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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마지막 한달
자리로 돌아 온 김유나는 서류를 책상에 올려놓고 휴대폰을 꺼내 이혼 합의서를 사진 찍었다.
그리고 바로 시어머니 장혜지에게 전송했다.
암 진단을 받은 이튿날, 그녀는 장혜지를 찾아가 이혼에 대해 상의했다.
장혜지는 고승주가 김유나와 이혼하고 김씨 가문의 아가씨와 결혼하기를 바랐다. 그렇게 되면 고씨 가문은 김씨 가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김유나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으니, 장혜지는 더더욱 김유나를 고씨 가문에 남겨 두고 싶지 않았다.
장혜지는 고승주가 이혼서류에 사인을 하기만 하면 보상금으로 30억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상대방은 거의 바로 답장을 보냈다. [사진 확인했어.]
김유나는 진단서와 이혼 합의서를 가방에 챙겨 넣은 뒤,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그녀가 며칠 전에 작성한 사직서가 들어 있었다.
떠나기로 마음먹었으니, 깔끔하게 뒤끝 없이 떠나려 했다.
사직서와 나머지 필요한 서류를 챙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무부 부장 사무실로 향했다.
부장은 온화한 인상에 안경을 쓴 중년 남자였다.
김유나가 건넨 사직서를 본 그의 눈에 놀라움이 번졌고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김 팀장, 사직하려는 거야?"
김유나는 뛰어난 업무 능력으로 지난 몇 년 동안 그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그녀가 있는 한, 재무부 부장의 자리는 굳건할 것만 같았는데...
김유나가 사직하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김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장님. 그 동안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와 고승주는 비밀 결혼을 했기에,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재무 부장은 김유나의 팔을 잡아 끌었다. "혹시 월급이 적어서 그래? 내가 승진과 월급 인상을 신청해 줄게!"
김유나는 피식 웃었다. "월급 때문이 아니에요."
"정말 마음을 정했어?"
"네, 결정했어요."
고승주를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그의 회사에 머무를 수 없었다.
김유나의 확고한 태도에 부장은 그녀를 설득하려던 말을 억지로 삼켰다.
한숨을 길게 내쉰 그가 펜을 꺼내 서류에 서명했다.
펜을 내려놓은 부장이 물었다. "사직하려는 이유는 뭐야?"
김유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병에 걸렸어요. 일과 목숨 중, 목숨이 더 중요하니까요."
부장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치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직 절차는 한 달이 걸리고, 이혼 숙려 기간도 한 달이다.
한 달이 지나면, 그녀는 완전히 자유로워질 것이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김유나는 어제 산 달력의 첫 페이지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새 달력에는 선명한 빨간색 숫자 2가 적혀 있었다. 오늘은 7월 1일, 한 달이 지나면 8월 1일, 그날이 바로 그녀가 이 집을 떠나는 날이다.
과일을 접시에 담아 거실로 나온 가정부 정 이모가 탁자 위에 놓인 달력을 보고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사모님, 달력에 무슨 의미라도 있나요?"
김유나는 싱긋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제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생일을 잊지 않기 위해 달력을 샀어요."
정 이모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달력을 쳐다봤다.
'생일 알림은 휴대폰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요즘 세상에 달력을 쓰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정 이모는 의아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과일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향했다.
"참." 주방 문 앞에 멈춰 선 정 이모가 머뭇거리며 김유나를 돌아봤다. "사모님, 제가 방금 사장님께 전화했는데, 사장님께서 오늘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어요."
김유나는 포도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정 이모는 깜짝 놀랐다.
예전만 하더라도 사장이 약속이 있어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김유나는 항상 의심증이 폭발해, 수십 통의 전화를 걸어 사장의 행방을 확인했다.
사소한 일 하나까지도 전부 알아내야 직성이 풀렸다.
가장 심했을 때는 사장의 휴대폰에 추적 어플을 설치한 적도 있었다.
그 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사모님은 자신의 손목을 그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하지만 오늘의 사모님은 평소와 달리 조용했다. 소란을 피우지 않고 조용히 있는 모습이 이상하기만 했다.
평소와 다른 행동은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이다.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 김유나가 화면을 확인하자, 사촌 오빠 허정한에게서 걸어온 전화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허정한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나야, 퇴근했어? 바빠?"
김유나는 손에 쥔 사과 조각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아니, 방금 퇴근했어. 왜?"
허정한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오빠가 승진했어. 월급도 올랐고. 부모님도 너를 보고 싶어 하셔. 오늘 저녁에 다 같이 밥 먹자, 어때?"
"응, 좋아." 김유나는 바로 대답했다.
"내가 데리러 갈게."
통화를 마친 김유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 이모에게 외출한다고 말한 후, 그녀는 바로 저택을 나섰다.
정 이모는 김유나의 뒷모습을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런, 이럴 줄 알았어! 사장님을 향한 사모님의 집착이 얼마나 심한데, 잠잠하다 했어!'
'결국, 큰일을 벌이려는 거였어!'.
김유나는 길을 걸으며 허정한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기름이 없어 주유소를 들여야 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거였다.
김유나는 바로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허정한은 김유나의 셋째 삼촌의 아들로, 김유나보다 세 살 많다. 올해 스물일곱 살인 그는 아직 여자친구가 없었고, 그 탓에 셋째 삼촌 내외는 걱정이 태산이다.
허정한은 매번 결혼을 재촉하는 부모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고 여자친구를 찾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김유나는 김씨 가문과 왕래가 적었지만, 셋째 삼촌 가족과는 가깝게 지냈다. 셋째 삼촌과 이모는 슬하에 딸이 없었기에 김유나를 친딸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위자료 한푼 받지 않고 김씨 가문을 떠났을 때, 두 모녀를 도와 준 사람 역시 셋째 삼촌 일가족이었다.
셋째 삼촌 가족은 그녀와 어머니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아파트 단지를 나서자마자, 허정한의 전화가 걸려왔다.
"유나야, 지금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많이 막혀. 마침 친구가 네 집 근처에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친구한테 너를 태워 달라고 부탁했어."
허정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은색 벤틀리가 그녀의 앞에 멈춰 섰다. 김유나가 반응하기도 전에, 차창이 내려갔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휴대폰을 손에 꼭 쥔 김유나는 억지로 대답했다. "오빠, 나 오빠 친구를 본 것 같아."
검은색 셔츠를 입은 잘생긴 얼굴의 남자였고 걷어 올린 셔츠 소매 아래로 그의 탄탄한 팔뚝이 드러났다.
가늘게 뜬 눈으로 김유나를 쳐다보는 서이준은 5년 전을 떠올렸다.
그때, 어린 꼬마였던 그녀는 항상 전문 서적을 손에 쥔 채, 오빠, 오빠하며 그의 뒤를 쫓아다녔고 책의 내용을 설명해 달라고 졸랐다.
몇 년 만에 만난 그녀는 풋풋한 소녀의 모습을 벗어내고 성숙한 여인의 매력을 풍겼다.
연보라색 원피스에 높게 묶은 포니테일, 그녀의 눈빛에는 약간의 어색함이 묻어났고 어릴 때보다 훨씬 말라 보였다.
남자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얇은 입술 사이로 한 글자가 흘러나왔다. "타."
챕터 목록
총 14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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