계적으로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 나는 말을 멈췄고, 반응을 멈췄다.
어느 날 밤,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평온함이 나를 덮쳤다. 그것은 완전한 끝에서 오는 평온함이었다.
나는 끝났다.
나는 그를 자유롭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도 자유로워질 것이다.
챕터 목록
총 20장
/0/88978/coverbig.jpg)
/0/76552/coverbig.jpg)
/0/42703/coverbig.jpg)
/1/106570/coverbig.jpg)
/1/115857/coverbig.jpg)
/1/129329/coverbig.jpg)
/1/129395/coverbig.jpg)
/1/129328/coverbig.jpg)
/1/129330/coverbig.jpg)
/1/131294/coverbig.jpg)
/1/131303/coverbig.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