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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침대 협탁 위에서 전화기가 거칠게 울렸다. 조용한 아파트 안에서 유난히 시끄러운 소리였다. 발신자 번호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끝났습니다.”
내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전화기 저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강 회장 사모님의 날카롭고 절제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놀랍네, 이서아. 그 애가 더 힘든 상대인 줄 알았는데.”
“세상과 다시 교류하기 시작했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단어를 골랐다.
“집중할 대상을 찾았거든요.”
혹은 사람을, 이라고 생각하며 목구멍으로 쓴물이 올라왔다.
“잘됐군.”
그녀는 단 한마디로 만족감을 드러냈다.
“내가 돈을 준 만큼의 일은 했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모님.”
그 말이 독약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파산 직전의 내 화실을 구해줬고, 나를 벼랑 끝에서 끌어내 줬다. 이것이 그 대가였다.
“잔금은 내일 아침까지 네 계좌로 들어갈 거야. 100억.”
그 액수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내 위치를 각인시키려는 의도였다.
“그 후에는, 그 애 인생에서 사라져. 네 자리를 알아야지, 이서아. 넌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어. 잊지 마.”
“잊지 않겠습니다.”
내 목소리는 의도했던 것보다 더 차갑게 나갔다.
“착하네.”
전화가 끊겼다.
나는 전화기의 검은 화면을 응시했다. 그녀의 거만한 말투가 귓가에 맴돌았다. 도구. 목적을 위한 수단. 나는 강씨 집안 사람들에게 그저 그런 존재였을 뿐이다.
돈을 받으면 사라지겠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강태준이나 그의 어머니를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전면 유리창으로 다가가 반짝이는 도시의 전경을 내다봤다. 아름답고 외로운 풍경이었다. 이 유리와 강철의 새장은 내 집이었지만, 단 한 번도 내 것이었던 적은 없었다. 곧, 나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전화기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문자였다.
`클럽 엘리시안. 10시. - K`
내 심장이 바보같이, 배신자처럼 쿵쾅거렸다. 강태준에게서 온 문자. 그는 문자를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만나자고 한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의심이 스며들었다. 왜 지금? 일주일 동안 떠난다고 말한 후에?
나는 망설였다. 내 안의 한 부분, 죽었다고 생각했던 어리석고 희망에 찬 부분이 가고 싶어 했다. 어쩌면 이게 그 순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가 마음을 바꿨을지도.
다른, 더 똑똑한 부분은 함정이라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나는 숨는 것에 지쳤다. 비밀로 남는 것에 지쳤다.
나는 거울로 걸어갔다. 단순하고 우아한 검은색 드레스를 입었다. 그가 좋아했던, 내 입술을 ‘완벽한 상처’처럼 보이게 한다던 빨간 립스틱에 손을 뻗었다. 내 손이 멈췄다. 나는 그것을 내려놓고 부드러운 누드 톤을 선택했다. 작은 반항이었다.
그는 항상 내가 화장을 최소한으로 했을 때 가장 예쁘다고, 내 본연의 모습이 자신을 끌어당긴다고 말했다. 이제 나는 그 이유를 안다. 그의 소프트웨어가 내 얼굴에 한채리의 얼굴을 덧씌우기 더 쉬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클럽 엘리시안은 베이스음과 반짝이는 조명으로 가득한 불협화음의 공간이었다. 공기는 값비싼 향수와 절박함으로 무거웠다.
VIP 라운지 입구에서 강태준의 사업 파트너 중 한 명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멈춰 세웠다.
“이서아 씨,”
그가 아는 체하며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훑어봤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밤이 아주 중요한 날이죠.”
그의 말투가 이상했다. 내 살갗을 소름 돋게 하는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나는 무거운 문을 밀고 들어갔다. 이곳은 음악 소리가 약간 줄어들고, 조명은 더 은밀했다. 그리고 거기에 강태준이 있었다. 푹신한 부스에 앉아 위스키 잔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옆에는, 그가 한 말에 웃고 있는 내 의붓여동생, 한채리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천사처럼 보이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눈부시게 빛났다. 내 검은색 드레스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그녀는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완벽하고 포식자 같은 표정이었다.
“서아야, 언니!”
그녀의 목소리는 거짓된 다정함으로 뚝뚝 떨어졌다.
“와줘서 정말 기뻐.”
내 피가 차갑게 식었다.
“태준 씨,”
내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왜 여기로 오라고 했어요?”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표정은 진심으로 혼란스러워 보였다.
“내가 부른 거 아닌데.”
한채리가 그의 팔을 토닥였다.
“에이, 태준 오빠도 참. 당연히 오빠가 불렀지. 내가 오빠 폰으로 보냈어. 우리 언니가 우리 같이 있는 거 보면 좋은 서프라이즈가 될 것 같아서.”
내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그녀의 눈에는 순수하고 꾸밈없는 악의가 가득했다.
“정말 사려 깊은 동생이네.”
테이블에 있던 누군가가 비웃었다.
“일하는 애까지 챙겨서 진짜를 보여주다니.”
“일하는 애 아니야.”
다른 사람이 약간 혀 꼬인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몸풀기용이지. 안 그래, 강태준?”
모든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강태준의 턱이 굳어졌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관심한 가면을 쓴 채 나와 한채리를 번갈아 볼 뿐이었다. 그의 침묵이 그 방에서 가장 큰 대답이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지 불과 몇 달 만에 아버지가 한채리와 그녀의 어머니를 집으로 데려온 날이 기억났다. 순진한 얼굴과 독기 어린 마음을 가진 한채리는 즉시 나를 적으로 낙인찍었다.
그녀는 피해자 연기의 전문가였다. 모든 상황을 비틀어 내가 악당이 되고 그녀가 상처 입은 당사자가 될 때까지. 새 아내에게 푹 빠진 약한 남자였던 아버지는 항상 그녀의 편을 들었다.
“서아야, 네가 좀 더 이해해야지.”
그는 말하곤 했다.
“채리는 예민하잖니.”
예민하다고. 그녀는 소시오패스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는 더 세련되어졌다. 그녀의 조종은 더 부드러워졌고, 거짓말은 더 그럴듯해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세련된 겉모습 아래에 있는 잔인한 소녀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부르지 마.”
나는 한채리에게 낮고 꾸준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자매 아니야.”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여자 중 한 명이 웃었다.
“어머, 까칠하네. 자기 분수를 잊었나 봐.”
강태준의 시선은 한채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그녀를 보는 방식… 그것은 내가 그 딥페이크 영상을 볼 때 그의 얼굴에서 봤던 것과 같은 집착의 시선이었다. 고통스럽고 아이러니한 아픔이 나를 꿰뚫었다.
내 가족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빠른 재혼. 내 집에서 내가 서서히, 체계적으로 지워져 간 과정. 나는 더 이상 그 집의 딸이 아니었다. 원치 않는 손님이었다. 마침내 가방 하나를 싸서 떠나던 날, 아무도 나를 막지 않았다. 나는 내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외톨이, 그들의 새롭고 행복한 이야기 속의 각주였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뒤로했다고 생각했다. 고통이 무뎌져 희미한 흉터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 강태준의 관심을 받으며, 내 인생을 의상처럼 걸치고 있는 한채리를 보니… 나는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테이블에 있던 누군가가 한채리의 곧 있을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유건우 씨네 집안이 대단하다던데. 유건우 그 사람이… 뭐, 좀 그렇긴 해도 천재라며.”
남자가 애매한 손짓을 했다.
한채리가 예쁘게 얼굴을 붉혔다.
“저희 아주 행복해요.”
나는 강태준의 손이 잔을 꽉 쥐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질투심으로 공기가 탁해졌다. 그가 나를 이용해 흉내 냈던 여자를 질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것은 내 고통에 대한 병적이고 뒤틀린 확인이었다.
“고등학교 때 너랑 강태준이랑 뭐 있지 않았어?”
여자 중 한 명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한채리가 가식적인 소리를 내며 웃었다.
“어머, 천만에. 태준 오빠랑 나는 항상 그냥 친구였어. 나한테는 친오빠 같은 사람이야.”
“그냥 친구.”
강태준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되뇌었다. 그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 나는 보답받지 못한 갈망의 세계를 보았다.
내 심장, 이미 산산조각 났다고 생각했던 그 심장이 조금 더 부서졌다.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들과 같은 방에서 숨 쉴 수 없었다.
“나 갈게.”
나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말했다.
나는 등을 곧게 펴고 고개를 든 채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 이것이 얼마나 아픈지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엘리베이터 홀에 도착했다. 버튼을 누르는 손이 떨렸다.
“벌써 가는 거야, 언니?”
한채리의 목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들렸다. 나는 그녀를 마주보며 돌아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열렸다. 작고 거울로 된 공간에 우리 둘만 남았다.
“그 사람 사랑해?”
그녀가 가볍고 조롱하는 어조로 물었다.
챕터 목록
총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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