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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새로운 희망
아일라 나는 차창에 이마를 기대었다. 차가운 유리가 피부를 찌르듯 닿았다. 다빈치 대학으로 향하는 길은 늘 그렇듯 북적거렸다. 학생들은 캐리어를 끌고 다녔고, 차들은 길게 늘어서 있었으며, 모두 세상이 끝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평소라면 나는 이런 혼란을 좋아했다. 새 학기의 첫날은 언제나 새 페이지를 펼치는 기분이었으니까.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 하지만 이번엔…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아침부터 뭔가가 내 안에서 빠져나간 것 같았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을 공기의 차가운 감촉조차 이 공허함에서 나를 끌어내지 못했다. “아가씨, 준비되셨습니까?” 운전기사 네이트의 목소리가 내 생각을 끊어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캠퍼스 주차장에 멈췄을 때, 사람들은 마치 자기 세상인 것처럼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가죽 재킷을 입고 있었고, 누군가는 바이크에 기대 서서 꼭 대학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보였다. 반면 나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강의실까지 가고 싶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상한 꿈을 꿨다. 늘 똑같은 꿈이었다. 차가운 강물. 내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작은 손.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한 이름을 속삭였다. 희망(Hope). 그 꿈을 꾸고 나면 언제나 심장이 미친 듯 뛰었고, 식은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 아이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항상 흐릿했다. 그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젯밤에도 마치 떨쳐낼 수 없는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붙었다. 그냥 새 학기 긴장감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정말로 내 일부가 사라진 걸지도 몰랐다. 나는 고급 건축학 수업 강의실로 들어갔다. 웃긴 건, 나는 건축학 전공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냥 교수님이 차분하고 분위기가 평화롭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양 수업으로 신청했을 뿐이었다. 지금의 나에게 딱 필요한 것 같아서.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팔을 괴기 위해 책 두 권을 쌓았다. 사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책은 방패 같은 역할이었다. 바쁜 척하면서 세상이 그냥… 나를 내버려 두길 바라는 마음. “여기 자리 비었어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짙은 갈색 머리카락은 일부러 헝클어뜨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흐트러져 있었고, 피부는 건강하게 그을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은… 은빛이 감도는 회색이었다. 날카로웠지만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그는 한쪽 팔에 큰 스케치북을 끼고 있었고,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묘하게 사람을 홀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내 옆에 앉았다. 몇 분 뒤, 교수님이 들어오기 전 그가 나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넌 아직도 줄기가 오른쪽으로 휘어진 꽃을 그리는 걸 좋아하네?” 내 심장이 그대로 튀어나올 뻔했다. 맥박이 미친 듯 빨라졌다. 마치 내 안 어딘가의 숨겨진 경보가 울린 것 같았다. “뭐라고요?” 내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작게 웃었다. “그냥 찍어본 거야.” 나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음… 맞긴 하네요. 원래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그렇게 뜬금없는 추측 자주 해요?” “가끔.” 그가 태연하게 말했다. “난 리버. 당신은?” “아일라.” 그의 손이 내 손에 닿는 순간, 무언가가 스쳤다. 따뜻함과 동시에 작은 전류가 팔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 피부가 저릿해져서 나는 급히 손을 빼며 노트북을 만지는 척했다. 조교가 들어온 뒤에도 나는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리버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떻게 그가 내가 어릴 때 하던 습관을 알고 있었을까? 마침내 와이어트 교수가 들어왔다. 중년의 남자였고, 희끗한 머리에 부드러운 말투를 가졌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는 ‘유기적 건축’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이야기를 하며 건축물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는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정말로. 하지만 또다시 생각은 강으로, 그리고 꿈속의 얼굴 없는 소년에게로 흘러갔다. 그러다— “미스 먼로.” 나는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와이어트 교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 생각에는 라이트가 낙수장에서 내부와 외부의 관계를 어떻게 균형 있게 설계했다고 보나요?” 내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 아마… 창문이 많아서요?” 정적. 모든 시선이 나를 향했다. “흥미로운 답이군요.” 와이어트 교수가 공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있는 설명이 필요할 것 같네요.” 리버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답해도 될까요, 교수님?” 와이어트 교수는 손짓으로 허락했다. “라이트는 건축물이 자연과 싸우는 게 아니라 자연과 함께 흘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낙수장에서는 지역의 돌과 콘크리트를 사용했고, 강가의 암석 지형과 닮은 테라스를 만들었죠. 건물이 자연 위에 억지로 놓인 게 아니라 풍경의 일부처럼 느껴지게 하려 했던 겁니다.” 와이어트 교수가 미소 지었다. “훌륭한 답변이군요, 미스터…?” “리버 캘러한입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미스터 캘러한. 아주 좋았어요.” 수업이 끝난 뒤 우리는 함께 밖으로 걸어 나왔다. 단풍나무 아래에서 나는 무심코 말을 꺼냈다. “아까 진짜 멋졌어요. 답변하는 방식이요.”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그냥… 구조나 형태를 좋아해. 그런 건 이해가 되거든.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는 작게 웃었다. “재밌네요. 난 사람들을 피하려고 이 수업 들었는데. 건축은 뭔가… 다시 설계하는 느낌이잖아요. 어쩌면 나 자신까지도.” 그의 시선이 내게 오래 머물렀다. 깊고,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눈빛. 지나칠 정도로. 불편했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안전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때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일라.” 나는 몸을 돌렸다. 레트였다. 내 사촌. 과보호가 심한, 가죽 재킷을 입은 그림자 같은 존재. 그의 시선이 리버를 위아래로 훑었다. “내 사촌한테 무슨 볼일이지?” 리버는 천천히 일어섰다. 여전히 침착했다. “그냥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대화?” 레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건축학과 학생이 갑자기 아일라랑 친하게 군다고? 수상한데.” 나는 신음하듯 말했다. “진심이야, 레트? 이 사람 아무 짓도 안 했거든.” 레트는 내 말을 무시했다. “난 네 의도가 뭔지는 관심 없어. 결과가 문제지.” 리버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누군가를 해치러 온 건 아닙니다.” 공기가 팽팽하게 조여졌다. 둘 사이에서 긴장이 정전기처럼 튀었다. 내 가슴도 답답하게 조여왔다. “그만해!” 나는 결국 소리쳤다. “레트, 제발. 나 혼자서도 괜찮아. 난 아직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겠어. 그러니까 내가 직접 알아낼 수 있게 해줘. 네가 내 모든 걸 통제하려 들지 말고.” 레트의 턱이 굳어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돌처럼 차갑고 단단했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그대로 걸어가 버렸다. 둘 다 뒤에 남겨둔 채. 복도를 빠르게 지나가면서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레트 때문에 화가 나서였고… 또 다른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리버 때문이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던 방식. 그가 말하던 모든 것에서 느껴지던 이상한 익숙함. 그 반쯤 웃는 미소. 은빛 눈동자. 꽃 이야기까지. 모든 게… 어린 시절부터 나를 괴롭혀 온 꿈과 너무 닮아 있었다. 이상했다. 나는 그를 모른다. 나는 아일라다. 그것만이 내가 아는 유일한 진실이었다. 그런데 왜 그의 시선을 떠올릴 때마다 머릿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속삭이는 걸까.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마.’ 나는 캠퍼스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걸음을 멈췄다. 왜 나는 마치 다른 삶을 살아본 적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걸까?
챕터 목록
총 10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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