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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산속

"언니, 빨리 일어나."

서은정은 다른 가족들이 들을까 두려운 듯 목소리를 낮게 깔고 서은별을 살며시 흔들어 깨웠다.

"은정아, 지금 몇 시냐?" 서은별은 잠이 덜 깬 듯 눈을 비볐다.

"묘시야, 언니."

'묘시? 5시부터 7시를 뜻하는 군.'

"아직 이르지 않느냐?"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서은정이 그녀를 깨웠던 것이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물을 긷고 허드렛일을 하는 것이 그녀들의 일상이었으니까.

그 생각이 서은별은 들자 마음이 아려왔다.

"은정아, 오늘은 허드렛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응? 그랬다간 어른들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우리한테 금식을 명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 일을 하겠느냐? 우선 먹을 것부터 찾아야겠다. 너와 나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지만 막내는 아직 너무 어리구나. 나와 같이 산에 오르자꾸나, 여홍산에 나물과 열매가 많았던 기억이 나는구나."

서은별은 반드시 살아 남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의 허약한 몸으로는 끼니를 때우다간 이틀도 버티지 못할 게 뻔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두려워하지 마. 굶어 죽는 것보다 매 맞는 게 낫지 않겠니?"

"알았어, 언니. 막내도 함께 데려가자. 혼자 집에 남겨두는 건 불안해."

"응, 그럼 막내를 깨우거라."

일각 후, 세 남매는 바구니를 메고 여홍산을 향해 걸었다.

전설에 따르면, 과거 여홍산 정상에 무지개가 자주 나타났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무지개를 신선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복을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어느 학식있는 노인이 이곳을 지나다 무지개 홍자를 따서 여홍산이라 이름을 지었다.

서은별의 기억에 따르면, 그녀는 자주 이 산에 올라 나물을 캤지만 깊은 산 속까지 들어 간 적은 없었다. 산 깊은 곳은 상당히 위험해서, 실력이 뛰어난 사냥꾼들만 들어갈 수 있었고 마을의 부녀자들과 아이들은 산기슭과 과일이 있는 곳에서만 활동 하는 게 전부였다.

500 미터 정도 걸어 세 남매는 산기슭에 도착했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면서 시야가 밝아 졌고 주변이 눈에 보였다. 서은혁은 아직 어렸기에 반쯤 감긴 눈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셋중에서 가장 힘이 셌던 서은정이 서은혁을 품에 안고 가다 쉬는 걸 반복하며 천천히 산길을 걸었다.

"언니, 마을과 가까운 곳 나물들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캐가서 찾기 어려울 것 같아."

서은정은 나물이 있을 만한 곳을 모두 둘러보고 돌아와 서은별에게 말했다.

"그러면 조금 더 올라가 볼까, 은정아?"

동생들에게 먹을 것을 구해 줘야 했기에 서은별은 깊은 곳 까지 들어가고 싶었다.

"위험해, 언니. 잊었어? 우리 부모님도..."

서은정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고 부모님의 죽음을 떠올린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도적들은 이미 관청에서 소탕했지 않니?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 예슬아. 아버지께서 여홍산 깊은 곳엔 작은 계곡이 있고, 물고기가 많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는구나."

"하지만..."

"가자, 예슬아."

"응, 언니."

산속 깊이 들어가자, 폭포 소리가 들렸고 그들의 눈에 희망이 가득 차 올랐다.

이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포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은정은 급히 동생을 나무 아래에 내려놓고, 가지고 온 대나무 물통에 물을 길어 언니에게 건넸다.

"언니, 막 병이 나았고 밥도 못 먹었으니, 먼저 물이라도 마셔."

"그래."

서은별은 이 세상에서 새롭게 만난 여동생을 바라보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다니,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막내야, 일어나. 먼저 입 헹구고 세수해야지."

서은정은 자고 있는 서은혁을 깨워 얼굴을 씻겨주었다.

녀석은 잠이 덜 깬 듯 비몽사몽 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둘째 누나, 우리 왜 숲에 있어?"

"언니가 이곳에서 먹을 걸 구하자고 했어. 그래서 내가 널 안고 여기까지 온 거야. 보여? 저 개울 봐봐 물고기가 아주 많아."

"물고기! 둘째 누나. 물고기 먹고 싶어!"

물고기란 세 글자에 서은혁은 눈을 번쩍 떴다.

"누나! 기다려 내가 큰 물고기를 잡아 올게!"

"그래, 얕은 곳에서만 놀고, 절대 깊은 곳에는 들어가지 마."

"알겠어 누나! 걱정하지 마."

서은별은 두 동생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현재, 그녀의 몸은 너무 허약했다. 얼마 걷지도 않은데 온 몸에 힘이 다 빠져버렸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집안 어른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동생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하복부에서 알 수 없는 열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즉시 눈을 감았고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다시 눈을 떳을 때, 그녀는 생소한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중앙에는 옹달샘이 있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작은 오두막 한 채가 있었으며 주변은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대략 계한해 보니 약 200평 정도 되는 곳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조금 전에 있던 곳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보니 원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소설 속에서 흔히 등장하던 이공간이 분명했다.

그녀는 기쁨을 억누르고 그녀는 즉시 다시 이공간에 진입해 보았다. 역시나 그녀의 생각대로 순조롭게 그 이공간에 드나들 수 있었고 이공간에서의 행동 또한 자유로웠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이 험난한 세계에서 그나마 작은 희망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이직 이공간의 비밀을 전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에겐 시간이 많았다.

그녀는 일단 이공간에 대한 일을 두 동생에게 비밀로 하기로 했다. 나이가 어린 두 동생이 겁을 먹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동생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얼른 나가려 했지만 이공간의 옹달샘에 자꾸만 눈길이 끌렸다. 맑고 깨끗했으며 알 수 없는 신성한 힘이 느껴졌다.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손으로 물을 떠서 입에 넣었다. 순간, 온몸이 치유되기 시작했고 힘도 천천히 되돌아 왔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안돼, 이 샘물을 함부로 마실 수 없어.'

그녀는 돌멩이를 주워 그 옹달샘에 넣어 보았다. 돌멩이는 아무런 변화도 없이 옹달샘에 잠겼다. 주위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그 돌멩이를 건져 올려 자세히 관찰해 보았지만 달라진 점은 없었다.

"누나, 둘째 누나가 물고기를 잡았어!"

서이혁의 목소리에 그녀는 잠시 현세로 돌아 왔다.

"봐! 누나! 우리 이제 물고기를 먹을 수 있어!"

서은혁은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어다니며 기뻐했다. 하지만 메마른 그의 몰골을 보노라니 서은별은 마음이 무거웠다.

"은정아, 정말 대단하구나."

서은별은 여동생이 팔뚝만 한 물고기를 들고 그녀를 향해 다가 오고 있었고 서은혁은 그녀의 옆을 맴돌며 환호를 질렀다.

물고기 품종은 알 수 없었으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언니, 이 물고기가 글쎄 간이 배밖에 나왔는지 우릴 보고도 도망치지 않았어. 그래서 쉽게 잡을 수 있었어."

서은정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너희들은 일 단 옷부터 벗어서 말리거라. 안 그러면 감기에 걸릴 거다. 불은 내가 피우겠다."

그녀는 서은혁을 서은정에게 맡기고는 장작을 찾아와 불이 지폈다. 본주의 기억이 있었기에 불을 붙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불을 지피고 나서 서은별은 물고기를 대나무에 꿰고, 불에 고기를 구웠다. 아무 양념도 없었던 터라 비린내가 많이 날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은정아, 혹시 근처에서 나물은 못 봤니?"

"못 봤어. 여긴 처음이라 주위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몰라."

서은정은 서은혁의 옷을 잘 씻어 나무 가지에 걸어 말렸다. 그리고 나서야 자신의 옷을 씻기 시작했다.

무심코 물고기를 굽고 있던 서은별은 배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이공간이 그녀와 교감을 시도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상한 기분에 따라 눈을 감고 바닥에 손을 짚은 채 머릿속에 나물을 떠올렸다.

순간, 이산의 모든 것들이 전부 그녀의 눈에 보였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나물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산을 벗어나면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서은별은 뛸 듯이 기뻤다.

'좋아, 아주 좋아.'

그녀는 소설 속의 여주들처럼 박식하지 않았고 의술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공간이 있었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누나, 누나. 왜 그래?" 서은혁이 미친 듯 웃어대는 서은별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무래도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언니..."

서은정도 마찬 가지였다. 물에 몸을 던졌던 서은별이 깨어 났을 때부터 그녀가 뭔가 달라 졌다고 느꼈지만 여태 두려운 마음에 말을 꺼내지 못했었다.

정확이 뭐가 달라졌다고 집어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서은별의 눈빛은 전과 달리 두려움이나 나약함은 없었고 차분하기만 했다.

"하하, 놀랐느냐? 괜찮다. 물고기를 먹게 되어 너무 기뻐서 웃은 거다. 신경 쓰지 말거라, 난 저쪽에 가서 나물이나 찾아 볼 테니 너희는 물고기를 잘 지켜보거라."

말을 마친 서은별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전 까지만 해도 허약하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언니, 몸은 괜찮아?"

"괜찮다, 오래 안 걸릴 거야. 아까 오는 길에 얼핏 야생 대파를 본 것 같은데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 안 그러면 비려서 먹기 힘들 거다."

"빨리 돌아와, 언니."

"그래, 막내 잘 보고 옷을 말리고 있어라. 안 그러면 감기에 걸릴 거다."

"응."

두 동생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즉시 이공간을 불러냈다.

그리고 이공간의 새로운 사용법을 알게 됐다. 몸을 현세에 남겨둘 수도 있었고 몸까지 이공간 속에 들어 갈 수도 있었다.

이공간 속에 들어간 그녀는 즉시 샘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랬더니 달려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

이내, 그녀는 문뜩 손바닥을 땅에 댄 채 아까 야생 대파가 있었던 곳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순간, 그녀는 공간을 이동하여 순식간에 대파 앞에 도착했다.

'순간 이동인가? 조심해야겠어, 절대 이 능력을 사람들에게 들켜서는 안돼.'

그녀는 몸을 숙여 대파를 꺾어 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눈을 감고 이번에는 과일들을 떠올렸다.

즉시, 근처에서 대추 나무를 발견 했다. 샘물을 효력이 대단했다. 뛰는 건 물론이고 나무에 오른 것도 너무 쉬웠다. 그녀는 손쉽게 나무에 올라 대추를 바구니에 한 가득 담았다.

그렇게 그녀는 대추와 대파를 바구니에 담은 채 아무일 도 없었다는 듯 동생들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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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목록

총 77장

  1. 1장제1화 이사
  2. 2장제2화 산속
  3. 3장제3화 피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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