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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겁먹지 마
차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최고급 롤스로이스는 방음 효과가 극도로 뛰어나 바깥의 바람 소리와 곽씨 빌라의 불빛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진나연은 낡고 해진 캔버스 가방을 꼭 쥔 채, 넓고 푹신한 가죽 시트 위에서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그제야 그녀는 차 안에 양어머니 임향화뿐만 아니라, 낯선 젊은 남자도 함께 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자는 재단이 훌륭한 검정색 맞춤 정장을 입고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이 그의 옆얼굴을 비췄다. 깊은 눈매와 오뚝한 콧날을 가진, 시선을 압도하는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저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오랜 세월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해 온 자의 살벌하고 단호한 냉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평소에 성격이 불같기로 소문난 임향화조차도 이 순간만큼은 겁먹은 메추라기처럼 옷자락만 만지작거리며 차문 쪽으로 슬그머니 몸을 움츠렸다.
진나연이 계속해서 남자를 쳐다보는 것을 본 임향화가 마른침을 삼키며 어색하게 입을 열어 침묵을 깼다.
"나연아... 엄마가 소개해 줄게."
임향화는 맞은편의 남자를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분은... 네 친오빠, 배진영이야."
그 말에 진나연의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하얘지며 윙 하고 울리는 듯했다.
'나의 친오빠라고?'
그녀는 자리에 얼어붙은 채, 극심한 충격에 눈을 크게 뜨고 눈앞의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진나연은 철이 들 무렵부터 자신이 임향화가 고아원에서 입양된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20여 년 동안 수없이 친부모의 모습을 상상해 왔지만, 막상 그날이 닥치고 살아있는 친오빠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눈앞에 나타나자, 손발을 어디에 둬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미칠 듯한 기쁨이 아닌, 오직 막막함뿐이었다.
배진영은 멍하니 굳어 있는 소녀의 모습과 빨갛게 부어오른 눈가, 창백한 안색을 바라보며 깊고 검은 눈동자에 안타까움이 스쳤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소녀의 몸이 미세하게 움찔하는 것을 포착했다.
배진영의 숨이 탁 막혔다.
'망했다. 동생을 겁먹게 해 버렸구나.'
그는 출발하기 직전, 10년 동안 자신을 보좌한 심복 비서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간곡하게 당부하던 말이 번뜩 떠올랐다.
"영 대감! 아가씨를 모시러 가실 때 제발 그 조폭 두목 같은 살기를 좀 거두십시오! 절대 무표정으로 계시면 안 됩니다!"
"평범한 집안의 오빠들은 다 봄바람처럼 부드럽다고요! 평소에 조직의 배신자를 심문하는 눈빛으로 아가씨를 바라보시면, 아가씨가 놀라서 도망가 버릴 거라고요!"
배씨 가문은 운성에서 세력을 넓혀온 집안으로, 조상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흑도의 거물이었다. 지금은 점차 양지로 나왔지만, 뼛속 깊이 배인 잔혹함과 피비린내만큼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진나연을 찾기 전, 배씨 가문의 살벌한 식구들은 가족 회의를 열었는데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 소중한 여동생에게 집안의 흑도 배경을 절대 알려서는 안 된다고, 신분을 철저히 숨기기로 했다.
동생이 완전히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정을 쌓은 후에, 적절한 때를 봐서 천천히 사실을 밝히기로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배진영은 즉시 등을 꼿꼿이 폈다.
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얼굴 근육을 필사적으로 움직여 사람의 등골을 오싹하게 하던 눈빛 속 살기를 전부 억누르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장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를 억지로 지어 보였다.
"나연아, 겁먹지 마."
배진영은 말투를 늦추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너의 큰오빠, 배진영이야."
진나연은 남자의 미소가 다소 어색하게 굳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 속에는 조심스러운 기대와 환심을 사려는 듯한 빛이 담겨 있었다.
"그쪽이... 정말 제 오빠라고요?"
진나연의 목소리가 살짝 잠겼고, 손끝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전 20년 넘게 실종 상태였고, 세상에 닮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는데... 혹시 사람을 잘못 찾으신 건 아닐까요? 전 증표 같은 것도 없는데..."
"절대 잘못 찾을 리 없어."
배진영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품에서 서류 한 부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이건 유전자 감정 보고서야. 그리고 네 왼쪽 어깨 견갑골 아래에 동전만 한 붉은 모반이 있지?"
진나연은 그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 모반은 자신과 양어머니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보고서에 굵은 글씨로 쓰인 '혈연 관계 성립 확인'이라는 글자가 그녀의 눈에 강하게 박혔다.
오랜 세월 쌓여 온 서러움과 막막함, 그리고 곽주혁이 자신에게 안겨준 뼛속까지 시리던 냉기마저도, 이 순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따뜻한 물결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는 듯했다.
진나연은 정말로 자신의 친가족을 찾은 것이다.
그녀는 아무도 원치 않는 잡초가 아니었다. 그녀에게도 집이 생긴 것이다.
진나연은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시큰함을 억누르고 마침내 이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여전히 불안한 듯 캔버스 가방끈을 꼭 쥔 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 그럼 우리 부모님은요? 오늘 왜 오지 않으셨어요?"
그 나긋한 '오빠'라는 소리에 배진영의 심장이 쿵 내려앉더니 권총을 꺼내 하늘을 향해 축포라도 쏘아 올리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다.
하지만 그는 꾹 참아냈다.
배진영은 목소리를 부드럽게 유지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어머니께서 몸이 줄곧 안 좋으셨어. 오래전 너를 잃어버리고 마음의 병을 얻으셔서 장거리 이동은 무리시거든. 아버지는 운성에서 어머니 곁을 지키고 계셔."
배진영의 눈빛은 물이 뚝뚝 떨어질 듯 다정했다. "두 분이 직접 오시겠다고 고집하시는거, 내가 말렸어. 내가 먼저 널 데리러 온 거고, 둘째랑 셋째는 오늘 지방에 일이 있어서 함께 오지 못했어. 내일 아침 일찍, 두 녀석은 바로 비행기를 타고 널 보러 올 거야."
진나연이 깜짝 놀라 입을 열었다. "저에게 둘째 오빠와 셋째 오빠도 있어요?"
배진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넌 오빠가 셋이야. 집에서 막내딸이고."
배진영은 숨김없는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진나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음속 불안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주위의 지나칠 정도로 호화로운 롤스로이스 행렬을 바라보며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오빠, 우리 집은... 무슨 일 하세요?"
이 행렬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곽주혁이 외출할 때조차 이 정도로 과장되지는 않았다.
배진영의 눈꺼풀이 흠칫 떨렸다.
'올 것이 왔군.' 비서가 족집게처럼 집어준 예상 문제가 드디어 나왔다.
그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침없이 둘러댔다. "별거 아니야. 그냥 작으마한 사업을 하고 있어."
진나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작은 사업이라고요?"
"응, 작은 사업." 배진영은 태연한 표정으로 거침없이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집에서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난 평소에 회사의 이런저런 잡일을 총괄하고 있어. 올해 운이 좋아서 돈을 좀 벌었는데, 널 데리러 오는데 너무 초라하게 보일 수는 없어서 차 몇 대를 빌린 거야."
그러고는 설정에 살을 덧붙였다. "네 둘째 오빠는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고, 셋째 오빠는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야. 집안이 그럭저럭 부유한 편이니, 너는 전혀 부담 가질 필요 없어."
옆에 앉아 있던 임향화는 그 말을 듣고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업하는 부잣집이었구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임향화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스러운 표정으로 진나연의 손을 잡았다. "나연아, 엄마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천만다행이다 싶구나. 그때 그 많은 압박을 견뎌 내고, 있는 힘을 다해 너를 그 귀족 학교에 보내서 곽주혁이랑 같이 공부하게 한 거 말이야. 그 덕분에 넌 피아노도 배웠고, 네 개 국어도 익히게 됐잖니."
"이 엄마가 비록 가사도우미 일을 하고 있지만, 널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계집애로 키우진 않았어. 지금 네 몸매나 분위기를 봐. 배씨 가문으로 돌아가도 절대 친정에 폐 끼칠 일이 없을 거고, 이렇게 내세울 만한 재주가 있으니 아무도 널 무시 못 할 거다!"
양어머니의 말을 듣던 진나연은 가슴이 시큰해져 임향화의 손을 꼭 잡아 쥐며 말했다. "엄마, 제가 어느 집에 가든 엄마는 영원히 제 엄마예요. 그건 누구도 바꿀 수 없어요."
맞은편에서 모녀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배진영의 미간이 저도 모르게 깊게 찌푸려졌다.
'곽주혁?'
운성의 정보망에서 몇 번 스쳐 간 이름이었다. '경성 곽씨 가문의 그 분수도 모르는 도련님 말인가?'
배진영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향해, 진나연의 살짝 부어오른 종아리에 닿았다. 아까 서미옥이 캐리어로 세게 내리쳐 생긴 멍 자국이었다.
이어서 진나연의 붉어진 눈가와 싸구려 초라한 캔버스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배진영의 얼굴에 걸쳐 있던 온화한 가면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뼛속 깊이 배어 있던 흑도 실력자의 포악한 살기가 더 이상 억제되지 않고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차량 안의 온도가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나연아." 배진영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으며 섬뜩한 빛을 내뿜었다.
그는 멀어지는 곽씨 빌라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마치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아수라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그 놈들이 널 쫓아낸 거냐?"
남자가 주먹을 꽉 쥐자 손가락 마디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그의 머릿속에는 곽주혁을 강물에 처넣고 곽씨 빌라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백 가지 방법이 스쳐 지나갔다.
동생이 고개만 끄덕이면 바로 실행에 옮길 기세였다.
오늘 밤, 경성 곽씨 가문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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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5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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