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9328/coverbig.jpg)
/0/98273/coverbig.jpg)
제2화 케이
유서를 본 순간 도지연은 어머니의 필체라는 걸 단번에 알아봤다.
유서에는 더는 고통을 감당할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말과 함께 도지연이 모든 재산 상속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순간, 도지연은 속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고 유서의 내용을 단 한 글자도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수 년 동안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하루 대부분을 혼수처럼 보내던 사람이 직접 유서를 썼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도지연은 유산을 포기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때, 옆에 있던 도소희가 비웃으며 말했다. "언니, 모든 걸 잃은 기분이 어때?"
그 말에 도지연은 분노에 피가 서린 눈으로 도소희를 노려보았다. 그 순간, 모든 게 선명하게 맞춰졌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이 자살을 한다는 건 도저히 말이 되지 않았다. 도소희와 육호성이 꾸민 수작이 분명했다.
심혜정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그 재산 덕에 평생을 가난에 허덕이던 도건호는 그녀와 결혼하여 하루 아침에 재계의 인물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모든 게 그때부터였다. 도건호가 최미향과 불륜을 저질러 도소희를 낳았음에도 끝내 심혜정과 이혼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바로 돈, 그 하나 때문이었다. 도건호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사랑이 아닌 권력과 돈을 위한 냉혹한 음모였을 뿐이다.
그 사실에 도지연의 눈가가 분노에 뜨겁게 타올랐다. 도씨 가문과 육씨 가문은 그녀 어머니의 재산을 남김없이 빨아 먹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녀마저 내던져 버렸다.
'엄마...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대체 그들이 엄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도지연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반드시 복수하고 말겠어. 진실을 세상에 밝혀서 너희들이 저지른 죗값을 똑똑히 치르게 할 거야. 그리고 절대 엄마의 재산을 단 한 푼도 받지 못 하게 할 거야. 엄마를 이렇게 만든 죗값은 반드시 피로 갚게 하겠어.'
그때, 도소희가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똑똑한 게 다 무슨 소용이야? 호성 씨 눈에는 그저 아무것도 없는 여자일 뿐이야. 배운 것도 없는 무식한 여자. 하지만 나는 달라. 명문대 출신에 해외 유학까지 다녀왔으니 나야말로 호성 씨의 아내가 될 자격이 있지."
육씨 테크는 수년간 제자리걸음이었다. 기술 개발이 한계에 부딪히며 위기에 처해 있었고 그 문제만 해결된다면 곧바로 상장이 가능했다. 그렇게만 되면 육씨 가문의 위상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치솟을 터였다.
그들의 마지막 희망은 IT 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케이였다. 몇 년 전, 케이는 단 한 줄의 코드로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에 그를 영입하는 자는 단숨에 업계의 왕좌를 차지하고 명문가인 하씨 가문을 뛰어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거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도소희는 더욱 거만한 태도를 취하며 말을 이었다. "이전에 유학 시절에 운 좋게 케이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분이 날 거의 제자처럼 아껴주셨지. 오직 나 만이 그 분과 연락을 할 수 있어."
"정말이야?" 도소희의 말에 육호성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업계의 거물들이 아무리 돈을 쏟아 부어도 찾지 못한 케이를 소희가 알고 있다고?'
이에 도소희는 육호성의 품에 파고들며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녀는 케이가 누군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허풍으로 육호성의 아내 자리를 얻을 수만 있다면 끝까지 사실을 밝히지 않을 생각이고 절대 그 거짓말이 들통날 리 없다고 확신했다.
그떄, 도지연이 짧게 코웃음을 치자 육호성이 고개를 홱 돌리며 경멸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배운 것도 없는 네가 케이가 얼마나 대단한 지 알 리가 없지. 어쨌든 내일 우린 이혼이야. 네 짐은 전부 빼서 내보낼 테니 다시는 우리 집에 얼씬도 하지마."
말을 마친 그는 도소희의 허리를 감싼 채 유유히 병원 복도를 떠났다.
도지연은 그들의 뒷모습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의 학력은 보잘것없었지만 어린 시절 극비리에 진행되는 천재 양성하는 프로그램에 발탁되었다. 이에 코딩은 언제나 그녀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도지연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냈고 화면에는 그녀가 3년간 공들여 완성한 코드의 한 줄이 떠 있었다.
전 세계가 찾아 헤매던 전설적인 인물 케이는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결혼 후, 그녀는 육씨 가문의 그늘에 숨어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육씨 테크를 위해 버그를 수정했다.
그리고 바로 어젯밤, 드디어 코드를 완성했다. 원래는 오늘 그걸 육호성에게 넘길 예정이었지만 이제 그 생각은 그저 말도 안 되는 농담일 뿐이었다.
도지연은 휴대폰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이 코드 하나면 육씨 테크를 정상으로 끌어올릴 수도 있고 반대로 그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었다.
한편, 병원 VIP실 앞에서 담당 의사가 하준우에게 하상원의 상태를 상세히 보고하고 있었다. "간호사들이 과민 반응을 보인 것 같습니다. 손가락이 움직인 건 단순한 반사 작용일 뿐이에요. 회장님께서는 여전히 의식이 없으십니다."
그 말에 나 비서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 불찰입니다, 도련님. 회장님께서 깨어나신 줄 알고 제대로 확인도 없이 섣불리 보고를 드렸습니다."
"아니, 누군가 일부러 헛소문을 퍼뜨린 거야. 내가 그룹을 상속하는 것을 방해하려는 수작이지."
그러자 나 비서는 고개를 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연숙 여사님 짓이겠군요."
정연숙은 하준우의 계모로 수년간 그룹의 통제권을 호시탐탐 노려왔다.
나 비서의 말에 하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 "그 분이 마음이 급해졌군."
"그래서 노부인께서 자꾸 도련님께 여자를 붙이시려는 거였군요. 저희 쪽에서 선수를 치지 않으면 정연숙 여사님 쪽에서 먼저 움직일 테니까요."
그 말에 하준우는 고개를 숙여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얼마 없어. 빨리 결혼할 여자를 찾아야 해.' 결혼은 정연숙이 또 다시 그런 짓을 하지 못 하게 막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문득 얼굴이 하나 떠올랐다. 바로 어젯밤의 그 여자였다.
"사람 하나 찾아줘."
"누구를 말씀이십니까?"
"어젯밤 그 여자." 하준우의 음성엔 조금의 주저함이 없었다.
한편, 도지연은 복도에 서서 어머니의 시신이 실려 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병원 복도를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VIP 병실 앞에 서 있었다.
그곳에는 짙은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고 단호하게 비서를 향해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남성의 날카로운 옆 선과 냉혹한 눈빛을 보자 도지연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 비서의 목소리가 복도를 가로질러 날아왔다. "알겠습니다, 하 도련님."
그 말에 도지연은 즉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하 도련님? 설마 하씨 가문...?'
동시에 하준우도 고개를 들어 도지연을 보았고 그의 차가운 눈빛에 도지연은 더욱 온 몸이 얼어붙었다.
그때, 나 비서가 고개를 숙이며 여자를 찾으러 나가겠다고 말하자 하준우는 고개를 저으며 낮게 말을 내뱉었다.
"그럴 필요 없어."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도지연에게 머물렀다.
챕터 목록
총 81장
/1/101823/coverbig.jpg)
/1/110912/coverbig.jpg)
/0/93687/coverbig.jpg)
/1/129330/coverbig.jpg)
/1/101825/coverbig.jpg)
/1/129329/coverbig.jpg)
/1/129395/coverbig.jpg)
/1/131294/coverbig.jpg)
/1/131303/coverbig.jpg)
/1/131304/coverbig.jpg)
/1/131302/coverbig.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