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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남왕
육금환은 유독 큰 키와 다부진 체격에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마저 보통 사람들과 확연히 달랐다.
짙은 눈썹 아래 드러난 섬세한 이목구비 속에는 특유의 오만함이 서려 있었다. 어둑한 금포를 걸친 모습에서는 극에 달한 화려함과 존귀함이 배어났다.
흠잡을 데 없는 준수한 얼굴과 손짓 하나하나에서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압도적인 기세가 풍겨났다.
경성에 남왕이 심서월을 깊이 총애하며 그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준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심서월은 고오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굳게 지켰고, 아무리 남왕이라 하여도 아첨하며 곁을 내주지 않았다. 이러한 그녀의 태도 때문에 심서월은 경성의 귀녀라는 명성을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었다.
심서월이 궁지에 몰린 지금 육금환이 나타났으니, 이는 필시 영웅이 미인을 구하는 이야기로 전해질 터였다.
심수연이 고개를 돌리자 예상대로 심서월은 환한 미소에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육금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와, 남왕 전하가 아니던가?"
"남왕 전하와 겨룰 자가 어디 있겠는가. 김도 다 빠졌구먼."
이미 모여든 사람들은 육금환과 경쟁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겸손과는 거리가 먼 육금환은 존귀한 지위와 권세를 앞세워, 자신이 미리 점찍어 둔 물건이나 사람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수군거리던 소리는 순식간에 잦아들었고, 모두가 오늘 밤 심서월은 육금환의 여인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조금 전까지 열의를 활활 불태운 사람들의 얼굴에 심드렁한 기색이 자리했다.
기쁜 내색을 주체하지 못한 기방마담은 빠른 걸음으로 육금환에게 다가가 아첨과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상주 자리를 안내했다.
"다들 서두르거라. 오늘은 서월이와 남왕 전하의 특별한 날이다.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육금환은 바로 품에서 은표를 꺼내 기방마담에게 건네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본 왕이 아닌 다른 사내는 서월이의 얼굴도 볼 수 없게 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예, 예! 앞으로 서월이는 남왕 전하의 사람이옵니다. 아무도 감히 뵙지 못하게 하겠사옵니다!"
황금 만 냥은 심서월을 속신하기에 충분한 값이다.
소리 없이 혀를 끌끌 찬 심수연은 육금환의 통 큰 결단에 감탄하였다.
바로 그때, 그녀의 곁에 선 심서월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서월 비록 교방사에 들어왔지만, 아버지께서 유배를 떠나기 전에 절대 몸을 팔아 가문을 욕되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얼굴을 절반쯤 가린 면사포를 벗은 그녀는 섬세한 이목구비에 정교한 얼굴을 드러내고 육금환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왕야와 정식으로 혼인하는 것이 아니라면, 서월은 결코 억울함을 견디지 않을 것입니다."
육금환과 정식으로 혼인할 뜻이라는 심서월의 말에, 교방사 장내에는 순식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교방사에 끌려오기 전의 심서월이었다면 전혀 무리가 없는 요구였겠으나, 지금의 심서월이 먼저 꺼내기에는 지나친 요구가 분명하였다.
육금환의 안색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한 교방사 사람들은, 과연 육금환이 심서월을 왕비로 맞아들일지 궁금해하였다.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인 육금환의 얼굴에서는 아무 내색도 보아낼 수 없었다.
처음부터 육금환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 심서월조차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교방사에서 그녀의 명패를 건 지금, 만약 그녀가 육금환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앞으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끝없는 악의 구렁텅이일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결의를 다진 심서월은 더욱 단호하게 빛나는 눈빛으로 정면을 주시했다.
그녀의 청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던 육금환의 마음을 이번에도 반드시 사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 역시 결국 육금환에게 순결만 빼앗기고 버려지는 천한 계집주의 하나로 전락될 것이다.
심서월은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닙니다. 남왕 전하, 서월 아이가 전하께 농담을 한 것이 틀림없사옵니다." 얼굴에 놀란 기색이 뚜렷한 기방마담은 심서월의 과분한 욕심을 비난하면서 아첨 가득한 미소로 침묵을 깨뜨렸다.
한참이 지나도 육금환이 웃음을 보이지 않자, 기방마담은 심서월을 육금환 앞으로 밀어 사과하도록 눈짓하였다.
그러나 굳은 얼굴로 자리에 선 심서월은 육금환을 흘끗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내려 깔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거듭 요구하였다. "남왕 전하의 왕비가 되지 못한다면,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심서월의 말을 들은 기방마담은 더욱 격분했다. 만약 육금환이 오늘 교방사에 오지 않았다면 당장에 심서월에게 매질했을 것이다.
기방마담의 두 눈에 분노로 가득 찬 원인일까, 아니면 육금환이 끝내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일까. 심서월은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같이 아련한 표정으로 육금환을 바라봤다.
"서월은 비록 교방사에 잡혀 온 처지이오나, 결코 명예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않았사옵니다. 정식으로 한 사내의 아내가 되지 못한다면,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겠사옵니다. 서월은 결코 사내들의 손에 빛을 빼앗기는 폐물이 되지 않을 것이옵니다."
기세는 대단하였으나 어리석기 짝이 없다.
곁에서 심서월의 연기를 모두 지켜본 심수연의 입 꼬리에 차가운 미소가 번지더니 두 눈에 경멸로 가득 차올랐다.
챕터 목록
총 10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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