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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한비연 POV:
차는 익숙한 대저택 앞에 멈춰 섰다.
나는 뼈가 삐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차에서 내렸다.
권하준 전무는 나를 돌아보지 않고 먼저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그의 뒤를 따랐다.
문이 닫히고, 저택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씻고 내려와."
권하준 전무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울렸다.
그는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욕실로 향하는 동안, 나는 내 몸에서 나는 악취를 다시 한번 느꼈다.
역겨웠다.
나는 뜨거운 물을 틀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물줄기가 내 몸을 감쌌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차가웠다.
나는 거울 속 내 모습을 보았다.
초췌하고 핼쑥한 얼굴, 핏발 선 눈동자, 그리고 온몸에 새겨진 상처들.
나는 그 모든 상처를 바라보았다.
마치 내 몸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늙은 하녀가 새 옷을 들고 서 있었다.
"아가씨, 전무님께서 갈아입으실 옷을 준비해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내게 흰색 실크 드레스를 내밀었다.
나는 그 옷을 거절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혹시… 제 방에 있는 옷 중에 긴팔 원피스 같은 거 있을까요?"
내 목소리는 힘없이 떨렸다.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음… 오래된 옷들이지만, 찾아보겠습니다."
그녀는 내 방으로 향했다.
나는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내 방은 그대로였다.
마치 내가 일주일 동안 사라졌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나는 달라졌다.
나는 더 이상 그 방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얼마 후, 하녀가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낡은 검은색 긴팔 원피스가 들려 있었다.
"이게 제일… 무난한 것 같아서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원피스를 받아 들었다.
소박하고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나는 그 원피스를 입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마치 학생 같았다.
나는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나는 명문대 입학 허가서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입학하지 못했다.
권하준 전무의 곁에 남기 위해서.
그때는 그게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나의 잃어버린 젊음과 기회들을 생각했다.
나는 하녀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내 진심 어린 감사에 그녀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예전의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그저 그녀를 하인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나는 이제 그녀와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어쩌면 그녀보다 못한 존재였을지도 몰랐다.
나는 식당으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길에, 권하준 전무가 서 있었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꼴이 이게 뭐야. 일부러 촌스럽게 입은 건가?"
그의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촌스러워 보이나?
나는 그가 내가 그의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내 상처를 감추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 몸에 새겨진 끔찍한 흔적들을.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지나쳐 식당으로 들어섰다.
식당 안은 조용했다.
양부모님이 식탁에 앉아 계셨다.
두 분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양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그녀를 붙잡았다.
그녀는 유승연이었다.
권하준 전무의 비서이자, 그의 정략결혼 상대.
그녀는 심플한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지만, 목에는 값비싼 진주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나를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구, 한비연 씨가 무사히 돌아오셨네요. 회장님 사모님께서 얼마나 걱정하셨는지… 보십시오, 머리가 하얗게 세셨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위선이 가득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내가 가여운 피해자가 아니라 불효녀가 된 기분이었다.
양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그녀는 나를 끌어안고 울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품에 안겨 있었다.
유승연은 양어머니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나는 울 수 없었다.
내 눈물샘은 이미 말라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권하준 전무를 보았다.
그의 눈빛은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무정한 년.'
양아버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 다들 앉아서 식사하자."
양어머니는 눈물을 닦고 내게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비연아, 내가 네가 제일 좋아하는 해산물 수프를 준비했단다."
그녀는 내 손을 이끌어 자신의 옆자리, 양아버지와 나 사이의 자리에 앉혔다.
권하준 전무와 유승연은 맞은편에 앉았다.
완벽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모든 것이 그림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는 그 그림에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이었다.
식탁 위에는 온갖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나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내 눈은 음식에 고정되었다.
나는 마치 야수처럼 음식을 먹고 싶었다.
손으로 집어먹고 싶었다.
납치범들은 내게 썩은 음식을 주었다.
그마저도 며칠 동안 먹지 못했다.
나는 나뭇잎을 씹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나는 애써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젓가락을 들었다.
나는 천천히 음식을 입으로 가져갔다.
유승연은 여전히 나를 비웃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우아하게 음식을 집어 접시에 담았다.
마치 자신이 얼마나 교양 있는 사람인지 과시하려는 듯이.
권하준 전무는 나를 역겹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양어머니가 그를 툭 쳤다.
그는 마지못해 내 접시에 음식을 덜어 주었다.
나는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나는 전무님의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그가 덜어 준 음식을 보는 순간, 구역질이 올라왔다.
"욱, 웩-!"
나는 구역질을 멈출 수 없었다.
권하준 전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식당 구석으로 달려가 몸을 웅크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발 때리지 마세요! 제발…"
나는 살려달라고 빌었다.
모두가 나를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양어머니는 다시 눈물을 터뜨렸다.
"비연아, 너 혹시… 맞았니? 어디서 맞았어?"
양아버지가 권하준 전무를 데리고 내게 다가왔다.
양아버지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연민이 서려 있었다.
권하준 전무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어둡고 침울했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왜 이제 와서 나를 걱정하는지.
납치범들은 나를 고문하면서 그들이 권하준 전무에게 전화했다고 했다.
몸값을 빨리 가져오지 않으면 나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그때는 왜 나를 신경 쓰지 않았을까.
나는 썩은 음식을 먹는 것이 고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는 짐승의 먹이를 먹었으니까.
나는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내 목숨은 권하준 전무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는 나를 버렸다.
그는 나를 죽음의 문턱에서 외면했다.
그의 차가움이 나를 구역질하게 만들었다.
챕터 목록
총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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