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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추근댐
"야, 진유림, 이 미친 년아!"
려보라의 날카로운 말투에 진유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재를 나섰다.
그녀가 서재에서 나오자마자 핸드폰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그녀의 제일 친한 친구인 심지은에게서 온 문자였다. "유림아, 진짜로 오늘 밤 크림슨 바에 안 갈 거야? 결혼은 명상 수련회가 아니잖아. 그 바보 같은 려욱성 때문에 친구까지 버릴 필요는 없다고! 제발! 잘 들어. 지훈 말로는 네가 안 오면 내 핸드폰을 물에 담근다고 했단 말이야."
진유림은 대답했다. "지은아, 네 말이 맞아."
심지은이 말했다. "무슨 뜻이야?"
진유림이 말했다. "나 이혼했어. 오늘부터 나도 빛이 나는 솔로거든."
잠시 멈칫한 후 채팅 창에는 느낌표가 가득 해졌다. 진유림은 심지은이 너무나 기뻐하며 흥분한 걸 느낄 수 있었다.
"10분! 10분만 시간을 줘! 네 영광스러운 복귀를 축하하기 위해 내가 직접 문 앞까지 갈게!"
서재 문이 쾅 닫힌 후에도 려보라는 여전히 믿을 수가 없어서 려욱성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저 여자가 기어오르게 그냥 내버려 둘 거야? 뒤로 끌고 가서 본때를 보여 주라고! 얼굴에 물이라도 뿌려야지!"
"그만해!" 려욱성은 차갑게 말했다. "너 좀 봐. 자존심은 어디 둔 거야? 넌 려 씨 집안의 일원이지 깡패가 아니라고!"
려욱성이 려보라를 그런 식으로 꾸짖은 것은 처음이었기에 려보라는 깜짝 놀랐다.
일에 몰두하던 려욱성을 본 려보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차는 못 가져가니까, 오늘 밤 환영 만찬에 오빠랑 같이 가도 돼? 슬기 언니를 못 본지도 오래 됐고, 너무 보고 싶거든."
려욱성은 짜증난듯 손을 흔들었다. "알았으니까 방해하지 마."
이를 승낙한 것으로 받아들인 려보라는 유쾌하게 방을 나갔다.
이제 고요해진 서재에서 컴퓨터 화면의 불빛만이 려욱성의 멍한 시선을 비췄다. 집중하려고 애썼지만 진유림이 려보라의 머리 위로 물을 붓는 장면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낯설고 짜릿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언제나 신속하고 결단력 있는 성격의 심지은은 10분 안에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8분 만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진유림을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내 절친의 자유를 위하여!"
진유림이 대답하기도 전에 심지은이 이미 샴페인 한 병을 터뜨렸고, 거품이 가득한 샴페인은 진유림의 옷을 흠뻑 적셨다.
"파티용 폭죽을 살 시간이 없어서 샴페인으로 했는데 괜찮지?"
진유림은 한숨을 쉬며 가방을 뒷좌석에 던졌다. 그때 그녀의 눈앞에 차키가 보였다. "개조해 봤는데, 어때? 몸이 간지럽지 않아? 네가 운전대를 잡은 지 4년이나 지났잖아!"
진유림은 심지은의 손을 옆으로 밀어내고 조수석에 앉았다. "별로."
심지은은 웃으며 엑셀을 밟았고, 그녀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알았어, 그럼. 사랑에 빠져 있던 사람이 어쩌다가 돌아온 거야?"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진유림은 지난 세월에 작별을 고하며 아득하게 몽상에 빠졌다.
"송슬기가 돌아왔어."
진유림의 말을 듣자 심지은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너랑 려욱성 말이야, 고집 하나는 똑같이 세다니까. 가끔 둘이 친척은 아닌지 친자 확인 검사를 받아야 되나 싶어. 왜 그렇게 쓰레기 수집에 집착하는 거야?"
심지은이 계속 떠드는 동안에도 진유림의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다.
송슬기에 대한 진유림의 기억은 어렴풋하지만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송슬기는 온화하고 냉정하며 사려 깊었다. 이런 송슬기의 특성을 진유림이 모방하기 위해 4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려욱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송슬기의 검정색 생머리, 드레스 스타일, 친절한 말투 등 모든 것을 모방했다.
하지만 가짜는 언제나 가짜일 뿐...
진유림은 가볍게 하품을 하며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아마 전과가 있는 여자한테 반하는 남자는 없기 때문이겠지."
심지은이 눈동자를 굴렸다. "아, 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너의 그 정신 나간 이복 동생이 네가 섬머델에서 비밀리에 훈련 받는 일을 감옥에 갔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않았어도 려욱성은 너와 말을 섞을 자격도 없었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제 넌 자유고 이혼도 했으니, 곧 있을 자동차 경주에 관심은 없어?"
"없어."
진유림은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몸을 기대었다. "밖에 나갈 기분이 아니야."
회의적인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심지은이 물었다. "진짜 가슴앓이를 하고 있거나, 그런 건 아니지?"
진유림은 침묵을 지켰지만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로 심지은은 모든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짜증이 나면서도 호기심이 생긴 심지은의 눈이 반짝였다. "라이언이 거기 있을 거야! 그 사람이 너랑 겨룰 수 있는 유일한 레이서였던 거 기억해? 가면 뒤 그의 얼굴이 궁금하지 않아?"
이스트코스트 레이싱 경주는 스릴을 추구하는 부유층과 특권을 누리는 아드레날린 중독자들이 모이는 고액 레이스를 위한 안식처였다. 모든 드라이버는 맞춤 개조한 자동차를 트랙에 가져왔고, 경쟁은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치열했다.
익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레이스 주최측은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오직 승패가 경주의 목표였고 누가 운전대를 잡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예외는 있었다. 레이서는 다른 레이서에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고 이긴 자는 그 자리에서 상대방더러 가면을 벗게 할 수 있었다. 가면을 벗는 다는 건 경주에서 나간다는 뜻이다.
진유림의 눈에서 불꽃이 일며 갑자기 기운을 차렸다. "좋아, 가서 확인해 보자."
그녀는 앞으로 몸을 숙여 의복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먼저 옷을 갈아입어야 해."
심지은은 진유림의 옷차림을 훑어보고는 빙그레 웃었다. "뭐야, 다른 평상복으로 갈아입겠다고? 그런 차림으로 바에 가면 사람들이 내가 웬 주부를 납치한 줄 알겠어!"
진유림은 눈썹을 찡그렸다. "누가 평상복이라고 그랬어?"
약 30분 후, 그들은 크림슨 바에 도착했다.
위층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관심은 구석진 부스에 앉아 있는 한 여성에게 쏠려 있었다.
그녀는 고전 영화에 나오는 매혹적인 여배우를 연상시켰고 강렬한 빨간색 프린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렇게 밝은 톤을 네 몸에서 참 오랜만이다." 심지은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완벽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데 항상 칙한 오피스 룩이나 심플한 드레스만 입고 다녔잖아. 마치 네가 려 씨 집안에 항상 출근해 있는 것 같았어."
진유림은 대답하지 않고 부드럽게 미소만 지었다.
결혼 초기에 그녀는 화려하게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려욱성의 어머니로부터 너무 화려하면 여성의 미덕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질책을 받았고, 려욱성 역시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시절이 지났다. 이제 려 씨 집안의 구속에서 벗어나 원하는 대로 마음껏 꾸밀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심지은의 전화가 울렸다.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바뀌었고 진유림에게 핸드폰을 보여줬다. "전화 받아야 해. 나갔다가 올게."
심지은이 떠나자마자 진유림은 손등에 묻은 와인 얼룩을 닦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손이 그녀의 어깨를 꽉 잡았다.
"안녕, 예쁜이. 혼자 왔어? 이 오빠가 같이 놀아 줄까?"
챕터 목록
총 23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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