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589/coverbig.jpg)
/0/66062/coverbig.jpg)
제2화 간시은 곁에 있을 자격
당시, 간효영의 혈액 검사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거부 반응도, 합병증도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간시은을 구할 수 있었다.
사실, 간효영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망설임 없이 골수를 기증했을 사람이었으니, 하물며 자신의 여동생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결정에 대해 말하기도 전에, 진승율은 이미 간효영을 냉정하고 무관심한 사람이라고 단정짓고, 그녀가 간시은을 위해 희생하지 않을 것이라 결론 내렸다. 진승율은 너무 절박한 나머지 간효영 앞에 무릎까지 꿇으며 간시은을 살려달라 애원했었다. 그의 모습에 간효영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진승율이 누군가 앞에서 그렇게까지 자존심을 굽히며 부탁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간효영은 진승율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두 사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누군가는 이 둘을 '소꿉친구 커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진승율은 간효영을 지키기 위해 다른 남자 아이들과 싸우기도 하고, 그녀가 시험 준비를 할 때면 밤 늦게까지 함께 공부를 하기도 했다.
순진하게도 간효영은 그와 함께했던 그 긴 시간이 언젠가는 사랑이 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착각이었다.
감정이란 시간이나 논리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간효영은 간시은만큼 사랑스럽지도 않았고, 진승율을 기쁘게 해주지도 못했다. 진승율은 두 자매 모두 아꼈지만, 간시은에 대한 감정이 진정한 애정이었다.
그는 분명 간시은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간효영의 가슴을 찢어놓는 듯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진승율이 간시은을 사랑한다는 사실보다 더 가슴 아픈 건, 그가 자신이 동생을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있을 만큼 냉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었다. 진승율의 말도 안 되는 생각이 그녀를 분노하게 했다. 간효영은 순간 화가 나, 간시은을 구해주는 대가로 진승율에게 결혼을 요구했다.
그의 아내가 되고 싶었다.
비록 2년의 짧은 계약 결혼일 뿐이었지만, 어리석게도 간효영은 그 시간 동안 진승율이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비참하게도, 그녀가 틀렸다.
"뻔뻔하게 여길 어떻게 와?"
날카로운 목소리에 간효영이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재빨리 눈물을 닦고 돌아서자, 뒤에는 박미주가 서 있었다. 간효영의 표정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박미주는 그녀의 계모였다. 마흔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10년은 더 젊어 보였다. 완벽하게 꾸민 헤어스타일과 세련된 디자이너 옷차림을 한 그녀는 우아하고 단정해 보였다.
간효영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집안의 하녀였던 박미주가 임신을 했다.
아이의 아빠는 그녀의 아버지, 간명수였다.
"슬픈 척 연기할 필요 없다!" 박미주가 간효영을 지나쳐 병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간효영은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그녀의 뒤를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
피곤해 보이던 간시은의 눈이 간효영을 보자 밝게 빛났다. "언니." 간시은이 따뜻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간효영을 불렀다.
간효영은 미소를 지으며 간시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잡았다. "나 보고 싶다고 했다며."
간시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못 본 지, 3개월도 더 지났잖아. 진짜 보고 싶었어."
순수하고 다정한 모습의 간시은을 보자, 간효영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어떻게 자신이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던 동생과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갈등하게 된 걸까... 간시은이 병에 걸렸을 때, 간효영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렸다. 그녀가 질병으로 인해 아픈 틈을 타, 진씨 가문의 사모님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간시은이 자신을 미워할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미움을 넘어 증오할 거라고.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에게 불만과 원망을 퍼부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간시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무엇보다 그녀를 힘들게 했다. 간효영은 어린 동생을 볼 때마다 견딜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지금은 나도 쉬는 중이니까, 더 자주 보러 올 수 있어." 간효영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애써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간시은의 얼굴이 밝아졌다. "우와, 진짜? 그럼 나 퇴원할 때까지 매일 와 줘야 해!"
"당연하지. 매일 올게." 간효영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한편, 병실 구석에서 박미주는 증오가 담긴 눈빛으로 간효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간시은을 생각해 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간효영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진승율이 간효영과 결혼하던 그때, 간시은이 힘들어하던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박미주는 감정을 억누르며, 간시은을 재우려 토닥거렸다. 그렇게 간시은이 잠들자, 박미주는 쌀쌀맞은 목소리로 간효영에게 말했다. "곧 진승율이 시은이 보러 올 거야. 불편한 일 만들지 말고 어서 가."
간효영은 가만히 서서 그녀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는 평화롭게 잠든 간시은을 한 번 바라본 뒤, 말없이 병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문을 나서려던 순간, 박미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에 박혔다. "다시는 오지 말아라. 네가 시은이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감히 여기 발을 들일 수 없을 텐데."
간효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실 문을 닫고 복도로 나왔다.
벤치에 주저앉은 간효영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조용히 흐느꼈다. 이내 온 몸이 떨릴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다.
병원 밖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던 고상미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결국 병원으로 들어가 간효영을 찾아보기로 했다. 병원 복도에 들어서자,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는 간효영이 보였다. 간효영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던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진승율이 걸어 나오는 것을 봤다. 간효영을 보고 멈칫하던 진승율은 곧장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렸을 때부터 그를 졸졸 따라다녔던 간효영은, 발소리만 들어도 진승율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급하게 눈물을 닦고 애써 침착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고개를 들었다.
"시은이.. 보러 온 거야?" 간효영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지만, 선명한 눈물자국과 번져버린 화장은 감출 수 없었다. 평소와는 달리 알글이 핼쑥해 보였다.
하지만 진승율은 여전히 무관심해 보였다. "시은이 이미 만난 거야?"
"응."
힘들어 보이는 간효영이 안쓰러웠던 것일까, 진승율이 조금은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 내일 골수 이식 받으면, 곧 좋아질 거야."
"알아."
짧은 대화를 끝으로, 진승율은 병실 문을 향해 돌아섰다. 그가 문을 열기 직전, 간효영이 차마 참지 못하고 그에게 말했다. "시은이... 잘 부탁해."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놓아주는 게 맞아! 그를 간시은에게 보내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진승율이 문 앞에서 멈춰 섰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화를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한테 그런 말 할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진승율이 차갑고 단호한 한 마디 한 마디가, 간효영의 마음에 가시가 되어 박혔다.
그녀는 이미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진승율을 무의미한 결혼에서 해방시켜 주고, 간시은에게 돌아갈 기회를 주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늘 원하던 것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화가 나 보이는 걸까?
내가 사라져 주기라도 했어야 했나? 정말 그렇게도 싫은 걸까?
진승율이 병실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간효영은 닫힌 병실 문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멀리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고상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곧장 간효영에게 달려가 그녀를 일으켜 병원 밖으로 빠져 나왔다.
그 후로도 간효영은 며칠 동안 계속 병원을 방문했지만, 간시은의 병실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저 병실 밖에서 창문 너머로 간시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가끔 진승율이 간시은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저 멀리서 조용히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자신에게는 차갑기만 했던 진승율이, 간시은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간효영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
한 달 후, 간시은의 골수 이식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거부 반응이나 합병증 없이 회복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간효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한 달간, 진승율은 병원에서 간시은을 보살피며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법원에 가서 이혼 절차를 마무리하는 일도 미뤄졌다.
간효영은 더 이상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수 없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녀는 그날 그렇게, 진승율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마침내 진승율이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갑고 무관심했다.
간효영은 망설이지 않고 물었다. "이혼 마무리는 언제 할 거야?"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진승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뜻밖의 말을 내뱉었다. "난 아직 도장 안 찍었어."
간효영의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는데, 아직도 이혼 서류에 도장을 안 찍었다니?
챕터 목록
총 393장
/0/72379/coverbig.jpg)
/0/97852/coverbig.jpg)
/0/92530/coverbig.jpg)
/0/97836/coverbig.jpg)
/0/94240/coverbig.jpg)
/1/129329/coverbig.jpg)
/1/129395/coverbig.jpg)
/1/129328/coverbig.jpg)
/1/129330/coverbig.jpg)
/1/131294/coverbig.jpg)
/1/131303/coverbig.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