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제2화 책임

구시혁의 목소리는 웃고 있었지만, 끝음이 살짝 올라간 그 어조와 달리 눈빛은 냉담했다.

허연서가 그의 감정을 파악하기도 전에, 그는 손을 거두며 손가락으로 목에 남은 키스마크를 천천히 문질렀다.

허연서는 본능적으로 그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옮겼고, 그 순간 어젯밤의 광란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잘게 쪼개진 남자의 입맞춤, 맹렬한 충돌, 뜨겁게 내려앉던 손바닥의 감촉까지…

그리고 맨 처음, 그녀가 먼저 물었던 말까지...

'할래요?'

그녀는 심지어 먼저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았고, 두 번을 끝내고도 그의 목을 붙잡고 놓지 않으며 말했다. "오빠, 정말 멋져요, 한 번 더 해요."

구시혁의 목에 있는 키스마크는 세 번째 할 때 생긴 것이었다.

허연서는 불편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차갑고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저는 당신에게 책임지라 하지 않을 거니까 당신은 손해 볼 일 없어요."

'이 여자, 막상 일 다 끝나니까 모른 체하네.'

물린 자리가 살짝 쓰라린 걸 느끼며 구시혁은 입가에 능글맞은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허연서 씨, 당신이 저를 책임져야 해요."

허연서는 놀란 듯 고개를 들었고, 그의 웃는 듯 웃지 않는 눈빛과 마주쳤다.

경성 사교계에서 구시혁은 가리지 않고 뭐든 해내는 인물로 이름이 높았다. 평소엔 게으르고 한량처럼 보였지만, 사업에서는 천둥처럼 빠르고 거침없는 수단을 쓰는 남자였다.

그에게 죄를 지은 자들은 하나같이 그가 태연하게, 그러나 완벽하게 처리해 버렸다.

그런 사람이 그녀에게 책임을 요구한다고?

허연서는 그가 농담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눈썹을 찌푸렸다. "구시혁 씨, 제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맑고 시원한 소나무 향이 풍겨왔고, 구시혁은 다시 그녀의 정교한 턱을 잡았다.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식을 올려야죠."

허연서는 놀란 듯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구시혁은 손을 놓고 침대 머리에 기대 앉아 허연서의 머리카락을 무심히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할아버지께서 혼인을 재촉하셔서요. 그분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릴 아내가 필요하거든요."

그의 목소리에는 이른 아침 특유의 잠긴 울림이 배어 있었다. 허연서는 조용히 그의 손에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빼냈다.

가문의 격으로 따지면, 고아인 그녀는 구씨 가문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외모로 따져도 그녀보다 예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더구나 구시혁에게 첫사랑이 있다는 건 사교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실이었다.

2년 전엔 그 첫사랑 문제로 구영호 어르신과 크게 다툰 일까지 있었다.

결혼을 하려면, 그의 첫사랑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허연서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저예요?"

하늘에서 감이 떨어지듯, 그런 좋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구시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옅은 담배 향이 퍼져나가자 허연서는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차가워 보이는 한편 귀여워 보였다.

그녀의 불만을 눈치챈 구시혁은 옅게 웃으며 장난스럽게 그녀의 입술을 물고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불어넣었다.

그녀가 기침을 연거푸 하는 것을 보고서야 그는 여유롭게 대답했다. "제 아내가 되려면 그저 서로를 존경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죠."

그는 잠시 멈췄다가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적어도, 침대 위의 당신은 저랑 아주 잘 맞거든요."

남자의 묘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허연서는 머릿속이 윙윙거렸다.

얼굴이 뜨거워지자 허연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망설였다.

이모는 늘 그녀가 부잣집에 시집가길 바랐고, 그녀도 혼인이 필요했다.

결혼을 해야만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시혁이 내세운 이유는 솔직했고, 거절하기 힘들 만큼 매력적이었다.

만약 정말 안 되면 이혼할 수도 있었다.

지금 가장 시급한 건, 진퇴양난에 빠진 고씨 가문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허연서는 목소리가 살짝 잠긴 채 불안한 마음으로 말했다. "좋아요. 당신과 결혼하겠어요."

그녀의 표정을 살피던 구시혁은 여유롭게 아름다운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마치 그녀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허연서 씨, 신중히 생각해요. 구씨 가문엔 이혼한 사람이 없으니까."

허연서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계속 읽으시겠어요?

이어서 읽으면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이어서 읽기

챕터 목록

총 174장

  1. 1장제1화 난봉꾼
  2. 2장제2화 책임
  3. 3장제3화 혼인 신고

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