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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태준은 아영의 어깨를 단단히 감싼 채 예술원을 빠져나왔다. 그의 입에서는 거짓된 분노와 보호의 약속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우리가 이 일의 진상을 밝혀낼 거야, 아영아. 약속할게. 아무도 너를 이렇게 다치게 하고 무사하지 못할 거야.”
그의 걱정은 숨 막히는 담요 같았다. 모든 단어가 정교하게 만들어진 거짓말이었고, 이제 그녀는 그것을 알았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펜트하우스로 데려갔다. 한때 안식처처럼 느껴졌던 곳이 이제는 금박을 입힌 새장이 되어 있었다. 그는 그녀 주위를 맴돌며 물과 차를 권했고, 그의 손길은 필요 이상으로 오래 머물렀다.
“좀 쉬는 게 좋겠어.”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전화 몇 통 돌려볼게. 조사를 시작해야지.”
아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혼자 있고 싶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서재로 들어가 아마도 그 ‘전화’를 하러 간 사이, 아영의 시선은 커피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그의 태블릿에 닿았다. 고통스럽더라도 더 많은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충동에, 그녀는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잠금은 풀려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떨리며 메시지 앱을 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거기 있었다. 태준과 세라 사이에 오간 길고 역겨운 메시지들이.
세라: 끝났어? 그 불쌍한 장학생 나부랭이 울고 있어? 태준: 영상은 아주 멋지게 상영됐어. 완전히 무너졌지. 네가 원했던 그대로야, 내 사랑. 세라: 최고야. 걔는 나한테 한 짓, 그리고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더 심한 꼴을 당해야 마땅해. 태준: 인내심을 가져, 세라. 이건 시작에 불과해. 걔의 추락은 아주 장관일 테니까.
메시지는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상세한 계획들. 아영에 대한 그의 경멸은 반복되는 주제였다.
태준: 재미있는 장난감이야. 너무 순진해서 거의 불쌍할 지경이야. 태준: 죽은 엄마에 대한 끔찍하고 진심 어린 이야기를 또 들어줘야 했어. 내가 널 위해 이런 것까지 한다, 세라.
그에 반해, 세라에게 보내는 그의 메시지는 애정과 거의 숭배에 가까운 감정으로 가득했다. 매일의 통화, 그녀의 해외 ‘요양’을 위한 거액의 송금, 애칭들. 그는 세라를 ‘나의 여왕’, ‘나의 빛나는 별’이라고 불렀다. 아영은 그저 ‘그 바이올리니스트’, ‘프로젝트’일 뿐이었다.
그의 이중성의 깊이에 아영은 숨이 막혔다. 이건 단순히 독주회 자리를 빼앗긴 것에 대한 복수가 아니었다. 이것은 그들 둘이 즐기는, 자신을 말로 삼은 역겨운 게임이었다.
서재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녀는 마치 불에 덴 것처럼 태블릿을 테이블 위로 떨어뜨렸다. 태준이 힘겹게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왔다. 그는 작은 흰색 상자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영아.”
그가 부드러운 어조로 시작했다.
“일어난 일도 있고… 그리고, 음, 어젯밤에 우리 같이 있었잖아… 만약을 위해서…”
그가 상자를 열었다. 사후피임약이었다. 방금 읽은 메시지들 이후, 그들이 나눈 친밀함 이후에 나온 너무나 차갑고 사무적인 이 행동은 뺨을 맞은 것 같았다.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의 지위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일시적인 오락거리, 육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입안에 쓴맛이 가득 찼다. 그녀는 주먹이 하얗게 될 때까지 상자를 꽉 쥐었다.
“고마워, 태준 씨.”
그녀는 놀랍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참… 사려 깊네.”
그는 거짓된 위로의 제스처로 그녀에게 키스하려 다가왔다. 아영이 살짝 고개를 돌리자 그의 입술이 뺨에 스쳤다. 아주 작고 거의 감지할 수 없는 움츠림이었지만, 그녀는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긴장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의 걱정스러운 가면은 굳건했다.
“내가 모든 걸 처리할게, 아영아.”
그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넌 그냥 네 자신에게만 집중해. 이 짓을 한 놈들이 대가를 치르게 할게. 그리고 이 일이 잠잠해지면, 내가 약속했던 파리 여행 가는 거야. 너랑 나, 단둘이서.”
더 많은 거짓말. 더 많은 헛된 약속. 그는 그녀가 아직도 그렇게 잘 속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다음 날 아침, 소환장이 왔다. 의붓아버지 한정혁의 퉁명스러운 전화였다. 그의 목소리는 빙하처럼 차가웠다.
“아영아. 내 사무실로. 지금 당장.”
아영이 한남동 저택에 도착했을 때, 분위기는 비난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라는 해외에서 돌아온 충격과 갈라 영상의 충격에서 아직 ‘회복 중’이라며 보이지 않았다. 세라의 어머니인 캐롤라인 여사는 한정혁 옆에 서서 경멸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정혁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 영상. 그 스캔들. 네가 이 집안을 더럽혔어, 아영아.”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분노에 차 있었다.
“전 안…”
아영이 말을 시작했지만, 그가 말을 끊었다.
“닥쳐!”
그가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손이 날아와 그녀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아영은 뒤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뺨이 얼얼했고, 눈물이 핑 돌았다.
“넌 우리 명예의 오점이야.”
한정혁이 증오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 엄마처럼.”
캐롤라인 여사는 차가운 만족감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버스 표 예매해 놨다.”
한정혁이 어떤 온기도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는 마호가니 책상 위로 얇은 표 한 장을 던졌다.
“네 엄마가 살던 옛날 동네로 돌아가. 강원도로. 넌 서울을 떠나는 거야. 주한 예술원 장학금은… 더 이상 문제 일으키면 없는 줄 알아.”
추방. 그는 그녀를 내쫓고 있었다. 아영은 표를 보다가 의붓아버지를 다시 쳐다봤다. 싸울 의지가 사라졌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들은 이미 그녀의 죄를 단정 지었다.
“알았어요.”
그녀가 속삭였다. 이상한 평온함이 그녀를 감쌌다. 떠나고 싶었다. 이 도시, 이 사람들에게서 벗어나야 했다. 한정혁은 그녀가 너무 빨리 굴복하자 놀란 듯했다.
“좋아.”
그때, 그의 얼굴에 다른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그의 이미지.
“세라가 오늘 밤 조촐한 귀국 파티를 열 거야. 태준이가 세라를 위해 주최하는 거지. 너도 참석해야 한다. 웃어야 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해. 네가… 사라질 때까지는 우리가 단합된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까.”
치욕 속에서도 그녀는 그들의 완벽한 가족 이미지를 위한 소품이었다. 아영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 집에서 자신의 방이었던 곳으로 돌아온 아영은, 그곳에 두었던 몇 안 되는 소지품을 천천히 챙기기 시작했다. 나중에 작은 기숙사 방으로 가서 나머지를 챙길 것이다. 그녀는 태준을 위해 뜨개질하던 목도리를 발견했다. 침착하고 꾸준한 손길로, 그녀는 그것을 한 땀 한 땀 풀었다. 쓸모없는 실뭉치가 될 때까지. 그녀는 그가 준 모든 작은 선물, 그의 거짓된 애정의 모든 증표를 똑같이 처리하여 쓰레기통에 버렸다. 풀린 실 한 올, 버려진 물건 하나하나는 관계를 끊는 작은 행위였고, 조용히 자신을 되찾는 과정이었다.
챕터 목록
총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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