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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거래를 제안하다
두 눈에 당혹감이 어린 도적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소서연은 먼저 입을 열었다.
"하나."
"칼을 치우면 바로 알려줄게."
콩알만 한 식은땀이 도적의 얼굴을 타고 연신 흘러내렸지만, 그는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소서연은 누구보다 배후를 알아내고 싶어 하기에 이렇게 쉽게 그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도적 우두머리의 생각을 꿰뚫어 본 소서연은 차갑게 비웃었다. "둘."
"쾅!"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칼이 아래로 떨어지며 도적의 목을 그었다.
도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중얼거렸다. "분, 분명 셋까지 센다고 했잖아..."
"어차피 배후를 밝힐 생각도 없어 보이는데, 내가 왜 애꿎은 시간만 낭비해야 하지?"
다시 칼을 허리춤 뒤로 숨기는 소서연의 행동은 물 흐르듯 능숙하고 자연스러웠다.
꿀꺽,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본 욱이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자를 죽이면, 누가 너를 해치려 했는지 어떻게 알아낼 셈이냐?"
그때, 등 뒤에서 낯선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잔뜩 경계하며 고개를 돌린 소서연은 조각 같은 이목구비와 짙은 눈빛을 마주했다.
빼어난 얼굴에 옥골선풍으로 기강을 잡았지만, 안타깝게도 다리를 쓰지 못하는 듯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몸 주인의 기억을 더듬은 소서연은 눈앞에 나타난 남자에 관한 정보를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섭정왕 배현석, 현제 황제의 아우로 원래 '진'이라는 봉호를 받았으나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선황에 의해 섭정왕으로 봉함으로써 황제를 보좌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러 신하와 백성의 눈에는, 배현석은 조정을 장악하고 대군을 틀어쥔 간사하기 그지없는 왕야로 인식되어 평판이 바닥을 쳤다.
이후 어찌 된 영문인지, 기이한 독에 중독되어 다리가 마비된 후 조정의 크고 작은 일도 거의 간섭하지 않았다.
소서연은 섭접왕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군인이라면 항상 마음이 앞선 그녀는 몸 주인의 기억을 더듬다 섭정왕이 변방에서 나라를 위해 땅을 지키고,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 전공이 혁혁한 영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문 가득한 소서연의 얼굴이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았다.
"저를 해치려는 사람은 몇 명밖에 없습니다. 배후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한 명씩 찾아가 복수하면 됩니다."
무심하게 내뱉은 그녀의 목소리에 살기가 묻어났다.
욱이는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여자는 외모로 판단할 수 없다고 하더니, 귀여운 얼굴과 가녀린 몸을 지닌 여인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끔찍한 행위를 할 줄 누가 알기나 했을까.'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들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던 소서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시신도 아직 처리하지 못한 데다, 그녀의 행동을 몰래 지켜본 사람까지 있었다.
몸 주인은 이리저리 치이는 신세니, 만약 경성에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대인이 있다면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을 끝마친 소서연은 배현석을 올려다보며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진왕 전하, 혹 신녀와 거래를 할 마음이 있습니까?"
배현석은 긴 손가락으로 휠체어를 가볍게 두드리며 물었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소서연은 배현석의 다리를 가만히 응시하더니 싱긋 미소 지으며 계속 입을 열었다. "신녀가 진왕 전하의 다리를 치료할 수 있사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맞은편에 선 욱이의 안색이 급격하게 일그러졌고,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는 두 눈에 날카로운 분노가 어려 있었다.
배현석의 차갑게 식은 눈빛도 이미 흥미를 잃은 듯했다.
'처음엔 재미있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모두 계획된 일이었을 줄이야. 그녀의 배후에 있는 사람이 황형일까, 아니면 잘난 조카들일까?'
소서연은 절대 근거도 없는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사람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특수부대 출신인 그녀가 귀의를 따라 의술을 배웠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는 배현석의 다리를 보자마자 대강 감을 잡았다.
배현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본 소서연은 그가 그녀의 말을 신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여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 "제 추측이 맞다면, 왕야의 다리는 한독에 중독되었을 겁니다. 온밤 극심한 통증을 참기 어려울 것이며, 벌레가 살을 물어뜯는 것처럼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무엄하구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욱이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배현석이 여전히 그녀의 말을 믿지 않자 잠시 고민에 잠긴 소서연은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가 배현석의 맥을 짚었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배현석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녀가 손을 앞으로 내밀 때 배현석은 손을 들어 막으려 하다, 이내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소서연을 흘깃 쳐다보더니 바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욱이는 허리춤에 매단 검을 뽑아 들고 소서연을 더욱 경계했다.
만약 그녀가 조금이라도 이상 행동을 한다면, 검은 바로 그녀의 목을 벨 것이다.
소서연은 배현석의 맥을 집중해서 짚어 보았다.
"왕야께서 중독된 독은 수한이라는 독입니다. 독은 처음에 사람의 몸을 빠르게 피곤하게 만들어 쉽게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그러다 독이 오장육부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되며 몸은 아래에서 위로 점차 감각을 잃게 될 것이고, 결국 독이 온몸에 퍼져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될 겁니다."
소서연은 배현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왕야, 신녀의 말이 맞습니까?"
소서연을 내려다보는 배현석의 눈빛이 약간 변한 것 같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가 말한 증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던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울창한 숲 사이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씨는 겉으로는 소서연의 안위를 걱정하는 듯했으나, 실제로는 그녀가 도적들의 손에 망가지는 모습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배현석은 소서연의 눈빛을 가만히 응시하며 명을 내렸다. "욱아, 처리하거라."
"네, 왕야."
욱이는 내키지 않았지만 왕야의 눈빛에 못 이겨 하는 수 없이 시신들을 처리하러 갔다.
시위 몇 명을 부른 욱이는 바닥에 쓰러진 도적의 시체를 능숙하게 치우고, 바닥에 남은 혈흔까지 흙으로 덮었다.
눈 깜박할 사이에 소서연의 전복된 마차를 제외하고 이상한 점을 찾아볼 수 없게 변했다.
소서연은 만족스럽게 입 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녀는 현명한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즐긴다.
그녀는 배현석을 향해 돌아선 뒤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신녀의 마차가 산에서 내려오던 중 전복되었고, 혼란 중 마부는 절벽 아래에 떨어져 목숨을 잃었습니다. 때마침 나타난 왕야께서 신녀의 목숨을 구해줬지만, 신녀가 마차 없이 저택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듯합니다."
눈을 가늘게 뜬 배현석은 태연하게 말했다. "낭자만 괜찮다면, 본 왕이 낭자를 저택까지 데려다 줄 수 있네."
소서연은 바로 그의 이런 대답을 기다렸다.
두 사람은 함께 마차에 올라탔고, 서씨가 안배한 사람들은 헛걸음을 하게 될 것이다.
넓고 화려한 마차는 두 사람이 타기에 충분했다.
배현석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말 본 왕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느냐?"
"네, 신녀가 약속한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것이옵니다." 소서연은 말을 하면서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그녀의 옷이 흐트러져 있지만, 엄숙한 얼굴로 하는 말은 묘하게 사람을 설득했다.
배현석은 흥미롭다는 듯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소씨 가문 적장녀가 몇 해 동안 저택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하던데, 어떻게 의술을 익혔지? 본 왕에게 거짓말을 한 대가가 어떤지 똑똑히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소서연은 시종일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스승님께서 사문을 드러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의술에 관한 정황을 자세히 말씀 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왕야께서 신녀를 도와주셨으니, 왕야의 다리를 낫게 하는 것으로 신녀의 의술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어떻게 낫게 해주겠다는 것이냐?"
소서연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치료에 귀한 약재가 필요합니다. 신녀가 처방전을 써드리면 사람을 보내 약재를 찾아오도록 하십시오. 독이 왕야의 몸에 오랫동안 잠식되었으니 독을 말끔히 없애려면 꽤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왕야께서는 매달 신녀를 찾아와 침을 맞으셔야 합니다."
배현석은 차갑게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머리가 영리하군."
매달 소서연을 찾아가야 한다는 건 그가 그녀의 목숨을 지켜주는 대가로 병을 치료해주겠다는 말이다. 정말이지 이보다 더 완벽한 계략은 없을 것이다.
소서연은 부인하지 않고 입 꼬리를 살짝 끌어 올려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욱이가 종이와 붓을 챙겨오자 소서연은 단숨에 처방전을 적어 내려갔다.
빠르게 달린 마차는 어느새 안정후부 대문 앞에 멈춰 섰다.
그들이 소서연을 찾으러 나선 사람들보다 더 빨리 도착한 것 같다.
"신녀를 무사히 집까지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녀도 최선을 다해 왕야의 다리를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소서연은 배현석을 향해 공손하게 예를 올린 뒤 마차에서 뛰어내려 빠르게 안정후부로 들어갔다.
챕터 목록
총 1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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