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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우리 이혼하자
원서연은 못 들은 척 살며시 배준혁의 턱에 입을 맞췄다. "준혁 씨, 할아버지께서 우리도 슬슬 아이를 가져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던데..."
잠시 멈칫하던 배준혁은 이내 코웃음을 터뜨렸다. "원서연, 내가 결혼 전에 분명히 말했을 텐데. 선 넘지 말라고."
그래, 말했었다.
그는 결혼 전부터 원서연에게 허튼 생각 하지 말라고, 그가 원서연에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배 사모님'이란 타이틀 뿐이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었다.
그리고 정말 배준혁의 말 그대로 결혼 후 3년 동안, 둘은 같은 침대에서 자면서도 입조차 맞춘 적이 없었다.
원서연은 속으로 씁쓸하게 생각했다. '그럼 그 동안 박효민을 위해 몸을 아꼈다는 거야?'
'나랑은 3년 동안 손끝 하나 스친 적 없던 사람이, 이젠 박효민이 돌아오니까 집엔 들어오지도 않고, 심지어 몸엔 그 여자의 향수 냄새까지 달고 다닌다고?'
'둘이 밖에서 자고 온 걸까?'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얽힌 원서연은 생각할 수록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박효민보다 못한 게 뭔데?'
원서연은 결국 참지 못하고 배준혁의 벨트를 확 움켜쥐었고 고개를 들어 그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비웃듯 말했다.
"이건 부부 사이의 기본적인 의무 아닌가? 설마 당신... 그쪽에 문제라도 있는 거야?'
남자라면 누구나 이런 자극을 참을 수 없을 것이고 하물며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배준혁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의 반응을 확실히 느낀 원서연의 입가에 조그마한 웃음이 번지려던 찰나, 배준혁은 그녀를 힘껏 밀쳐냈고, 어깨의 상처가 짓눌린 원서연은 아픔으로 인해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배준혁은 눈가에 스친 욕망을 간신히 억누르며 차갑게 말했다. "전시회에서 다쳤으면 조용히 쉬어.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아까보다는 조금 부드러워진 어조였지만, 원서연의 귀에는 오히려 더욱 날카롭게 들려왔다.
'알고 있었구나...'
원서연이 전시회에서 다친 것도,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그에게 수많은 전화를 걸었던 것도, 배준혁은 모두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했던 거였다.
극심한 고통이 원서연의 마음을 휩쓸었고, 이젠 어깨가 아픈 것인지, 마음이 아픈 것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이를 꽉 악물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겨우 참아냈다.
아마도 배준혁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그녀의 자리가 없을 듯했다.
원서연은 깊게 한숨을 들이키고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준혁 씨, 당신 요즘 수석 디자이너를 구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나..."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준혁이 차갑게 말을 끊었다. "그게 네 목적이었어?"
원서연은 멍하니 굳어버렸다. 배준혁은 그녀에게 반응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 조롱 섞인 말을 이어갔다. "원서연, 내 회사는 네가 장난치는 놀이터가 아니야. 배 사모님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고 정말 뭐든 다 네 맘대로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네가 진짜 실력이 있었다면, 그 자리에 앉아도 아무도 뭐라 안 해. 하지만 지금의 넌 그냥 내 발목이나 잡는 웃음거리일 뿐이야."
'내가 실력이 없다고?'
원서연은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넌 정말 나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구나... 내 대학 전공이 디자인이었던 것도 모른다니.'
원서연은 문득 메일함에 묻혀 있는 그 입사 초대장이 떠올랐다. 1년 전, 해외의 유명 브랜드 FV에서 그녀에게 수석 디자이너 제안서를 보내왔었다.
하지만 그때, 원서연은 배준혁의 옆에 있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망설임 없이 그 제안을 거절했었다.
언젠가는 배준혁과 마음이 통할 거라는 그 꿈 때문에, 그 빌어먹을 사랑 때문에 찾아온 기회들마저 모조리 포기했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이다.
원서연은 머리를 들어 배준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비웃는 듯 물었다. "그래서? 내가 박효민의 전시회를 준비하다가 죽을 뻔한 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거야? 내가 그렇게까지 했는데, 넌 고작 수석 디자이너 자리 하나 못 넘겨줘?"
배준혁은 그녀의 손을 확 잡아 떼며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불쌍한 척 하지 마. 그냥 가벼운 찰과상일 뿐이잖아. 그리고 원서연, 부탁할 때는 네가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먼저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는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효민이는 소문 난 천재 화가야. 그런 애가 전시회 하나쯤 여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근데 넌? 원서연, 넌 나한테 몸 바치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뭔데?"
그 말은 정말 독을 품은 칼날처럼 원서연의 마음에 꽂혀 온 몸이 아파오는 것 같았다.
원서연은 말없이 배준혁을 올려다봤다. 예전에는 늘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얼굴이, 이제는 어둠을 뒤집어 쓴 괴물처럼 일그러져 보였다.
'네 마음속의 난, 이토록 보잘것없는 존재였구나...'
"그래." 원소연은 조소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박효민보다 못하고 너랑도 어울리지 않아. 그러니까, 배준혁, 우리 이혼하자. 넌 너의 박효민이랑 평생 행복하게 살아."
'녹일 수 없는 얼음이라면, 이젠 나도 싫어.'
그러자 배준혁의 눈가에는 더욱 진한 조소가 번졌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마음대로 해. 나중에 또 울며불며 다시 나한테 매달리지 말고!"
말을 마친 배준혁은 문을 쾅 닫고 나갔다.
방 안은 다시 어둠에 잠겼고, 원서연은 침대에 앉은 채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참 추했다.
이 결혼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추했다.
챕터 목록
총 19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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