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8273/coverbig.jpg)
제2화
서이현 POV:
권지혁은 얼어붙었다. 그의 얼굴은 불신으로 가득 찼다. “내 형이랑 결혼? 이현아, 장난치지 마. 농담 그만해.”
그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마치 내 말이 달래주면 그만둘 어린애 투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손길은 내 피부 위를 기어가는 거미처럼 느껴졌다. 나는 불에 덴 듯 팔을 뒤로 뺐다.
“농담 아니에요, 권지혁 씨.” 내 목소리는 발밑의 대리석 바닥처럼 차가웠다.
진실이 마침내 그의 두꺼운 두개골을 뚫고 들어간 듯했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안 돼. 허락 못 해.”
“당신한테는 투표권 없어요.” 나는 그에게 등을 돌리고 권도형의 펜트하우스 스위트룸 문을 닫았다. 내가 막 이사 온 새로운 집. 나의 집. 자물쇠가 잠기는 ‘딸깍’ 소리는 내가 들어본 소리 중 가장 만족스러웠다.
그의 미친 듯한 문자가 몇 분 뒤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현아, 문 열어. 얘기 좀 해야 해.`
`이건 실수야. 넌 날 사랑하잖아.`
`내가 바로잡을게. 약속해. 소희랑 조금만 더 시간을 줘. 그다음엔 우리 차례야.`
나는 답장 없이 각 메시지를 삭제했다. 우리 차례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기다리는 것을 끝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새로운 현실에 집중했다. 내가 결혼할 남자를 이해해야 했다. 나는 권도형의 수석 비서인, 나이 들고 엄격한 여성인 김 집사에게 그의 취향에 대해 물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 읽는 책의 종류, 저녁에 듣는 음악까지.
오후에는 최고급 남성 부티크에 가서 빈티지 커프스링크 세트를 찾았다. 중앙에 단 하나의 짙은 사파이어가 박힌 단순한 백금 사각형. 그것들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강력했다. 그처럼.
그날 저녁, 내 차가 저택에 도착했을 때, 헤드라이트가 한심한 장면을 비췄다. 권지혁이 서비스 출입구 근처의 대형 쓰레기통 옆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그는 물건들을 버리고 있었다. 내 물건들을.
내가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손으로 그린 작은 보석함. 우리가 함께 읽기로 했던 낡은 문고판 책들. 우리가 처음으로 교외로 여행 갔을 때 샀던 커플 머그잔. 그 모든 것이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그는 나를 보지 못했다. 나는 잠시 지켜보다가, 가슴속의 둔한 통증을 느끼며 운전기사에게 정문으로 계속 가라고 말했다. 그 고통은 이미 죽어버린 사랑의 유령, 메아리에 불과했다.
몇 분 후 그가 응접실에서 나를 발견했을 때, 그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이현아. 그냥… 낡은 물건들 좀 정리하고 있었어. 우리가… 상황을 정상으로 되돌릴 때를 위해 공간을 좀 더 만들려고.”
너무나 약하고 한심한 거짓말이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권지혁 씨.” 나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더 이상 쓸모없는 물건들은 버리는 게 좋죠.”
그는 내 말의 날카로움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불안한 기색이 얼굴에 스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반응하기 전에, 윤소희가 밝고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이현 씨! 여기 있었네요. 저녁 식사 같이 할까 기대하고 있었어요. 지혁 씨가 마라탕 사준대요!” 그녀는 내 신경을 사포처럼 긁는 애칭인 *이현아*라고 불렀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향해 돌아섰다. “도형 오빠 아직 안 돌아왔어요?”
“시카고에서 업무 처리 중이세요.” 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내일 돌아오실 거예요.”
권지혁이 나에게 재빨리 의문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내가 어떻게 형의 일정을 알았을까? 그는 아마 직원 중 한 명이 말해줬을 거라고 생각하며 금방 무시해버렸다. 그는 여전히 너무나 눈이 멀어 있었다.
“가요, 이현 씨.” 소희가 내 팔을 잡으며 고집했다. “다 같이 가요. 가족처럼.”
그 아이러니는 너무나 두꺼워서 질식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고, 내 마음을 산산조각 낸 남자와 그 원인이 된 여자와 함께 차에 앉아야만 했다.
식당에서 권지혁은 소희가 좋아하는 가장 매운 국물을 주문했다. 그는 악명 높게 위가 약해서 순한 맛 이상은 감당하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나는 그가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는 계속해서 물 잔에 손을 뻗으며 괜찮은 척 애썼다.
그를 돌보는 것은 예전에 내 몫이었다. 나는 그를 위해 공깃밥 한 그릇을 주문하고, 매운맛을 달래줄 우유를 챙겨줬을 것이다. 나는 그 자신보다 그를 더 잘 알았다.
이제, 나는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이거 정말 맛있지 않아요, 지혁 씨?” 소희는 그의 고통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행복하게 말했다. “더 먹어요.”
그는 고통으로 입술을 꽉 다문 채 억지 미소를 지었다. “맛있네.”
나는 그가 삼킬 때 움찔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손이 미묘하게 배로 움직였다. 나는 내 손을 무릎 위에 두고, 표정을 중립적으로 유지했다.
소희가 내 그릇에 야채를 좀 덜어주려고 했다. “안 먹네요, 이현 씨.”
권지혁의 눈이 나에게로 향했다. 그 안에는 조용한 간청이 담겨 있었다. 그는 내가 그를 도와주길, 이 자초한 고통에서 구해 주길 원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는 소희 앞에서 물어볼 수 없었다. 그는 강하고 완벽한 남자친구라는 환상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그의 사랑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쓰이는 화폐였다. 소희를 위해서는 불을 삼키고 고통 속에서도 미소 지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저 습관의 편리함만을 제공했을 뿐이다. 그는 나를 위해 고통받을 의향이 전혀 없었다. 단 한 번도.
갑자기, 큰 음료 쟁반을 든 웨이터가 우리 테이블 근처에서 비틀거렸다. 쟁반이 위태롭게 기울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챕터 목록
총 21장
/0/97852/coverbig.jpg)
/1/129528/coverbig.jpg)
/1/118498/coverbig.jpg)
/0/94237/coverbig.jpg)
/0/97765/coverbig.jpg)
/1/126778/coverbig.jpg)
/1/129329/coverbig.jpg)
/1/129395/coverbig.jpg)
/1/129328/coverbig.jpg)
/1/129330/coverbig.jpg)
/1/131294/coverbig.jpg)
/1/131303/coverbig.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