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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우연
이화린의 말을 들은 방어멈은 그제야 멀지 않은 곳에 백옥관음이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
관음상의 머리에는 선명한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붉은 자국을 따라 시선을 내리니 장롱 아래에 금은보화가 흩어져 있는 게 보였다.
심지어 장롱 서랍도 반쯤 열려 있었다. 누군가 뒤진 것 같이 보였다.
이쯤 되면 오덕무가 도둑질을 하려다 운이 나빠 넘어지는 관음상에 머리가 깨져 죽은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방어멈은 생각은 그리했지만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녀는 장씨를 흘깃 쳐다보고는 다시 이화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이화린은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있었다. 넘실대는 촛불이 그녀의 얼굴에 비쳤고 그녀의 긴 속눈썹이 그녀의 표정을 전부 가렸다.
'완벽하게 준비했으니 누구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할 거야.'
방어멈은 자신이 쓸데 없는 생각을 한 게 틀림 없다 생각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아가씨는 연주에 온 뒤부터 성격이 많이 온순해 졌고 착하고 말도 잘 듣는 다고 했다.
게다가 태사부의 명성을 고려하면, 이번 사건의 진실이 어떻든 간에 오씨 가문의 잘못으로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방어멈은 장씨를 날카롭게 쏘아봤다. "간덩이가 부었군요! 아가씨의 거처에 침입해 재물을 훔치려 하다니요!"
"그것도 모자라 장씨 부인은 저희 아가씨한테 누명까지 씌우셨지요? 노부인이 자꾸만 꿈자리가 뒤숭숭하시다고 하시며 아가씨를 찾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네요!"
장씨는 억울함을 토했다. "방어멈, 억울합니다. 덕무는 태사부의 오부인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어찌 물건을 훔친단 말입니까?"
"덕무는 그저 이화..."
장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화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장씨를 쳐다보며 물었다. "오씨 부인님, 방금 뭐라 하셨나요? 삼촌이 절 어떻게 하시려 했다고요?"
장씨는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네가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 덕무를 유혹한 거잖느냐!"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날이 어두워지자마자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겠어?! 그러다 일이 들통나려 하자 넌..."
"그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방어멈이 장씨의 말을 가로챘다. "연소민이 큰 아가씨의 몸에서 마취약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장씨 부인, 부인과 오부인이 친자매이시기에 아까는 부인 체면을 고려해 말을 하진 않았습니다. 부인 말 대로라면 저희 아가씨가 본인 절로 마취약을 드셨다는 겁니까?"
"이번 일은 노부인과 태사께 사실대로 보고할 것이니, 알아서들 하십시오."
장씨는 완전히 혼비백산했다. "아닙니다. 어멈,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이 사람들을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감시해라! 태사부의 명령이 도착하기 전까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방어멈은 정말 화가 난 것 같았다.
"저녁에 먹은 음식도 모두 찾아 내서 마취약이 들어 있는건 아닌지 확인해 봐라."
원래 오씨 가문에서 하룻밤을 묵으려 했으나, 이런 일이 발생했으니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
일행은 짐을 챙겨 객잔으로 향했고,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바쁜 하루였다. 이화린은 객잔의 부드러운 이불 위에 누웠고 오늘 얻은 성과에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뒤척이며 편한 자세를 찾으며 잠을 청했다.
그때, 창문에서 미약한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바람에 창문이 열린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피 비린내가 그녀의 코를 찔렀다.
이화린은 번쩍 눈을 뜨고 베개 옆에 놓인 비녀를 움켜쥐었다.
그녀가 움직이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그의 목소리는 찬 바람보다 더욱 차가웠다. "움직이지 마."
차가운 감촉이 그녀의 목에 닿았다.
이화린은 흠칫 놀라며 촉촉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방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고, 복도에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빛 줄기만이 방을 비췄다.
남자가 빛을 등지고 서있던 터라, 그녀는 그의 싸늘하고 날카로운 눈빛만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순간, 그녀는 맹수의 먹잇감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자는 검은 천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있어 누군지 알아 볼 수 없었다.
이화린은 피 비린내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은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남자는 부상을 당한게 분명했고 아마도 쫓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화린이 사람을 부르려 했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남자는 마치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내기 할래? 네 목소리가 먼저 나올지, 아니면 내 비수가 먼저 네 목을 자를지?"
서슬 퍼런 빛으로 번쩍이는 비수가 분위기를 더욱 차갑게 만들었고 이화린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그때, 남자는 갑자기 그녀의 이불을 들추더니 그녀를 잡아 끌고 이불 속에 누웠다.
바로 다음 순간, 몇몇 검은 그림자가 문가에 나타나더니 기척을 죽여 방 안을 수색했고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자 즉시 사라졌다.
바짝 긴장해 있던 남자의 몸이 스스르 풀렸다. 하지만 이화린의 목을 겨누고 있는 비수는 여전히 거두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거 말인데요... 이제는 치워도 되지 않나요?"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애써 침착한 척 하는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은 가녀린 고관대작 가문의 금지옥엽이 따로 없었다.
남자는 경계를 조금 풀고 그녀에 게 처방을 건넸다. "이 처방대로 약을 지어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이화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옷부터 입어야겠습니다."
남자가 급작스럽게 방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이화린은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 남자는 여전히 그녀를 제압하고 있는 자세였고 그녀는 몸 절반쯤이 그에게 깔려 있는 상태였다.
희미한 빛을 빌려 남자는 눈앞에 있는 여인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15, 16 살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얼굴은 경국지색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요사스러운 느낌 없이 하얗고 청초했고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은 밤하늘의 별과 같았으며 하얀 속옷 아래에 숨겨진 가녀린 몸매는 막 피어난 연꽃을 연상케 했다.
보아하니 방금 전 일로 적잖이 놀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옷을 입은 이화린은 처방을 건네 받았지만 방을 나설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를 쳐다봤다. "할 말이 남은 거냐?"
이화린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방금 당신 몸에서 절명초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절명초에 중독되면 피가 멈추지 않아요. 제때에 해독하지 않으면 당신의 처방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어깨의 상처를 만졌고 손에 끈적한 감촉이 느껴졌다.
상처에선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으나 검은 옷이 상처를 가려 여태 발견하지 못했다.
이정도 상처는 이미 피가 멎었어야 정상이다. 그렇다면, 여자의 말이 맞다는 건데...
남자는 이화린을 자세히 살폈다.
가녀린 몸매, 하얗고 청초한 얼굴, 정교한 이목구비까지, 마치 칼로 빚은 듯 완벽한 모습이었다.
그의 시선을 느낀 이화린의 눈빛에 경계심과 망설임이 비쳤다. "얼마 전에, 실수로 절명초를 먹었습니다."
"아직 완벽하게 해독하지 못했던 터라 아직 해독제를 가지고 있어요."
남자는 절명초에 중독되었고, 이화린은 해독제를 가지고 있다.
우연?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공교로웠다.
챕터 목록
총 8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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