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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엄마, 나 아빠를 봤어
5년 후.
Y국 최고급 경매장.
넓은 홀에는 상류층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경매석에 선 경매사는 흰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머리는 높게 묶어 올렸다. 얇은 천으로 얼굴을 가려 이목구비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우아한 몸짓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유창한 영어로 경매품을 소개하자, 아래에 앉은 사람들은 앞다퉈 입찰에 참여했다.
경매사는 맑은 눈빛으로 홀을 훑어 보며 손에 든 나무 망치로 경매장을 장악했다.
2층에 앉은 육지훈은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할아버지가 꼭 만나고 싶어 하시는 분이 저분이야?"
옆에 선 비서가 서류를 건네며 답했다. "네, 예린 씨라고 합니다. 5년 전 본 경매장에 입사한 경매사인데, 첫 경매에서 시작가 2억 짜리 산수화를 120억에 낙찰시켜 60배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바로 그 일을 계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육지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항상 마스크를 쓰고 일해?"
비서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걸로 유명한데, 한번은 누군가 20억 원을 제시하며 마스크를 벗어보라고 했지만 거절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얼굴이 너무 못생겨서 그렇다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육지훈은 담배를 비벼 끄고, 아래의 경매사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눈이 꽤 예쁘군."
저렇게 예쁜 눈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못생겼을까.
게다가 그 눈빛은 자꾸만 누군가를 떠오르게 했다.
그 누군가는 바로 하예진이었다.
5년 전, 이혼 서류만 덩그러니 남긴 채,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낙태 수술을 받고 떠난 그녀... 그는 여태 그녀를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내 앞에 데려와."
육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몇 걸음 걷다 다시 멈춰 섰다.
"5년이 지났는데, 하예진은 아직도 소식이 없어?"
비서가 살짝 움찔했다.
사람이 마치 증발하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는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육씨 가문의 사모님은 정말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5년 동안이나 조사를 했지만 여전히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육지훈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계속 찾아봐."
'독한 년.' 이혼, 낙태. 그것도 모자라 그녀는 그의 모든 연락처를 차단해 버렸다.
육씨 그룹의 대표가 일방적인 이혼을 당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가 자신을 버린 여자를 5년째 찾아 다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육지훈은 반드시 그녀를 찾아내야 했다. 만나서 따져 물어야 했다. 도대체 그가 무슨 죄를 졌기에 그녀가 그토록 매몰차게 자신을 버렸는지.
육지훈이 떠나자, 비서 강현수는 그 자리에 서서 식은땀을 흘렸다. 그녀가 있을 법한 곳은 전부 다 찾아봤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아 내지 못했다.
5년 동안 찾지 못한 사람을 계속 찾는 것은, 정말 망망대해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강현수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사모님, 대체 어디에 계신 겁니까…"
경매가 끝나자, 예린은 우아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경매장을 떠났다.
5년 전, 하예진은 Y국에 도착해 이 경매장에 입사했다. 불필요한 관심을 피하기 위해 예린이라는 가명으로 항상 마스크를 쓰고 일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핑크색 옷을 입은 꼬마가 짧은 다리로 후다닥 뛰어와 쪼끄만 손으로 하예진의 다리를 꼭 껴안았다. "엄마!"
하예진은 마스크를 벗어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내며, 허리를 숙여 딸을 품에 안았다. 그녀는 말랑말랑한 딸의 볼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 "시연아, 오래 기다렸어? 오빠들은 어디 갔어?"
하시연은 작은 손으로 주먹을 꼬 말아 쥐고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 "흥! 오빠들은 놀러 갔어요."
"시연이는 데려가지 않았어?"
"남자들끼리 하는 게임이라서 시연이는 못 간대요."
하예진은 할 말을 잃었다.
데려가기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될 것을…
당시 하예진은 마음이 식어 아이를 지우려 했지만, 막상 수술실 문 앞에 서니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아이를 포기 할 수 없었다.
Y국에 온 지 두 달 뒤, 그녀는 세 쌍둥이를 출산했다. 두 명의 남자아이와 한 명의 여자아이.
첫째 하준우, 둘째 하준서, 셋째 하시연. 첫째는 어른스럽고, 둘째는 장난꾸러기다. 그리고 셋째는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하예진은 품에 안긴 딸을 보며, 당시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맞다, 엄마! 시연이랑 오빠들이 오늘 누구 봤는지 맞춰봐요."
"누구를 봤는데?"
"나쁜 아빠요!"
시연이가 큰 소리로 외쳤지만, 하예진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시연아, 누굴 봤다고?"
"시연이랑 오빠들이 나쁜 아빠를 봤어요! TV에 나오는 그 사람 말이에요. 이름이… 이름이… 육지훈! 나쁜 아빠, 무서운 아빠!"
시연이는 말하면서 작은 손을 휘저으며 열심히 설명하려 했다.
하예진의 심장이 철렁했다.
그녀는 몇 년 동안 육지훈이라는 이름을 듣지도, 떠올리지도 않으려 애썼고 나중에 가서는 그의 존재를 거의 잊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딸아이 입에서 그 이름이 튀어나오자 과거의 기억들이 물밀듯 밀려왔고, 가슴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육지훈이 어떻게 여기에 온 거지?'
아이들은 그저 아빠 이름이 ‘육지훈'이라는 것만 알 뿐이고 TV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게 전부다. 그러니 아이들이 잘 못 봤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시연아, 잘못 본 거야. 육지훈 아저씨는 여기 오지 않아."
"하지만…"
똑똑.
두 번의 노크 소리가 시연이의 말을 잘랐다.
"누구세요?"
"예린 언니, 바쁘신가요?
실장님께서 언니더러 지금 당장 로비로 내려오라고 하셨어요. 귀한 손님이 언니를 찾고 계신다고 하시더군요. 매니저님께서 매우 급해 보이셨어요."
'귀한 손님?'
경매장은 귀한 손님이 넘쳐나는 곳이다. 실장이 그렇게까지 긴장하는 손님은 흔치 않았다.
하예진은 어떤 손님인지 궁금해졌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내려갈게요."
"하지만 엄마, 시연이가 정말 나쁜 아빠 봤어요…"
시연이는 작은 눈썹을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예진이 딸을 돌아보자, 하시연은 눈을 깜빡이며 실망한 듯 물었다. "엄마 또 일하러 가는 거예요?"
하예진은 하시연을 소파에 앉히고는 미안해 하며 말했다. "시연아, 조금만 기다려 줄래? 엄마 금방 돌아올게. 알겠지?"
하시연은 엄마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엄마 일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시연이는 착한 아이니까!'
"네… 시연이는 엄마 기다릴게요."
하예진은 시연이의 볼에 다시 한번 입을 맞추고, 빵을 건네주며 말했다. "시연이는 이 빵 먹고 있어. 엄마가 돌아오면 시연이랑 오빠들한테 맛있는 거 사줄게. 어때?"
"네."
하예진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다시 마스크를 썼고 사무실 문을 나서며 딸을 한번 더 돌아보았다.
하시연은 빵을 손에 쥔 채 문 앞에 서서 엄마가 문을 나서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는 또 떠났어. 너무 심심해.'
시연이는 빵을 내려놓고, 팔찌형 전화기로 오빠를 호출했다. "오빠들, 어디야? 시연이도 거기로 갈래."
곧 답장이 왔다. [지하 주차장.] 위치도 첨부되어 있었다.
지하 주차장, 두 아이는 검은색 마이바흐 앞에 서 있었다.
하준우는 팔짱을 끼고 하준서를 바라보았다. "정말 이 차가 나쁜 아빠 차 맞아?"
하준서는 펜을 손에 쥐고 차량에 열심히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그림을 마친 하준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틀림없어. 내가 똑똑히 봤어. 이 차에서 내린 사람은 분명 TV에 나오는 그 사람이었어."
하준우는 차에 그려진 낙서를 보며 중얼거렸다. "쓰레기."
챕터 목록
총 10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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