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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절망, 드디어 정신을 차리다
그 시각, 스위트룸 침대에서 남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몸을 괴롭히던 열기도 이미 사라졌다.
하지만 여자가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던 모습이 떠오르자, 낯선 느낌이 다시 밀려왔다.
당시 이성을 잃은 그는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이 진동했다.
휴대폰을 주워 발신자를 확인한 남자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할머니, 재미있으세요? 할머니가 보낸 여자가 무서워서 도망쳤고, 할머니 손자는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구요."
손자를 낳아달라고 미쳐버린 노인은 그의 동의도 없이 여자를 보내 임신부터 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가 여자를 침대에서 밀어 떨어뜨리자, 여자는 얼굴이 퉁퉁 부은 채 도망쳤다.
남자는 머리를 대충 쓸어 넘기고 욕실로 향했다. 거울에 비친 목과 가슴에 손톱으로 긁힌 자국을 발견한 그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휴대폰 너머에서 노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냐? 난 아무것도 몰라. 어머, 신호가 안 좋아서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아."
뚝, 통화가 끊겼다.
남자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샤워를 하고 나왔다. 바닥에 떨어진 팔찌를 발견한 그가 팔찌를 주워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가장 평범한 구슬로 만들어진 팔찌는 마치 길거리에서 파는 물건처럼 저렴해 보였다.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자 구슬에 새겨진 글자가 보였다.
Y&Y
아마 방금 그 여자가 남기고 간 물건일 것이다.
창가 소파에 앉은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가 자욱한 방에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시간 전, 1107호 스위트룸 밖 CCTV를 확인해."
비서는 남자의 지시를 받고 30분도 채 되지 않아 CCTV 영상을 보내왔다.
남자는 담배를 입에 물고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 속 여자는 비틀거리며 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1107호 스위트룸으로 들어갔다.
우연하게도, 그가 침대에 누워 고통을 견디고 있을 때, 여자는 1107호 스위트룸으로 들어갔다.
더욱 우연한 것은, 그는 이 여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유연정.
팔찌의 주인인 그녀였다.
남자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섹시한 얼굴이 살짝 움푹 들어갔다. 비서에게 새 정장을 보내달라고 지시하고 그는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창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쌀쌀한 10월 날씨에 유연정은 객실에 갇혀 복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절망에 빠졌다.
순결을 잃은 그녀는 피임약을 먹을 수 없었다. 만약 임신이라도 한다면, 그녀는 존재하지 말아야 할 아이를 데리고 살아야 할까?
한참을 침대에 누워있던 유연정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문을 두드렸다.
"심지혁 대표를 만나게 해줘. 그가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줄게. 나를 그만 놓아줘."
유연정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심지혁의 저택에 돌아온 지 다섯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밥 한 끼 먹지 못해 이미 탈진 상태였다.
문 밖에 있던 경호원이 잠시 멈칫하더니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 문을 열었다.
"대표님은 서재에 계십니다."
유연정은 지친 몸을 이끌고 서재로 향했다.
그녀는 저택의 인테리어를 둘러봤다. 구석에 놓인 화분, 난간의 색깔, 소파, 벽등, 가구까지. 이곳의 모든 것들은 그녀가 직접 꾸민 것이었다. 그때 그녀는 심지혁과 함께 사업에 성공하고 첫 목돈을 벌어 이 저택을 샀다.
그녀는 그와 함께 아이를 낳고 이 작은 집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을 상상했다.
하지만 하늘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서재에 도착한 유연정은 살짝 열린 문틈 사이으로 심지혁의 무릎에 작은 몸집의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자는 심지혁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와 얽혀 있었다.
남자의 큰 손이 여자의 가느다란 목을 움켜쥐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손을 놓았다.
여자는 수줍은 얼굴로 심지혁을 바라보며 그의 품에 안겼다. "아무리 그래도 유 아가씨가 한때 지혁 씨의 여자친구였잖아요. 그런데 당신이 유아가 씨에게 여러 남자를 찾아주고... 심지어 그중에는 병에 걸린 남자도 있었잖아요. 만약 임신이라도 해서 알려지만 회사 사람들이 당신을 양심없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까요."
심지혁은 여자의 곱슬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유연정은 건해에서 높은 연봉을 받고 있어, 나도 해줄만큼 해줬다고 생각해. 유연정이 너한테 그짓꺼리를 했는데 내가 유연정을 살려둔 것만으로도 은혜를 베푼 거야."
그가 여자를 깊은 눈빛으로 응시했다. "윤아야, 지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너야."
문 밖에서 유연정은 손톱이 손바닥에 박히는 것도 모른 채 분노와 고통이 무감각해진 심장을 다시 찢어발기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발소리를 들은 여자는 수줍게 심지혁의 품에 안기며 그를 흘겨봤다. "지혁 씨, 다른 사람이 보고 있잖아요."
심지혁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유연정을 보지 못하게 할까?"
고윤아는 주먹을 쥐고 심지혁의 가슴을 가볍게 때렸다. "그런 말 하지 마요. 무서워요. 당신은 그런 짓을 해서는 안돼요."
남자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아내의 말을 잘 들어야지."
유연정은 익숙한 얼굴이 낯설고 무섭게 변한 것을 발견했다.
자조적인 미소를 지은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든 사람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유연정은 고윤아를 심지혁의 품에서 끌어내고 그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챕터 목록
총 3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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