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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그가 싫어하는 색을 입었다
머리 위에서 남자의 차갑고 매서운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소지은은 두 눈을 뜨고 수년 동안 사랑했던 이 남자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일말의 감정도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던 해 한겨울에, 그녀의 얼굴을 때리던 바람처럼 차가웠다.
"진태하, 이혼하자고 한 건 너잖아!"
남자의 차가운 입꼬리가 매정하게 올라갔다.
그가 먼저 꺼낸 이혼은 그저 서류상 절차를 밟는 것일 뿐, 재결합하는 것도 번거롭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는 소지은이 원하는 것이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혼 합의서에 서명하면 혼인 중 재산을 청산해야 할 텐데, 진씨 그룹 지분 절반이라도 떼어 달라는 건가?"
"소지은, 내가 널 정말 너무 얕잡아 본 것 같아."
남자는 굳은 얼굴로 화를 내며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 걸려 있던 액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결혼사진 속 소지은의 행복한 미소는 산산조각 난 유리에 갈기갈기 찢겨, 마치 물거품처럼 덧없고 허무해 보였다.
혼자서 필사적으로 이끌어오며 유지했던 이 결혼 생활과 꼭 닮아 있었다.
소지은은 고통에 몸을 웅크린 채 침대에 누워 입술을 깨물어 피가 냈고, 방금 전까지 정욕으로 얽혀 있던 큰 침대 위로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결국 그녀는 그 진단서를 꺼내 들고 자조하듯 창백한 입꼬리를 올리더니, 라이터를 집어 들어 진단서를 그대로 태워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녀는 다른 사람의 동정 따위는 필요 없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사람한테 남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진단서 아래에는 낡아서 색이 바랜 훈장이 하나 있었다.
그 위에는 금색으로 '삼화'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부모님이 과거에 얻었던 영광이자, 국내에서 가장 크고 권위 있는 연구상장이었다.
소지은 역시 그들의 재능을 물려받아 젊은 나이에 대학교수가 되었고, 학교 연구소에서 이름난 인재였다.
하지만 결국 진태하를 위해 결혼 후 대학교수직을 사임했다.
심지어 소장님이 부모님이 끝내지 못한 프로젝트를 계속 완성해 달라고 연거푸 요청했지만, 그녀는 모두 거절했었다.
남은 1년 동안, 그녀는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며 부모님이 끝내지 못한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 한 번 살아볼 것이다.
소지은은 휴대폰을 꺼내 '삼화' 연구소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 소장님,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저 연구소로 다시 돌아가서 CY 프로젝트를 재개하고 싶어요."
CY 프로젝트는 그해 그녀의 부모님이 많은 심혈을 기울여 신청하고 설립한 것인데, 절반쯤 진행되었을 때 그들은 사고를 당했다.
팀의 다른 사람들은 이 프로젝트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그저 임시로 동결하여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한때 소지은은 부모님의 죽음으로 인해 너무나 가슴이 아파 감히 건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심지어 CY 프로젝트의 성공이 부모님의 마지막 꿈이었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외면했었다.
그녀는 불효자였다!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오히려 조금 무겁고 걱정스러워 보였다.
"지은아, 네가 CY 프로젝트를 재개하겠다니 정말 기쁘구나. 이건 아마 수많은 혈액 질환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거야, 내가 반드시 전력으로 지원해줄게."
"하지만 네가 방금 끝낸 신약 연구가 몸에 무리를 줬을 수도 있으니, 반년 정도 푹 쉬면서 매달 병원에 가서 건강 검진을 받고, 아무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한 뒤에 재개해도 괜찮아."
소지은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에게 쉴 시간이 어디 그렇게 많이 남아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녀의 몸은 이미 망가져서, 화타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살릴 수 없을 것이다.
"괜찮아요, 정 소장님. 프로젝트 재개 준비해 주세요. 내일 바로 출근할게요."
그쪽에서는 잠시 침묵하더니, 바로 승낙했다.
신체의 허약함과 감정의 격렬한 기복 때문에 그녀는 혼미한 상태로 잠이 들었다.
진태하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녀는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남자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아무런 억양 없이 들려왔다. "30분 줄 테니 구청으로 와."
'정말이지 안달이 났구나.'
하룻밤이 지나고, 소지은의 가슴은 마비될 정도로 아팠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이혼 합의서는 준비했어?"
"소지은!" 남자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경고가 서려 있었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 내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네 모든 꿍꿍이 아무 쓸모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전화가 곧바로 끊어졌다.
소지은은 천장에 달린 크리스털 샹들리에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소지은은 예전처럼 진태하가 손짓만 하면 거리가 얼마나 멀든, 날씨가 얼마나 나쁘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든 쪼르르 달려갔다.
그녀는 직접 변호사를 찾아가 이혼 합의서를 작성했고,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택시를 타고 구청에 도착했다.
진태하의 차는 길가에 세워져 있었고, 분명 꽤 오랜 시간 기다린 듯했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가 손을 들어 차창을 두드렸다.
챕터 목록
총 9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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