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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악당들과 계약을 해지하고 아버지에게 가는 것이 정답
맹유렬과 진야성은 남석현을 찾으러 나갔고, 지우진과 사기현은 동굴에 남아 기다렸다.
유여월은 어색함을 느끼며 그들에게 등을 돌린 채 동굴 안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원시 사회의 주거 환경은 좋다고 할 수 없었지만, 동굴 입구는 굵은 나뭇가지와 덩굴로 보강되어 있어 차가운 바람을 대부분 막아주었다.
동굴 벽은 비교적 평평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바닥에는 두꺼운 마른 풀이 깔려 있었으며, 그 위에는 각기 다른 종류의 짐승 가죽 일곱여덟 장이 겹쳐져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아버지의 공로였다.
자색 등급의 떠돌이 수인인 아버지는 늘 밖을 떠돌면서도 하나뿐인 새끼 암컷만큼은 부족함 없이 살뜰히 보살폈다.
동굴 벽 한쪽에는 손질된 짐승 가죽이 스무 장 남짓이 쌓여 있었고, 돌 선반 위에는 먹을 것도 풍족했다. 말린 짐승 고기가 벽면의 절반을 가득 채웠고, 대나무 바구니에 담긴 들과일에는 아직까지 이슬이 맺혀 있었다.
유여월은 맑은 물이 가득 담긴 항아리 앞으로 다가갔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그녀는 참지 못하고 감탄했다.
물에 비친 암컷은 살짝 곱슬거리는 긴 보라색 머리와 정교하고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었는데, 새까만 눈동자는 별을 가득 담은 듯 반짝였다.
유여월은 이 몸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 그녀의 가학적인 성격과 너무나 대조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이 수인 남편들은 모두 책 속에서 잔인하고 악독한 악당들이었기에, 그들과 함께 있다가는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오직 아버지만이 무조건적으로 그녀에게 잘해주었고, 게다가 아버지의 등급은 이미 자색 등급이었다. 아버지가 위험에 처하기 전에 찾아낸 뒤, 이 수인 남편들과 계약을 해지한다면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별의별 맹수들이 출몰하는 환경이 열악한 수인의 세계였다. 강력한 수컷의 보호가 없다면, 전투력도 동물 형태도 없는 암컷은 혼자서 살아남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다.
이 세계는 수컷이 많고 암컷이 적어 암수 비율이 대략 1대 100 정도였고, 암컷 한 명은 보통 여러 명의 수인 남편을 두었다.
몇 명의 강력한 수인 남편들이 힘을 합쳐야만 연약하고 쉽게 목숨을 잃는 암컷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었다.
"또 무슨 새로운 놀이를 궁리하는 중인가?" 지우진의 목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는데, 듣기 좋은 음색에는 조롱이 섞여 있었다.
유여월이 돌아보자 지우진이 손가락으로 얼굴의 칼자국을 천천히 매만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짙은 녹색 눈동자는 불빛 아래서 차갑게 번뜩였다.
옆에 있던 사기현은 여전히 눈을 내리깔고 있었고, 은백색의 부드러운 긴 머리카락이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하얗게 질리도록 꽉 쥔 주먹만이 그의 감정을 드러냈는데, 그녀가 또 자신들을 괴롭힐 궁리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유여월의 목소리에 일말의 체념이 섞였다.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야."
바로 그때, 동굴 입구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맹유렬과 진야성이 돌아왔다. 두 사람은 앞뒤로 걸으며 함께 허리 높이의 나무통을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시냇가에서 떠 온 맑은 물이 담겨 있었고, 남석현이 그 물속에 잠겨 있었다.
유여월은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나무통 안의 인어 수인은 약간 곱슬거리는 연파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는데, 물에 흠뻑 젖은 머리카락이 뺨과 목에 달라붙어 옥처럼 새하얀 얼굴이 더욱 돋보였다.
자수정 같은 눈동자는 반쯤 떠 있었고, 긴 속눈썹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지만, 눈빛은 무서울 정도로 공허했다.
가장 끔찍한 것은 그의 인어 꼬리였다. 원래라면 촘촘한 비늘로 덮여 있어야 할 곳이 지금은 피와 살이 엉겨 붙은 상처로 가득했고, 핏물이 맑은 물속으로 천천히 번져나가는 모습은 마치 부서진 그림 같았다.
이런 혹독한 형벌을 겪었음에도 그의 이목구비는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정교했다. 오뚝한 콧날, 도톰한 입술, 거기에 유려한 턱선까지 더해지자 암컷보다도 눈부셨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고통과 절망에 짓눌려 죽음 같은 적막만이 감돌았다.
유여월은 둔기로 가슴을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그녀는 마침내 이 다섯 명의 수컷이 왜 역효과로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반려의 야수의 표식을 지우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원 주인의 하루하루 반복되는 고문은 그들의 육체를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존심마저 산산조각 내버렸다.
맹유렬이 나무통을 내려놓으며 일말의 온기도 없는 말투로 말했다. "만족해? 이 꼴이 어제 나무 불 방망이로 날 지졌을 때보다 더 재밌지?"
옆에 선 진야성의 얼음처럼 차가운 푸른 눈동자는 분노로 들끓었다. 하지만 계약의 속박 때문에 그는 화를 낼 수 없었다.
그가 주먹을 움켜쥐자 우두둑 소리가 났고, 힘을 너무 준 탓에 팔의 상처가 벌어지며 핏방울이 배어 나왔다.
사기현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은백색의 머리카락 아래로 드러난 호박색 눈동자에 처음으로 선명한 애석함이 드러났다.
그는 남석현과 사이가 가장 좋았고, 둘 다 원 주인이 집중적으로 '보살펴' 주는 대상이었다.
남석현의 모습을 보자 지우진의 얼굴에 떠올랐던 조롱이 금세 굳어버렸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끝으로 자신의 얼굴에 난 칼자국을 매만지며 복잡한 눈빛으로 나무통을 바라보았다.
유여월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목구멍까지 차오른 쓰라림을 억눌렀다. "너희가 날 증오하는 건 알아. 너희와 강제로 계약한 것도 내 뜻은 아니었어. 너희와 계약을 해지해 줄게."
맹유렬이 코웃음을 치며 검붉은 눈동자로 그녀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우리가 아직도 네 말을 믿을 것 같아?"
유여월이 말했다. "하지만 너희와 계약을 해지하는 데는 조건이 있어. 난 우기가 오기 전에 아버지를 찾아갈 거야. 너희가 가는 길에 날 보호해 줘. 누구든 잘하는 사람에게 한 번씩 피를 떨어뜨려 줄게."
유여월의 말은 천둥처럼 동굴 안을 뒤흔들었고, 다섯 수컷은 동시에 몸을 굳힌 채,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방금... 피를 떨어뜨려 주겠다고 했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맹유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고, 그의 검붉은 눈동자는 유여월의 얼굴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팍에 있는 전갈 야수의 표식을 짚었다. 그것은 유여월을 나타내는 반려의 야수의 표식이었다.
수인의 세계의 비정상적인 암수 비율 탓에 암컷의 지위는 절대적이었고, 암컷과 반려로 맺어지려면 두 단계가 필요했다.
첫 번째 단계는 바로 피의 계약이었다. 암컷이 자신의 피를 수컷의 미간에 떨어뜨리면 수컷의 몸에 암컷의 야수의 표식이 나타났다. 암컷은 동물 형태가 없지만, 나타난 야수의 표식은 암컷의 유전자가 지닌 동물 형태였다.
유여월의 아버지는 전갈 수인이었고, 때문에 유여월의 야수의 표식 역시 전갈이었다.
계약의 두 번째 단계는 바로 진정한 육체적 결합이었다. 이때가 암컷의 몸에 수컷의 반려 야수의 표식이 나타나고, 비로소 진정한 계약을 맺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원 주인은 아버지가 데려온 이 수인 남편들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첫 번째 단계의 계약만 진행한 상태였다.
현 상황에서 계약을 풀려면 암컷이 다시 한번 자신의 피를 다시 수컷의 반려 야수 표식 위에 떨어뜨려야 했는데, 열 번 피를 떨어뜨리면 반려 야수 표식은 완전히 사라진다.
하지만 암컷들은 손가락을 베어 피를 떨구는 것을 무서워했다. 게다가 암컷이 완전히 자발적이어야만 실현될 수 있었기에, 일단 계약을 맺고 나면 자신의 피부를 열 번이나 그어 피를 떨어뜨리며 계약을 해지하려는 암컷은 보통 없었다.
게다가 계약을 맺기만 하면 어느 단계든 상관없이, 일단 암컷의 반려 야수의 표식이 수컷의 몸에 각인되면 수컷은 암컷을 해칠 수 없었다. 해치려 했다가는 야수의 표식이 수컷에게 죽느니만 못한 고통을 안겨 주었다.
암컷의 고문을 견디지 못해 야수의 표식을 도려내는 수컷도 있었지만, 살아남을 확률은 극히 낮았다.
그럼에도 수컷은 암컷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수컷은 일단 성년이 되면 매년 몇 번의 발정기를 겪는데, 이 기간 동안 암컷의 진정을 받지 못하면 수컷 체내의 광폭 인자가 수컷을 미치게 만들었고, 진정하지 못하고 그런 상태가 계속되면 결국 몸이 터져 죽고 말았다.
챕터 목록
총 8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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