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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따귀
하예담과 함께 현장으로 돌아온 유이준, 그리고 하 씨 가문의 세 형제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두 손을 단단히 결박 당한 채, 하세령은 테러 조직과 관련된 납치범 무리를 모조리 제압해버린 것이다.
이게...가능한 일일까? 말도 안 되지.
두 손이 묶여 있는데다, 반전을 일궈낸 장본인이 하세령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무거우면 들지 못하던, 힘없고 허약한 여자였으니 말이다. 한때 격투를 가르치던 코치조차 그녀의 허약한 체질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 한 번은 화를 참지 못하고 그녀한테 "쓰레기"라고 욕을 퍼부었었다.
그런 하세령이, 피비린내 나는 극악무도한 납치범 무리를 상대로, 그들을 이겨버린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장면이었다! 그러니 유일한 설명은 하나였다. 지금 바닥에 쓰러진 납치범 무리들은 진짜 납치범이 아니라, 전부 하세령이 돈을 주고 데려온 연기자들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분명 유이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작된 또 한편의 어설픈 연극이었다. 그런데 하필, 이번에는 하예담까지 끌어들여 그녀를 자칫 위험에 빠뜨릴 번 했다.
이러한 생각이 미치자, 유이준의 관자놀이가 벌컥벌컥 뛰기 시작했다. 억제할 수 없는 분노가 순식간에 온몸을 휩쓸었다. 그리고 그는 이를 악문 채, 하세령을 매섭게 쏘아붙였다. "좋아, 아주 좋아! 결국 이 모든 게 다 네가 짜놓은 짓거리였다는 거지! 납치범들도 전부 네가 돈 주고 데려온 거였고! 하세령, 네가 이제 정신을 차렸을 거라 믿었던 내가 바보였어. 조금만 더 고생하게 놔뒀다가 금방 구해주려고 했는데, 이제 보니 또 네가 꾸민 자작극이었어!"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그렇게 좋아? 그래서 예담이를 위험에 빠뜨리려 했던 거였어?
하예담은 유이준의 품에 꼭 안긴 채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애처롭게 입을 열었다. "언니, 내가 그렇게까지 미워요? 나는 단 한 번도 언니랑 다툴 생각이 없었는데... 내가 그렇게나 미운 거라면, 언니 맘 편하게 내가 사라져줄게요. 언니 앞길을 막고 있는 게 나라고 생각된다면, 지금까지 내가 일궈낸 모든 연구 성과도 전부 언니에게 넘겨주고 떠날게요."
"하세령!" 겉으로 보기엔 연약하기 그지없는 하예담의 한마디가, 그 자리에 서 있던 세 형제의 심장을 순식간에 꿰뚫었다. 세 사람은 동시에 하세령을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는 당장이라도 그녀의 가죽을 벗겨버릴 것 같은 독기가 어려 있었다.
"우리 셋은 전생에 얼마나 많은 죄를 졌길래 너 같이 악독한 여동생을 둔 걸까? 차라리 예담이가 우리 친동생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너...너는 하씨 가문의 가장 큰 수치야!"
그들의 거침없는 비난들은 결국 하세령이 지난 2년 동안 견뎌왔던 마음 쓰라린 기억들을 모두 떠올리게 했다.
그녀가 납치된 바로 다음 날, 그녀의 아버지는 밖에서 몰래 키우고 있던 사생아 하예담을, 서둘러 집안에 들였다.
그리고 그 하예담은, 집으로 돌아온 하세령 앞에서 눈부신 재능을 드러냈다. 하세령은 암흑 같은 세월을 모두 잊은 채 가족 품으로 돌아왔건만, 잃어버린 기억과 함께 가족의 사랑까지 잃어버린 채 하찮은 존재로 전락했다. 그 누구도, 다시 그녀를 제대로 거들떠보지 않았다.
가족들은 하예담을 데리고 온갖 행사에 얼굴을 내밀었다. 가문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하예담은 심지어 하세령의 약혼자였던 유이준의 마음마저 빼앗았다. 그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지만 하예담은 그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하세령이 하씨 가문의 장녀로서 갖고 있던 모든 권익을 노골적으로 탐냈다. 그리고 하세령이 집으로 돌아온 뒤 2년 동안 하예담은 끊임없이, 아주 집요하게, 함정을 파놓았다. 수차례의 모략 끝에, 유이준과 세 오빠들의 마음에는 하세령을 향한 불만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하예담은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받을 뻔한 치밀한 함정을 짜기도 했다. 하세령을 끌어들여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고도 그 모든 상황을 유이준과 세 오빠들 앞에서 "자신이 하세령을 구했다"는 연극으로 둔갑시켰다. 그 결과, 하세령이 하 씨 가문과 유이준, 그리고 세 오빠들 마음속의 이미지는 거듭되는 모함에 점차 추악하게 변해 갔다.
그리고 오늘, 하예담은 억지로 하세령을 끌고 밖으로 나갔고, 두 사람은 함께 납치를 당했다.
납치범들이 유이준과 세 오빠들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위협했을 때, 그들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하예담을 선택했다.
한때는 가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하씨 가문의 장녀 하세령은, 자칫 모든 사람 앞에서 능욕당하는 끔직한 굴욕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녀가 오늘 이 순간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지 못했다면, 하예담의 계략은 완벽히 성공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하세령은 모든 기억을 되찾았다. 그리고 지금의 그녀는 예전의 하세령이 아니라 피비린내는 지하 조직에서 4년이라는 시간을 버텨온 진정한 아수라였다. 과거, 유이준을 향해 품었던 모든 애정은 한 줌의 먼지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녀의 가슴은 이제, 텅 비어있다.
지난 2년 동안, 유이준이 하세령에게 보여준 것이라곤 오로지 잔인함뿐이었다.
그 모든 배신들이 뇌리를 스치던 순간, 하세령은 불쑥 양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자신을 묶고 있던 밧줄을 너무나도 쉽게 풀어냈다. 그녀는 방향을 틀어 그들에게 다가갔다.
"연기? 수치?"
허세령은 가볍게, 아주 가볍게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 속에는 살을 에는 듯한 냉기와, 뼛속까지 번지는 깊은 경멸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었다. 한낱 가식도 없이 그저, 냉혹한 진심뿐이었다.
그 단순한 말투와 가벼운 웃음소리만으로도 유이진과 그들은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그러나 그들이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하세령은 웃음을 거뒀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버렸다. "좋아." 그녀는 낮고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대로 된 연기 보여줄까?"
순간! 하세령은 몇 걸음 앞으로 성큼 나아가더니 번개처럼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잘생긴 얼굴을 향해 불꽃처럼 매서운 한 대를 후려쳤다. "짝!"
맑고도 강렬한 따귀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고, 주변에 있던 모두가 눈이 휘둥그래진 채 얼어붙었다.
챕터 목록
총 2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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