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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10배로 갚을 지어다
그 따귀는 참을래야 참을 수 없었던 소혜월의 분노에서 비롯된 거였다.
지난 생에 그녀는 소효진에게 속아 운지원과 혼약을 맺었다. 그리고 이번 뱃놀이 역시 소효진이 꾸민 짓이었고 소혜월은 자칫 물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했다.
'소효진의 어두운 속내를 왜 전에는 알아 채지 못했을까.'
소효진이 진심으로 자신을 위한다고 생각했던 그녀였다.
생각을 마친 소혜월은 연민이 담긴 눈빛으로 손을 거뒀다.
"효정 언니. 저를 탓하지 마십시오. 언니를 때린 건 언니를 위한 일이니까요."
소혜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는 시골 출신이니 경성의 예법을 모르실 수밖에 없지요. 저는 소씨 가문의 적녀라, 이번에 언니에게 속아 외간 남자를 만난 일이 밖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소부의 여식들 전부가 구설수에 휘말리게 될 겁니다."
소효정은 얼굴을 움켜쥔 채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지원 오라버니와 네 사이엔 혼약이 있잖느냐..."
"혼약이 있더라도 혼인 전엔 만나선 안되지요. 언니는 시골 출신이시니 이런 예법을 모르시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소혜월이 말끝마다 '시골 출신'이라며 자신을 낮추자, 소효정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이 빌어먹을 년이, 감히 날 모욕하다니!'
소혜월은 소효정의 불만 어린 눈빛을 못 본 척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오늘 제가 언니를 때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언니가 저를 꼬드겨 외간 남자를 만나게 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면 언니가 염치도 모르는 여자라는 소문이 온 세상에 퍼지겠지요. 훗날 좋은 혼처를 찾기도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혜월이 넌 저하를 사모하고 있지 않더냐? 서신으로..."
"쉿."
소혜월이 소효정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언니, 그 서신 정말 제가 쓴 게 맞습니까? 정녕 언니가 대필하여 세자에게 전한 게 아니란 말입니까? 그건 필적으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니가 저를 대신해 세자 저하와 만났다는 사실이 밖에 알려지면 사람들은 언니와 제가 같은 낭군을 모시려 한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언니는 첩으로 살고 싶은 겁니까?"
'첩? 절대 안돼!'
소효정은 절대 첩실로 살 생각이 없었다.
'소혜월의 말에 일리가 있어. 내가 성급했나 보군, 계획에 허점이 이렇게 많았다니...'
소효정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리더니 이내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원래는 소혜월에게 외간남자와 밀회했다는 누명을 씌워 경성 제일 재녀라고 불리는 소혜월에게 굴욕을 선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소혜월의 말을 들으니 그렇게 했다가는 자신이야 말로 남의 첩으로 살기 위해 바둥거리는 여자로 비쳐질게 뻔했다.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됐다.
비록 그녀는 명문 세가 출신은 아니지만 외할아버지가 현령이니 어쨌든 사대부 집안인 건 확실했다. 그러니 절대 첩으로 살 수는 없었다.
소효정이 사색에 잠긴 모습을 보며 소혜월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 제가 언니를 때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언니가 저를 부추겼다는 걸 알게 되면... 언니와 언니의 친모는 경성에 발 붙일 곳이 없을 뿐더러, 목숨도 부지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소혜월의 외할아버지는 이 나라의 국공이다. 성질머리가 고약하기로 소문이 자자했고 수단이 매우 잔인했다. 경성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소효정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소혜월을 마주하고 있는 소효정은 아직은 소녀였다. 야심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은 젊은 탓에 속이 깊지 못했다.
게다가 소혜월은 집안의 적녀인 만큼 신분이 높았으니 소효정을 누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과연, 소효정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혜월아, 네 말이 옳다... 내가 생각이 짧았구나."
소혜월은 그녀의 애써 화를 참는 모습에 마음 속으로 냉소를 흘렸다.
'전생에도 소혜월은 가련한 연기로 운지원의 마음을 얻었지. 그 바람에 난 항상 낭패를 봤고...'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전생과는 완전히 달랐다.
"언년아, 어서 내 연지 곤지를 가져와 언니 얼굴에 발라드리거라. 손자국을 가려야 하지 않겠느냐? 사람들이 보면 수군댈게 분명하다."
소혜월이 언년에게 분부했다.
마음을 졸이고 있던 차에 소혜월이 다시 자신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자 소효진은 서서히 긴장이 풀렸다.
'여전히 멍청하군. 괜히 걱정했어.'
이어 그녀는 사양하지 않고 말했다.
"혜월아, 굳이 언년이를 시킬 필요 없다. 여긴 나도 잘 알지 않느냐. 내가 직접 연지를 찾아 바르겠다."
소혜월은 그 말을 듣고 전혀 개의치 않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효정은 얼굴에서 전해 지는 따끔따끔한 통증을 참으며 안방에 있는 화장대로 향했다.
그녀가 떠나자 언년이 불쾌한 얼굴로 소혜월에게 속삭였다.
"아가씨, 어째서 또 효정 아가씨가 직접 물건을 고르게 하십니까? 그분은 항상 비싼 것만 골라 가시고, 빌려가신 물건을 제대로 돌려주지도 않으시잖습니까. 지난번에 없어진 그 비녀도, 효정 아가씨가 다녀가신 뒤로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소혜월은 언년에게 입을 다물라 눈치를 줬다.
잠시 후, 소효진이 안방에서 나왔다. 화장을 마친 얼굴이었고 여전히 빨갛게 부어 있었지만 좀 전 보다는 많이 나아진 모습이었다.
"혜월아, 연지 고맙다. 난 다른 볼일이 있어 먼저 가야겠구나."
이어 소효정은 수혜월의 눈빛을 피하며 서둘러 떠나려 했다.
"잠깐만요."
깜짝 놀란 소효진이 고개를 돌렸다.
"혜월아, 아직 할 말이 남은 것이냐?"
"언년아, 내가 가장 아끼는 연지를 언니께 가져다 드리거라. 그리고 진주 연고도 챙겨드리거라. 고운 얼굴에 흉터가 남으면 안되지 않느냐."
언년은 내키지 않았지만, 소혜월이 시키는 일이니 마지못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선물을 한 아름 받아 든 소혜월은 기분 좋게 떠났다.
"아가씨, 화장대에 있던 산호 목걸이가 사라졌습니다. 아마..."
소혜월은 또다시 입을 다물라 눈치를 줬다.
유희는 이제 시작을 한 셈이다. 그러니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괜찮다. 소효정이 얼마를 가져가든 열 배로 갚게 할 터이니."
챕터 목록
총 8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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