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제2화 속여서 데려왔어

"당장 그 촌스러운 옷이랑 싸구려 액세서리 다 벗어. 나랑 결혼하면 결혼식은 필요 없어." 머리 위로 차갑게 떨어지는 심재현의 목소리에 정하진은 고개를 들어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심재현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조건을 덧붙였다. "이 결혼은 우리 두 가문의 사람들 외엔 아무도 몰라야 해. 개발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까지는, 이혼은 물론이고 다른 스캔들도 절대 안 돼. 이 모든 조건을 지켜야 네가 원하는 돈을 받을 수 있어. 이해했어?"

심재현이 인내심을 완전히 잃기 전에, 정하진은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이건 구예린 대신 나랑 결혼하겠단 뜻이야?'

그가 마음을 바꿀까 두려워진 정하진은 황급히 목걸이와 귀걸이를 빼내고, 웨딩드레스를 벗었다. 그 순간, 그녀의 몸에는 속옷만이 남았다.

"이대로 다 벗은 채 나가고 싶어?" 심재현은 가볍게 비웃으며 그녀를 제지했다.

정하진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어쩔 바를 몰라 그대로 멍해졌다.

심재현은 무심히 주머니에서 반지 하나를 꺼내 들더니,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그 순간, 정하진은 어쩐지 황홀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반지가 마치 그녀의 손가락을 위해 특별히 맞춰진 것처럼 완벽하게 들어맞았기 때문이었다.

정하진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반지 값비싼 거죠? 소중히 간직했다가 이혼할 때 돌려드릴게요."

심재현은 아무 말 없이 정하진이 자신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그들은 결혼식도, 가족의 축복도 없이 그렇게 혼인신고를 마쳤다.

심재현은 정하진에게 신혼집의 열쇠를 건넸고 비서 문시우에게 그녀를 직접 데려다주라고 지시했다.

정하진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심재현은 그제야 친구 육현우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육현우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오랫동안 준비한 작전, 결국 성공했네.잘 속여서 데려온 거지?"

심재현은 결혼반지를 천천히 돌리더니 손바닥을 펼쳤고 그 위엔 정하진의 도톰한 입술이 남긴 붉은 립스틱 자국이 그대로 찍혀 있었다.

그는 의미심장하게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 "합법적인 부부 사이에, 속였다고 할 수는 없지."

한편, 심리상담실

"그러니까 네 말은, 한 남자가 널 만졌는데 오히려 공황 증상이 가라앉았다고?" 정하진의 친구이자 담당 심리상담사 윤수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메모하며 물었다.

정하진은 소파에 누운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에 있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심재현이 그녀를 구했고, 둘은 그대로 혼인신고까지 해버렸으니까.

벌써 두 달이나 지났지만, 정하진은 여전히 자신이 결혼했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정하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수현아, 나 정말 나을 수 있을까?"

정하진은 오랫동안 꾸준히 치료를 받으며 언젠가는 정상적인 연애와 결혼에 이어 아이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 목표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녀와 결혼한 사람은 심재현이었다. 절대 그녀를 건드릴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윤수현은 정하진의 손에 낀 결혼반지를 슬쩍 흘겨보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네 트라우마는 14년 전의 기억 상실과 관련이 있어. 그 기억만 돌아오면 치료는 어렵지 않아. 그런데 네 친구이자 심리상담사로서 충고 하나 하자면, 우선 병원으로 가서 정밀 검진부터 받아봐."

정하진은 벌떡 일어나며 불안한 눈빛을 보였다. "왜?"

윤수현은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넌 나랑 상의도 없이 갑자기 낯선 남자랑 혼인신고를 해버렸잖아. 나는 지금, 네 뇌에 정체불명의 이상이 생겼다고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있어."

정하진은 순간 입을 꾹 다물었고 윤수현의 독설이 마음을 콕콕 찔렀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

윤수현은 정하진의 아버지의 담당 주치의를 직접 소개해줬을 뿐만 아니라, 몇 달치 치료비도 대신 내줬었다. 친구로서 윤수진은 이미 그녀를 위해 너무 많은 걸 해줬다.

그러니 정하진은 더 이상 윤수현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구씨 가문은 약속을 지켜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다시 보내줬고 이제 정하진이 할 일은 단 하나, 개발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 후에는 심재현이 알아서 이혼을 요구할 테니까 계약도 자동으로 종료될 것이다.

상담이 끝난 뒤, 정하진은 윤수현과 작별 인사를 하고 곧장 근처에 있는 NTV 방송국 건물로 향했다.

정하진은 기상 캐스터로 일하고 있었고, 오늘은 당직이라 긴급 기상 보도를 맡기로 되어 있었다.

방송 준비 구역에서는 야간 뉴스의 메인 앵커 하예진이 동료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거 들었어? 심씨 가문, 얼마 전에 귀국한 그 후계자 말이야. 그 심재현이 오늘 인터뷰 때문에 방송국에 온대."

메이크업 수정을 하던 정하진의 손은 순간 멈칫했고, 입가에 바르던 립스틱이 휙 비뚤어졌다. '심재혁이 방송국에 온다고?'

결혼한 지 두 달, 그는 단 한 번도 신혼집에 오지 않았다.

모든 건 심재현이 원하는 대로 되었고 그들의 결혼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게다가 정하진은 업무 일정 때문에 매일 아침 이른 시간에 출근해야 했고, 둘 사이에는 삶의 교차점조차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직장에서 그와 마주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예진은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후계자는 무슨. 그 얘기 못 들었어? 심재현은 예전에 사고 나고 나서 두 귀 다 들리지 않게 됐다잖아. 그런데 심씨 가문에서 그 거대한 심씨 그룹을 한 장애인한테 넘기겠어?"

그러자 누군가가 비아냥거리듯 덧붙였다. "그럼 그냥 해외에 계속 있으면서 부모 돈이나 쓰지, 뭐 하러 굳이 돌아왔대?"

하예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동생한테 회사 뺏기긴 싫었나 보지. 그래서 명예 회복하겠다고 돌아온 거 아니겠어? 근데 좀 안타깝긴 해. 생긴 건 진짜 잘생겼잖아. 귀만 안 멀었어도… 한 번 꼬셔볼 만 했는데."

"예진아, 잘 생각해 봐. 그렇게 큰 사고였는데, 귀만 다쳤을 리가 있겠어?"

그러자 여자들 사이에서 키득키득 웃음이 퍼졌다.

한편, 반쯤 열린 문 너머에 서 있던 심재현은 아무런 표정 없이 그 모든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런 비웃음과 조롱은 이제 그에게 너무도 익숙한 일이었다.

옆에 있던 비서 문시우는 순간 얼굴을 굳히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제가 바로..."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메이크업 테이블에 조용히 앉아 있던 정하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에 들고 있던 파운데이션을 그대로 테이블 위에 쾅 하고 내려쳤다.

그 순간, 왁자지껄하던 공간이 정적에 휩싸였고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정하진에게로 쏠렸다.

계속 읽으시겠어요?

이어서 읽으면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이어서 읽기

챕터 목록

총 187장

  1. 1장제1화 돈이 필요해
  2. 2장제2화 속여서 데려왔어
  3. 3장제3화 사과해

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