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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이용의 가치
"이혼 서류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얼굴에 핏기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낀 강은정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입술로 되물었다.
박세훈은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답할 뿐이다. "애당초 당신과 결혼을 결심했던 건, 아버지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들어주는 것과 동시에 예은이를 지켜주기 위함이었어. 이제 예은이가 안전하게 돌아왔으니 내가 잘 지켜줄 거야."
강은정은 그의 말 속에 숨은 뜻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마디로 그는 아버지의 협박을 이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녀와 결혼했다는 것이다. 이미 목적을 달성했으니, 그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체면만 깎는 아내를 곁에 둘 필요는 없다는 것.
여기까지 생각한 강은정의 입 꼬리에 어느새 자조적인 미소가 번졌다. 다만 그 미소에는 체념과 씁쓸한 아이러니가 가득할 뿐.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박세훈을 쳐다보는 그녀의 두 눈에는 절망과 아주 작은 희망의 끈도 놓치지 않겠다는 기대가 차 있었다. "세훈 씨, 우리가 함께한 지난 3년 동안. 당신은 정말, 정말 날 이용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위에서 차가운 비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었던 거예요? 설마 세훈이가 은정 씨를 좋아하길 바랐던 거예요?"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야? 돼지처럼 생겼잖아."
강은정은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오는 잔인한 모욕에도 불구하고 박세훈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고집스럽게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곧바로 그의 입술을 비집고 들려오는 목소리가 쌀쌀맞기 그지없었다. "그래."
그녀의 두 눈에 순식간에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그 순간, 그녀는 누군가 그녀의 심장을 도려내 바닥에 내던져 짓밟는 것 같은 느낌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녀는 허탈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네, 그렇게 할게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집에 돌아가면 바로 사인할게요."
"내일 오전 10시. 법원에서 만나." 박세훈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다시 소파에 돌아가 앉았다.
강은정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돌려 천천히 룸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때, 한예은의 애교 가득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세훈 씨, 나 과식했나 봐요. 케이크 버려도 돼요?"
그 말을 들은 강은정은 다시 자리에 얼어붙어야만 했다.
"마음대로 해."
박세훈의 대답을 들은 그녀가 눈을 꼭 감자 뜨거운 눈물이 빗물과 함께 주르륵 흘러내렸다.
제일 빠른 속도로 클럽을 나선 그녀는 신혼집인 리베리 빌라로 돌아왔다.
박세훈이 클럽에서 말했던 것처럼, 거실 탁자 위에는 이혼 서류가 놓여져 있었다.
가슴이 바닥에 내려앉는 것을 느낀 그녀가 서류에 적힌 합의 내용을 찬찬히 살폈다. 이혼에 동의하면 위자료 600억에 고급 별장 두 채를 그녀에게 선물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박세훈은 그룹 대표의 명성에 걸맞게 대범한 사람이었다. 그녀를 3년 동안 이용한 대가를 아주 톡톡히 지불하려는 것 같았다.
3년이라는 결혼 생활과 600억에 고급 별장 두 채를 맞바꾼다면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었다.
씁쓸하게 미소 지은 그녀는 망설인 끝에 이혼 서류에 사인했다.
"똑." 하는 소리와 함께 서류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 것을 본 그녀는 급히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켰다.
그때, 휴대폰이 짧게 진동한 것을 느낀 그녀가 휴대폰을 확인하자 담당 교수님께서 그녀에게 메시지 한 통을 보내온 것이다.
"은정아, 아직도 결정 못 내린 거야? 이번 유학 신청은 인생에 다신 없을 좋은 기회야. 후회하지 말고 잘 선택해."
강은정은 메시지를 보자마자 여태껏 내리지 못했던 결정을 내리고 답장했다. "선생님, 저 유학 가겠습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결정을 내리지 못해 망설였다.
이제 망설일 이유도 필요도 없어진 지금 반드시 기회를 붙잡을 것이다.
이제 그녀에게도 새로운 삶에 발을 내디딜 기회가 생겼고, 앞으로 자신만을 위해 살 것이다.
메시지에 빠르게 답장한 그녀는 휴대폰을 챙기고 필요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전날 폭우를 맞은 탓에 고열에 시달린 그녀였지만, 몸이 불편한 것을 꾹 참고 약속 시간인 10시에 법원 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11시가 넘어도 박세훈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박세훈에게 전화를 건 강은정은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한예은의 목소리를 들었다. "세훈 씨, 나 좀 도와줘요."
뒤이어 박세훈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급한 일이 생겨 법원 일정을 다시 조절해야 할 것 같아."
그렇게 통화는 일방적으로 끝이 났다.
이미 어두워진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는 강은정은 단전에서부터 쓴 물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무거운 마음으로 박세훈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전송한 그녀는 SIM 카드를 빼서 가장 가까운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휴대폰만 주머니에 넣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오늘은 평범한 날이 아니라, 그녀가 M국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강은정은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박세훈에 관한 모든 것을 기억에서 지워버리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챕터 목록
총 2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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