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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No.2
그리니치에 위치한 스털링 저택은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영묘나 다름없었다.
서빈은 직원용 뒷문을 통해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레몬 광택제와 오래된 돈이 뒤섞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차갑고, 무미건조하며,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듯한 냄새였다.
그녀는 뒷계단을 소리 없이 빠르게 올라갔다. 맨발이 푹신한 카펫에 닿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밤의 흔적을 피부에서 씻어내야 했다. 낯선 남자의 냄새를, 나무 타는 연기와 비, 그리고 값비싼 스카치위스키처럼 어둡고 깊은 무언가의 냄새를 전부 씻어내야 했다.
욕실에 들어선 그녀는 샤워기를 틀어 뜨거운 물을 쏟아냈다. 피부가 새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물줄기 아래 서서, 살갗이 벗겨질 것처럼 느껴질 때까지 온몸을 문질렀다.
샤워를 마치고 거울에 서린 김을 닦아냈다.
목덜미에 남은 희미한 보랏빛 멍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키스 마크였다.
"멍청한 년."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을 향해 나직이 욕설을 뱉었다. "바보, 바보, 멍청한 년."
그녀는 두꺼운 컨실러를 꺼내 목에 꼼꼼하게 덧발랐다. 막 화장을 마쳤을 때, 침실 문이 벌컥 열렸다.
서준이 침실로 들어왔다.
그의 안색은 엉망이었다.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었고, 피부는 창백하고 축축했다. 그는 갈라쇼에 입고 갔던 정장을 그대로 입고 있었는데, 값비싼 원단은 구겨지고 얼룩져 있었다.
서빈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3년간 이어진 감정적 학대가 만들어 낸 조건반사적인 반응이 지긋지긋했다.
"어디 있었어?" 서준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날카롭게 물었다. 그의 손길은 거칠고 초조해 보였다. "내가 너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또 나한테 망신을 줬어, 서빈."
"몸이 안 좋아서 택시 타고 먼저 들어왔어요." 서빈은 빠르게 뛰는 심장을 애써 억누르며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 방해 안 하려고 손님 방에서 잤고요."
택시 안에서부터 되뇌었던 거짓말이었다.
서준은 코웃음을 쳤다. "항상 피해자인 척, 항상 연약한 척은."
그는 그녀를 지나쳐 욕실로 향했다. 그가 스쳐 지나갈 때, 서빈은 그의 목에 난 상처를 발견했다.
날카로운 손톱에 긁힌 자국이었다.
그의 목 옆, 귓불 바로 아래에 얇고 붉은 선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면도하다 베인 상처가 아니었다. 곡선을 그리는 상처는 영락없는 손톱자국이었다.
서빈은 상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목은 왜 그래요?"
서준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놀란 기색은 아니었지만,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몸을 굳혔다. 그의 손이 천천히 올라와 상처를 가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면도하다가 실수했어."
"어제 아침 이후로 면도 안 했잖아요." 서빈이 낮은 목소리로 지적하자, 서준은 몸을 돌려 그녀를 노려봤다. 그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동시에 계산적인 빛이 번뜩였다. "날 심문하지 마! 너 지금 편집증 환자 같아, 서빈. 숨 막힌다고."
그는 욕실 문을 쾅 닫아버렸다.
서빈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정적이 그녀를 감쌌다. 그녀는 편집증 환자가 아니었다. 그저 관찰력이 뛰어날 뿐이었다.
그때, 화장대 위에서 서준의 휴대폰이 '위이잉-' 하고 진동했다.
화면이 환하게 빛났다.
'S에게서 온 메시지.'
서빈은 숨을 헐떡이며 휴대폰으로 다가갔다.
'자기야, 입덧 때문에 죽을 것 같아. 약 좀 사다 줘.'
서빈은 순간 현기증이 일어 휘청거렸다.
S는 서준이 매니지먼트를 맡은 팝스타 서연이었다. 타블로이드 신문에서 천재라 불리는 여자, 서빈이 밤새워 작곡한 노래를 부르는 바로 그 여자.
입덧.
서빈은 얼굴에서 피가 싹 가시는 것을 느꼈다. 서준은 바람을 피우는 것을 넘어, 그녀와는 가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던 가정을 다른 여자와 꾸리려 하고 있었다.
욕실 문이 열리고 허리에 수건을 두른 서준이 나왔다. 그는 서빈이 휴대폰 근처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준은 달려들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서툰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재빨리 다가와 화장대 위에 놓인 휴대폰을 낚아챘다. 그의 움직임은 긴장감에 차 있었지만, 억지로 태연한 척하는 모습은 노골적인 폭력보다 더 위협적이었다.
"내 물건에 손대지 마." 그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손 안 댔어요." 서빈은 결백을 보이듯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화면이 저절로 켜진 거예요."
"나가." 서준은 그녀를 쏘아보며 말했다. "회사 가야 해."
"일요일인데도요?"
"일은 너처럼 한가하지 않아, 서빈."
그는 그녀를 밀치듯 지나갔다.
서빈은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그의 포르쉐가 저택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첫해에 흘릴 눈물은 이미 다 흘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침실을 나와 복도를 지나고 손님 방을 거쳐 동쪽 별채 끝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낡은 가구들이 하얀 천에 덮인 채 방치된 먼지투성이 창고가 있었다. 서준은 이곳에 절대 오지 않았다. 너무 더럽고, 너무 잊힌 공간이었으니까.
그녀는 낡은 그림 더미 뒤로 몸을 웅크리고 벽면 패널의 헐거운 부분을 눌렀다.
'딸깍' 소리와 함께 비밀 공간이 열렸다.
안에는 비좁은 공간이 있었다. 옷장보다도 작은 공간이었지만, 그곳은 온전히 그녀만의 영역이었다. 키보드, 노트북, 그리고 액자에 담겨 벽을 가득 채운 종이들.
그것들은 플래티넘 레코드가 아니었다. 플래티넘 레코드는 서연의 저택 벽에 걸려 있었다. 이것들은 그녀가 손으로 직접 쓴 악보들이었다. 현재 차트 1위를 휩쓸고 있는 히트곡들의 거칠고 지저분한 초안. 서명은 없었지만, 필체는 분명 그녀의 것이었다. 날짜도 적혀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존재한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음악 소프트웨어가 아닌, 보안 메시징 앱을 열었다.
그녀는 디지털 암흑세계의 연락책인 하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서준의 통화 기록, 신용카드 명세서, 지난 6개월간의 모든 기록이 필요해.'
하준의 답장은 즉각적이었다.
'천국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서빈은 까만 화면에 비친 자신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차갑고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협상 카드가 필요해. 지금 바로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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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목록
총 20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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