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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장설희를 위해 아이를 낳아 줘
고현우의 매혹적인 입술을 비집고 나온 말과 감정을 읽어내기 어려운 담담한 눈빛에 진소연은 심장이 바닥까지 곤두박질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긴장감에 찢어진 원피스를 움켜쥔 그녀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고현우, 2년 동안 우리 진씨 가문을 빼앗기 위해 음모를 꾸민 것도 모자라 첫사랑과 결혼까지 했으면 됐잖아? 내 인생을 망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지 않고 날 대리모로 삼고 싶은 거야?"
차갑게 실소를 터뜨린 진소연은 당장이라도 미어질 것 같은 가슴에 괴로움의 눈물을 흘렸다. "웃기지 마. 장설희를 그렇게 많이 사랑하면서, 왜 나랑 결혼했어?"
고현우의 입가에 조소가 피어 올랐다. "정말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야?"
진소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모르는 척한다니?"
곧바로 얼굴에 웃음기가 싹 사라진 고현우가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2년 전, 설희가 우리 둘의 결혼을 방해하고 있다고 확신한 너의 아버지는 설희를 잔인하게 납치해서 가두었기 때문이지. 내가 왜 너와 결혼하고 또 이혼했는지, 이제 알겠어?"
충격에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은 진소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장설희는 분명 해외로 나갔었잖아?"
"해외로 나갔다고? 3개월 전, 내가 진씨 저택에서 설희를 발견했을 때, 말도 안 될 정도로 몸이 망가져 있은 것도 모자라 자궁까지 잃었어. 도망치던 도중, 설희 어머니는 설희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잃었어. 나한테 친어머니보다 더 소중했던 사람이야!" 고현우가 내뱉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 경멸과 혐오감이 가득 묻어났다. "진소연, 그러니 진씨 가문은 내 손에 망해도 되잖아?"
얼굴에 당혹감이 어린 진소연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는 것 같더니 당장이라도 해명하려 했다. "우리 아빠는 절대 그런 짓을 벌일 사람이 아니야. 뭔가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해..."
고현우의 얼굴에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계약서에 서명하고 설희를 위해 아이를 낳아 줘."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의 두 눈에 뚜렷한 증오가 담겨 있었다.
진소연은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고현우는 장설희를 이렇게나 많이 사랑하는 걸까?
무의식 중에 뒷걸음질 친 진소연은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와 수표를 갈기갈기 찢었다. "두 사람의 대리모가 될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더 낫겠어. 다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제안 입 밖에 꺼내지 마!"
고현우를 목숨보다 더 많이 사랑한 진소연인데, 어떻게 이와 같은 치욕을 참을 수 있겠는가?
고현우는 아지랑이처럼 볼을 타고 오르는 열감이 서서히 사라지는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지켜봤다.
타고난 요물인 진소연은 항상 생리적으로 그를 유혹하고 끌어당겼다.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현우는 그녀와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그녀를 품에 안고 말았다.
차갑게 식은 고현우의 두 눈에서 어떤 감정도 보아낼 수 없었지만, 눈을 가늘게 뜬 그가 초인적인 인내심을 갖고 말했다. "진소연, 아직도 입만 살았네? 네가 다시 나를 찾아와 애걸하는 모습을 기대하지."
그대로 호텔 밖으로 뛰쳐나온 진소연은 쌀쌀한 밤거리를 정처 없이 뛰기 시작했다.
고현우의 애틋한 손길이 다녀간 흔적과 그의 뜨거운 숨결은 차가운 비수가 되어 그녀의 가슴을 후벼 팠다.
주체할 수 없는 고통에 진소연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끼며 벽에 기대섰다. 추위에 이가 떨리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뜨거운 눈물이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천천히 고개를 든 진소연은 한때 자신의 보금자리였던 집, 진씨 저택으로 향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돌아갈 곳도, 집도 없는 처지에 놓였다.
아버지와 남동생의 병원비를 감당해야 했던 진소연은 좁고 습한 반지하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그녀의 인생은 시궁창에 빠졌다. 고현우는 그녀의 처참한 처지를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장난감에 불과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진소연은 회사가 파산한 날을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 사무실을 차지한 고현우는 이혼 협의서를 바닥에 던지고 구두 끝으로 누르며, 억지로 이혼 협의서에 서명하게 했다.
그녀가 서명을 거부하면 옥상에서 뛰어내린 그녀의 아버지 진상범은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3개월이 지났지만 진소연은 그날만 떠올리면 분노와 증오심이 불타올랐다. 아직도 무릎을 꿇고 이혼 협의서에 서명할 때 떨리는 손을 기억했다.
지옥과 같은 3개월 동안, 무수히 많은 밤이 진소연을 무너뜨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살아남아야 할 또 다른 이유를 찾았다.
돌이켜보면 진씨 가문이 몰락한 제일 큰 원인은 고현우에게 빠져 미련을 떤 그녀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고현우를 사랑한 시간은 고작 2년이 다가 아니었다.
어렸을 때, 진소연은 그녀를 구하다 큰 부상을 입고 하마터면 실명까지 할 뻔한 고현우에게 첫눈에 반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고현우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고씨 가문에서 버림받은 그는 야망에 휩싸여 진소연과 결혼했고 그녀를 차갑게 대했으며 증오했다.
진소연은 이제야 고현우가 진씨 가문을 파산하게 만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죄 없는 사람을 납치하는 천도를 거스르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휘청거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킨 진소연은 어둠이 뒤덮인 거리를 빠르게 가로질러 병원으로 향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녀는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하지만 식물인간이 된 그녀의 아버지 진상범은 그녀에게 어떤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대기업의 수장으로 존경 받던 그녀의 아버지는 3개월 만에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다.
비록 회사에서는 모두의 위에 군림하는 최상위 권력자였지만,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을 극진히 아끼고 사랑했으며, 특히 진소연을 제일 많이 예뻐했었다.
10년 전 어머니의 배신으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을 때, 아버지는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자상한 사람이 어떻게 그리도 잔인한 짓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부드럽게 내뱉은 진소연의 목소리는 애원에 가까웠다. "아빠, 아빠가 2년 전에 나한테 그랬었죠. 고현우는 장설희를 동생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나와 결혼하는 거라고. 아빠는 나한테 거짓말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 장설희를 납치한 적 없었죠? 제 말 맞죠?"
간절하게 말을 내뱉은 진소연은 불현듯 아버지의 곁을 오랫동안 보필해 온 비서를 떠올렸다. 만약 아버지가 정말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비서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진소연이 빠르게 두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몇 번의 통화로 우여곡절 끝에 알아낸 결과, 진씨 그룹이 파산한 그날, 두 비서 모두 해고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단순 우연일까?
미간을 살짝 찌푸린 그녀의 두 눈에 의심이 피어 올랐다. 고현우가 진씨 그룹의 세력을 틀어쥔 후, 아버지에게 충성한 직원들을 해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진소연은 조금 망설이는 것 같더니, 이내 두 비서를 찾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두 사람은 아버지가 장설희를 납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증인일지도 몰라."
"장설희? 아빠가 그 여자를 만난 적 있어." 그때, 병실 입구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소연은 깜짝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챕터 목록
총 13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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