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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존중, 그딴 건 없어도 그만

서재 안은 도수가 아주 낮은 스탠드 하나만 켜져 있을 뿐이었다. 조하은의 눈썹과 눈매에는 이제껏 본 적 없는 처연함과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

‘이혼'이라는 두 글자는 그녀가 모든 기대를 소진하고, 마지막 남은 모든 것을 거는 심정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송진남의 시선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조하은,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지 알아?”

“네, 아주 확실해요.” 그녀는 시선을 떨구었고, 목소리에는 어딘지 모르게 자신감이 없었다. “이혼하고 싶어요.”

송진남의 청수한 얼굴에 조소가 번졌다.

이내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라이터가 켜지더니, 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의 잘생긴 이목구비는 명멸하는 불빛 속에서 아찔한 매력을 발산했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에서는 희로애락을 분간할 수 없었다.

조하은은 가슴 저린 것을 꾹 참으며 말했다. “사랑 없는 결혼 생활로 서로를 소모하느니, 일찌감치 헤어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내 명의 재산은 혼전 공증을 해뒀어. 진짜 이혼하면, 넌 한 푼도 못 챙겨.” 송진남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후 재를 털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힘없이 가라앉았다. “네, 알고 있어요.”

사실, 거듭되는 실망이 쌓여 절망이 된 것뿐이었다.

강서현을 향한 송진남의 무한한 총애는 그녀의 마음속에 갓 싹튼 사랑을 이미 꺼뜨려 버렸다.

“3년 전, 송씨가 강성에서 진행하던 신에너지 프로젝트를 내가 진성에 투자했고, 그게 널 아내로 맞이하는 예물이 됐지. 1억이 넘는 투자 덕에 주세홍 그 인간, 만년 2인자였던 송도훈을 제치고 시의 수장이 될 수 있었고.”

송진남의 시선이 차갑게 식었다. “오늘날까지 진성 투자로 수익 한 푼 못 냈는데, 이제 와서 강을 건넜으니 다리를 부수겠다, 이거야?”

아픈 곳을 찔린 그녀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주세홍은 그녀의 새아버지로, 3년 전 송씨의 거액 투자 덕분에 세 명의 부시장 후보를 제치고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혼은 그녀가 고통 속에서 깊이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송진남의 얼마 되지 않는 다정함에 아직 미련이 남았지만, 그가 강서현을 위해 사람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던 것을 떠올리면 심장이 아팠다.

그녀는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더는 당신과 강다은 씨 앞길에 방해되지 않을게요.”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모든 아쉬움을 억지로 눌러 담았다.

“당신이 방해받는다고 느끼지만 않는다면, 나와 서현이도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송진남은 느릿하게 담배 연기 고리 몇 개를 뱉어냈다.

서현이, 얼마나 다정하고 애정이 넘치는 호칭인가!

그녀에게 송진남은 잠자리에서 가장 친밀할 때나 “하은”이라고 한 번 불러줄 뿐, 평소에는 늘 성까지 붙여 불렀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이런 존중받지 못하는 생활에 질렸어요.”

“네가 어떻게 송서연의 자리에 앉게 됐는지 잊었나 보군.” 송진남은 담배를 하나 더 물며 조소를 머금었다. “양심에 손을 얹고 말해봐. 네가 나한테 존중을 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조하은의 생각은 순식간에 3년 전 그 난처했던 비 오는 밤으로 끌려갔다.

억울함과 수치심이 한꺼번에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나를 계산해서 시집오고, 주세홍 그 인간이 출세 가도를 달릴 때 알았어야지. 우리 결혼의 규칙은, 내가 멈추라고 하지 않는 한, 넌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한다는 거. 존중? 그딴 건 사치지.”

그녀가 침묵하자 송진남은 계속해서 비수를 꽂았다.

그녀의 몸이 가늘게 떨렸고,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졌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의 결혼은 송진남의 눈에 그저 어떤 존중도 없는 거래일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녀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2년을 비틀거리며 지내온 후, 이 결혼에 전에 없던 기대를 품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됐다.

다행히, 감정의 싹은 이제 막 돋아났으니, 뿌리째 뽑아버리면 그만이다.

송진남은 불씨가 남은 꽁초를 재떨이에 눌러 껐다.

곧, 맞은편 욕실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은 완전히 차갑게 식어버렸다.

결혼 3년, 두 사람은 다른 연인이나 부부처럼 함께 산책하거나 영화를 본 적도, 단둘이 밖에서 밥 한 끼 먹은 적도 없었다.

가장 조화로웠던 때는 오직 침대 위에서뿐이었다.

처음 2년은 냉전 속에서 보냈다.

3년 차에 접어들어서야 두 사람의 관계에 미세한 전환점이 생겼다.

송진남은 그녀에게 전에는 없던 인내심과 다정함을 조금 보여주었고, 가끔 명절에 안부를 묻거나 작은 선물을 주기도 했다.

어느새 그녀도 송진남이 괜찮아 보이기 시작했고, 그를 챙기고 그의 취향을 살피려 애썼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자란 그녀는 금세 여러 가지 아침 식사를 만드는 법을 익혔다.

두 사람의 생활 궤적은 잠자리를 제외하면 교차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침 식사로 송진남을 몇 분이라도 더 붙잡아 두고 싶었다.

이런 생각이 우습고 비굴하다는 걸 알면서도, 지칠 줄 모르고 즐거워했다.

그녀가 마음속에 품었던 기대는 늘 ‘강서현'이라는 여자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

송진남이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사랑이 있었다면, 어째서 지금까지 대외적으로 결혼 사실을 숨겼겠는가.

송진남은 샤워를 마치고 바로 옆 객실로 가버렸다.

심각한 수면 부족으로 조하은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출근 전 송진남이 가장 좋아하는 블루마운틴 커피를 내렸다.

조하은은 강성시 방송국의 경제 전문 앵커였다.

최근 몇 년간 뉴미디어가 부상하며 방송국의 위세가 예전 같지 않았지만, 그녀는 시청률이 꽤 높은 인터뷰 프로그램을 맡고 있어 강성에서는 크든 작든 유명인사였다.

출근 카드를 찍고 사무실에 들어서자, 조하은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서랍에서 미리 준비해 둔 비스킷을 몇 조각 먹고 나서야 겨우 진정되었다.

그녀는 조금만 많이 먹어도 살이 찌고, 그 살이 바로 얼굴에 드러나는 체질이었다.

화면에 예쁘게 나오기 위해 식단에 매우 신경을 썼다.

매일같이 먹는 물에 삶은 달걀, 맹물에 데친 채소, 기름기 없는 소고기와 닭가슴살. 165cm의 키에 몸무게는 48.5kg에서 49kg 사이를 늘 유지했다.

그녀는 저혈당이 있어서 매일 단것을 조금이라도 먹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

설날까지 20여 일 남은 지금, 그녀의 업무량은 평소보다 두세 배는 많았다.

매주 두 번 있는 경제 뉴스 생방송 외에도, 인터뷰 프로그램을 사전 녹화해야 했고, 강성 춘절 특집 방송 리허설도 준비해야 했다.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동료 여직원 몇몇이 잡담하는 것을 듣고 송진남의 술집 폭행 사건이 이미 강성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하은은 손을 떨며 휴대폰을 열었다.

송진남과 강서현은 네티즌들의 망상 속에서 솔로인 바람둥이 재벌 총수와 불쌍하고 가련한 신데렐라로 둔갑해 있었다.

사정을 잘 모르는 많은 구경꾼 네티즌들은 송진남에게 강서현을 아내로 맞이하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차려놓은 저칼로리 점심은 몇 입 먹지도 못하고 식욕을 잃었다.

퇴근 후 약국에 가서 사후피임약을 산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이것저것 고르던 그녀는 부작용이 가장 적은 수입 약을 선택했다.

계산을 할 때, 송진남과 마주쳤다.

정확히는 송진남과 강서현이었다.

강서현의 이마에는 1인치 남짓한 거즈가 붙어 있었고, 오른손 등에는 갓 아문 할퀸 자국이 몇 개 나 있었다.

부드럽고 상냥하면서도,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모습은 남자의 보호 본능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킬 만했다.

두 사람은 약국에 들어올 때부터 웃고 떠들며, 누가 봐도 사이좋은 연인 같았다.

조하은이 이런 장면을 마주친 게 한두 번은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숨이 막힐 듯이 괴로웠다.

“진남 씨.” 그녀는 애써 감정을 다스리며 인사했다. 목소리는 긴장으로 팽팽하고 절제되어 있었다.

송진남은 그녀를 힐끗 보더니, 그녀 손에 들린 사후피임약 상자로 시선을 옮겼다. “약 더 먹어. 확실하게 해. ‘사고' 나지 않게.”

그 말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녀의 심장을 꿰뚫었지만, 강서현이 있는 앞에서 지켜야 할 체면은 있었다.

“사고 날 일 없을 거예요.” 그녀는 더없이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억지로 지어 보였다.

다들 아이는 사랑의 결실이라고 하는데, 송진남의 눈에는 그저 ‘사고'일 뿐이었다.

어쩌면, 오직 그녀의 아이만 그럴지도 모른다.

강서현이 낳는다면 또 다른 문제일 테니.

“정말 우연이네요, 여기서 조 앵커님을 다 뵙고.” 강서현이 조하은을 보며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었다. “약이란 게 다 독성이 좀 있어서요, 수입 약이라도 부작용이 있을 거예요. 이런 약 너무 많이 드시면, 자칫하다 조 앵커님 폐경이 일찍 올 수도 있고요.”

조하은과 송진남의 관계를 알면서도, 강서현은 만날 때마다 꼬박꼬박 ‘조 앵커님'이라 부르며 아예 그녀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녀는 송진남이 강서현에게 그런 배짱을 실어주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 사이가 그렇게 좋다면, 송진남은 왜 이혼하고 강서현을 맞아들이지 않는 걸까?

벌써 3년이나 지났고, 이제 주세홍이 손에 쥔 것들로 송진남을 위협할 수도 없는데.

조하은은 강서현과 실랑이할 마음이 없어, 바코드를 찍고 계산했다.

“진남이 어젯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하루 종일 속 아파했는데, 아내 되시는 조 앵커님은 정말 직무유기시네요.”

강서현의 가벼운 질책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려, 그녀는 몸을 돌려 강서현의 도발적인 시선과 마주했다. “강다은 씨도 내가 진남 씨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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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목록

총 102장

  1. 1장제1화이혼해
  2. 2장제2화존중, 그딴 건 없어도 그만
  3. 3장제3화재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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