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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핫베이비

고시아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검은색 폭스바겐을 몰고 M 연구소 기지로 들어섰다.

막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박서연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너 진짜로 신청서 쓰러 온 거야? 대체 무슨 일이야? 내가 카톡도 몇 번이나 보냈는데, 답장도 없고… 이건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야. 설령 진심으로 이 연구에 참여하려는 거라 해도, 강민규랑은 상의해야 하는 거 아니야?"

고시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녀는 말없이 휴대폰을 꺼내, 박서연에게 카톡 채팅창을 내보였다.

도발적인 메시지들과 사진은 하루 이틀 된 게 아니었고, 내용도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정도였다.

사진 몇 장을 넘겨 본 박서연은 곧장 휴대폰을 그녀에게 돌려주더니, 팔을 걷어붙이며 씩씩댔다. "이 개자식이! 네가 그때 가지고 있던 특허 아니었으면 그 새끼 회사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겠냐? 그런데 지금 와서 바람질이야? 나랑 같이 가자. 내가 아주 반 병신 만들어 줄 테니까!"

"그럴 필요 없어요." 고시아가 그녀를 막아 섰다.

"무슨 소리야? 이렇게 당하고도 그냥 넘어가겠다고?"

"그럴 리 없죠!"

고시아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아요. 하지만 이걸 까발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저는 강민규가 저지른 모든 짓에 대해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만들 거예요."

박서연은 이 후배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연구에선 천재라 불릴 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졌고, 마음씨는 착하고 순수했지만 원칙 하나만큼은 단단히 지키는 타입이었다. 누구든 그 원칙을 건드리기만 하면 반드시 배로 되갚는 성격이었다.

때문에 박서연도 더 이상 말리지 않았고, 두 사람은 나란히 사무실로 들어갔다. 신청서 작성은 꽤 순조로웠고 몇 가지 절차와 도장을 밟고 나면 이제 최종 심사만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다.

돌아가기 전, 고시아는 학술 세미나에 참석해 회의 자료를 받아오는 임시 업무 하나를 맡게 되었다.

오후 3시 반, 그레이스 호텔에서 회의를 마친 고시아는 서류 봉투를 들고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남자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장난치지 말고 얌전히 굴어."

고시아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맞은편을 바라봤다.

강민규는 한 여자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호텔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여자는 서툰 한국어로 달콤하게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요, 너무너무."

그녀는 말을 하며 강민규의 목에 팔을 감더니 그대로 입술을 맞췄고, 붉은 입술은 그의 귓불을 스치며 목덜미까지 천천히 미끄러졌다.

강민규는 웃음 섞인 낮은 숨을 내뱉으며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여자의 허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고, 그 손길에는 선명한 욕망과 다급함이 담겨 있었다.

고시아의 두 눈이 찔리듯 아파왔다.

'이 여자도 같이 다니고 있었구나. 대낮부터 호텔을 들락거려?'

다음 순간, 회전문 너머로 고시아와 강민규의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욕정으로 젖어 있었고, 그녀의 눈은 냉소와 조소, 그리고 매정할 정도의 담담했다.

주변의 공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고, 강민규의 품에 안긴 여자도 고시아를 발견했다.

그녀는 고시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입꼬리를 당겨 싱긋 웃더니 다시 한번 강민규의 입술에 입을 맞췄는데 보란 듯이 거칠게 키스를 이어갔다.

고시아는 순간 밀려온 역겨움에 머리를 돌려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차 문을 열려는 순간, 누군가의 손이 불쑥 나와 문을 막았다. 뒤따라온 강민규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그녀를 막아섰고, 그의 몸에 밴 진하고 자극적인 향수 냄새가 고시아의 비위를 심하게 자극했다.

"비켜!" 고시아는 문을 닫으려 했지만, 그의 힘에 가로막혀 끝내 닫지 못했다.

다음 순간, 그녀는 허리춤을 붙잡힌 채 뒷좌석으로 밀려들어갔고, 강민규 역시 뒤따라 차에 올라탔다. 그의 차가운 얼굴엔 다급함이 서려 있었고, 눈동자 속엔 억눌린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시아야, 내가 다 설명할게."

도망칠 공간조차 없어지자, 고시아는 최대한 몸을 옆으로 피하며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네 입술에 묻은 립스틱부터 좀 닦고 말해."

강민규의 표정은 순간 어두워졌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입가를 문지르더니, 이내 눈가에 번졌던 당혹스러움도 금세 지워냈다. "마리나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서 투자 때문에 진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어. 그래서 노바 그룹에 협력을 요청한 거야. 수지는 그 그룹 이사장의 딸이고, F국에서 유학 와서 정착하는 중이라, 그냥 좀 적응할 때까지만 도와달라는 부탁이었어. 한국어도 잘 못하고 오늘은 술까지 마셨길래, 그냥 호텔까지 데려다준 거야."

강민규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고 고시아에게 바짝 다가오며 익숙하게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너도 F국 사람들 성격이 좀 자유로운 거 알잖아. 앞으론 조심할 테니까 이제 화 풀어, 응? 내가 다 보상해줄게."

고시아는 고개를 들어 강민규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 눈빛은 가을바람처럼 싸늘했지만, 말투는 오히려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투자받으려면 그 정도로 밀착해서 도와줘야 한대?"

그녀는 울지도, 투정도 부리지 않았고, 분노에 날을 세워 따지지도 않았다.

고시아는 나른한 솜 같은 말 한마디로 강민규의 모든 변명을 허무하게 만들어버렸다.

왠지 모를 허전함이 다시 밀려들자, 강민규는 짜증난 듯 넥타이를 몇 번 당겼다. "시아야, 나도 일 때문에 그런 건데, 이런 일로 문제 삼지 말자, 응?"

그 말에 고시아는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문제를 삼는 거라고? 내 휴대폰 안에 있는 사진들 전부 네 얼굴 앞에 들이밀어야 뭐가 진짜 문제인지 알겠어?'

수년간 쌓아 올렸던 감정은 지금 이 순간 불에 달군 칼날에 지져진 듯 고통과 함께 그녀의 마음속에서 사라졌다.

"강민규. 만약 이 결혼이 지겨워졌다면 그냥 솔직히 말해. 난 언제든 이혼해줄 수 있어. 절대 매달리지 않을 거니까."

'도대체 왜 굳이 날 바보처럼 여기고 거짓말을 하는 거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민규는 그녀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그의 눈빛은 섬뜩할 정도로 차갑고 어두웠다. "이혼은 안 돼. 우리 약속했잖아. 문제가 있으면 같이 해결해 나가고 이혼이란 말은 누구도 꺼내지 않기로."

'해결? 바람나서 다른 여자랑 자기까지 했는데 뭘 어떻게 해결하자는 거지?'

고시아는 마치 가시덤불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들었고,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에 상처가 날 것 같았다.

그 순간, 전화 벨소리가 갑작스럽게 울러 퍼졌고, 강민규는 얼굴을 굳힌 채 휴대폰을 꺼내더니 화면을 보자마자 곧장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고시아는 이미 그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봐버렸다. '앙큼 고양이'

그리고 강민규가 아직 휴대폰을 내려놓기도 전에, 카톡 알림이 또다시 휴대폰 화면을 밝혔다. 이번엔 '핫베이비'라는 이름으로 온 메시지였다.

"자기야, 나 다쳤어... 너무 아파."

"난 자기 없이 안 돼. 얼른 와."

"피도 나고 있는데... 나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

세 메시지는 모두 프랑스어로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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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목록

총 154장

  1. 1장제1화 이번엔 그런 기회는 없어
  2. 2장제2화 핫베이비
  3. 3장제3화 그럼 나도 오빠 하나 찾아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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