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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가정교사
주영욱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할머니를 거부할 수 없었다. 잠시 생각한 뒤 그는 마지 못해 말했다. "할머니, 약속드릴 수는 있지만 그런 탐욕스러운 여자를 좋아할 일은 절대 없다는 건 미리 말씀드릴게요. 3개월이 아니라 3년을 더 함께 보내도 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서화옥이 중얼거렸다. "지금 누굴 말하는 게냐? 하진이는 그런 여자가 아니란다."
주영욱은 은하진의 인성에 대해 더 이상 논쟁하고 싶지 않아 다짜고짜 말했다. "그만하면 됐어요, 할머니. 할 일이 있어서 이만 끊을게요." 전화를 끊은 후 주영욱은 책상 위에 놓인 이혼 합의서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음침함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은하진, 정말 당신의 계획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는 비웃었다.
1년 전, 이 여자는 돈에 대한 욕망 때문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주 씨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 이제 그녀는 이혼을 원하는 척하면서 의도적으로 3개월간 이혼을 미루고 있었다. 그녀는 한 걸음 물러서면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꽤 괜찮은 계획이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녀는 그의 성격을 너무 몰랐다. 그는 누가 뭐라든 한 번 내린 결정은 절대 바꾸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음날, 은하진은 면접을 위해 외출했다.
전달 받은 주소로 향한 그녀는 낭만적이고 엄숙한 분위기로 조화롭게 장식된 대저택에 도착했다.
대문에 새겨진 문양이 유난히 정교했다.
은하진은 주위를 둘러보며 이 저택이 자신이 살던 집보다 훨씬 더 호화롭고 웅장하다는 것을 느꼈다.
오늘 가정교사 면접을 보러 온 것이었다. 서화옥이 소개해 준 취업 기회었다.
서화옥은 은하진이 주 씨 집안에게 빚 지고 싶지 않은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년동안 그녀는 은하진에게 여러가지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 줬고, 은하진도 기대 그 이상으로 훌륭하게 완성하여 1년 안에 모든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이번 아르바이트에서 주는 급여는 지금까지 해 왔던 그 어느 것보다도 훨씬 많이 높았다. 은하진은 돈이 필요했고 이 기회를 쟁취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초조함을 억누르며 문 앞으로 다가가 벨을 눌렀다.
경쾌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은하진은 누군가가 대답을 할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그녀를 맞이하러 나온 사람은 김지운 비서였다. 은하진을 바라보던 그는 그녀의 젊음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에 순간적으로 매료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프로다운 태도를 유지하며 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 그는 공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정교사 지원자이시군요. 은하진 선생님, 맞으시죠? 저는 주 대표님의 비서 김지운입니다." 은하진은 예의를 갖춰 대답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지운 비서님."
인사를 마친 뒤, 김지운은 은하진을 저택 뒷마당으로 데려갔다.
그 곳에서 멈춰선 그는 먼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민우는 저기 있어요."
은하진은 그의 손가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마당 한가운데 있는 그네 위에 한 아이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 또래의 아이들은 아주 활기가 넘쳤고 대부분은 장난꾸러기였다. 그런데 이 아이는 움직이지 않는 꼭두각시처럼 우두커니 앉아 멍한 눈으로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예민하고 여린 모습은 바람에 흩어질 것만 같았고 이는 은하진의 보호본능을 불러 일으켰다.
김지운은 설명했다. "민우의 상황은 좀 특이합니다. 교사를 이미 여섯 명이나 쫓아냈어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은하진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기 전, 서화옥에게서 이미 민우의 상황에 대해 얘기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저택을 둘러봐도 될까요?"
김지운은 다소 당황했다. 이런 요청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전 교사들은 도착하자마자 즉시 민우에게로 달려가 그와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아이의 강한 저항으로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김지운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물론이죠. 그런데 제가 다른 일이 있어서 안내는 못 해드릴 것 같네요."
은하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김지운에게 주민우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 대해 물은 다음 혼자서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저택을 둘러보면서 흩어져 있는 어린이 장난감과 벽에 걸려 있는 그림 몇 점을 발견했다.
그림의 기법이 부족하긴 했지만, 색상은 대담하고 생동감이 넘쳤다. 각 그림마다 정성스럽게 액자에 넣어 걸어뒀고, 아래쪽에는 주민우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주민우가 그림에 대한 강한 열정을 갖고 있음이 분명했다.
은하진은 곧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미소를 지었다.
마당으로 돌아온 그녀는 챙겨온 미술용품을 정리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밝은 색들이 캔버스 위로 흘러가며 점차 마당의 풍경이 그려졌다.
은하진은 그림에만 열중했다.
그녀 뒤쪽에서 그네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던 주민우는 순식간에 눈앞에 펼쳐지는 예술 작품에 매료되었다.
생기 잃었던 눈이 순간적으로 빛나는 듯했다. 그는 그네에서 내려 은하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한편, 저택의 서재에서 주영욱은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김지운은 필요한 서류를 가지고 들어와서 그에게 알렸다. "대표님, 새 교사가 도착했습니다. 직접 만나보시겠습니까?"
주영욱은 이마를 문지르며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
주민우는 이미 여섯 명의 교사를 쫓아냈다. 오늘 온 새 교사도 별 다름 없어 보였다.
김지운은 다른 말 없이 조용히 서재를 나갔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주영욱이 책상 위의 모든 문서를 다 처리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해가 질 무렵이었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진 것을 보고 그는 민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러 가기로 했다.
그가 뒷마당에 도착했을 때,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광경이 그를 맞이했다.
편한 옷차림의 여자가 이젤 앞에 앉아 있었고, 높이 올려 묶은 그녀의 머리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황혼의 은은한 햇빛이 마당을 가로질러 그녀의 밝고 매혹적인 미소를 비췄다.
그녀 옆에는 주민우가 손에 붓을 들고 앉아 있었다.
주영욱은 놀라운 기색을 보였다. 주민우는 한 번도 외부인에게 눈길을 준 적이 없었고 가깝게 다가간 적은 더욱더 없었다. 그래서 오늘의 이 새 교사와 이렇게 조화롭게 지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 장면은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어서 주영욱의 마음 한쪽이 녹아 내리는 듯 했다.
그는 조용히 다가갔다. 은하진은 키가 훤칠한 그림자가 캔버스 위에 드리워지고 나서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주영욱은 자신도 예상치 못한 부드러운 어조로 그녀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죠?"
챕터 목록
총 2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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