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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사모님의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고주혁은 밤새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침 9시, 강유진은 어젯밤에 사람을 시켜 작성한 이혼 합의서를 받았다.
컴퓨터 앞에 앉은 강유진은 합의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었다.
프린터에서 종이가 천천히 밀려나왔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서류를 정리해, 스테이플러로 고정한 뒤 서명했다.
사인을 마친 그녀는 펜 뚜껑을 닫았다. 그 순간, 강유진은 펜 뚜껑과 함께 자신의 마음도 닫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택배를 예약했다. 정오 12시, 이혼 합의서는 대통령 관저에 있는 고주혁의 손에 정확히 전달될 것이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그녀는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물건은 너무 적어 캐리어 하나에 모두 담을 수 있었다.
3년 전, 그녀는 이 캐리어를 끌고 고주혁의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3년 지난 오늘, 그녀는 이 캐리어를 끌고 고주혁의 집을 떠날 것이다.
유종의 미는 갖춘 셈이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았다. 눈 밑은 푸르스름했지만, 항상 미간에 드리워져 있던 걱정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은 마냥 편안해 보였다.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손절은 빠를수록 좋은 법이다.
오전 10시 30분, 강유진은 캐리어를 끌고 별장을 나섰다.
유 아주머니는 호스를 들고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강유진이 나오는 것을 본 그녀는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사모님, 출장 가시는 겁니까?"
강유진은 그저 싱긋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 아주머니는 그녀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사모님은 매번 나를 볼 때마다 디퓨져 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장식품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거나, 많이도 물어 보셨는데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네."
강유진은 서류 봉투를 배달원에게 건네고 별장을 떠났다. 그녀는 떠나는 순간까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통령 관저.
고주혁은 막 국제 회담을 마치고 지친 얼굴로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해외 여러 국가와의 외교 관계에 위기가 발생한 지금, 그는 밤새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지금도 그는 머리가 어지럽고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10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는 배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의 위장은 강유진의 섬세한 보살핌에 온실 안의 화초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고주혁은 일에 목숨을 거는 워커홀릭이다. 잦은 출장과 식사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그는 위가 좋지 않았다.
그가 위장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강유진은 그에게 맞춰 위장에 좋은 음식들로 식단을 짜주었고, 3년 동안 세심히 그를 보살폈다.
그가 새벽까지 바쁘게 일해도, 도시락에는 항상 위장에 좋은 따뜻한 국물이 담겨있었다.
최근 해외에서 많은 일이 발생한 탓에 일로 바빴던 그는 끼니를 제때 해결하지 못했다.
비서 진세호가 손에 서류 봉투를 들고 문을 두드렸다.
"각하, 사모님께서 보내신 택배인 것 같습니다."
고주혁은 눈도 뜨지 않고 지끈거리는 미간을 누르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냥 거기에 놓아둬."
진세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 둔 뒤 나가려 했다. 그때, 고주혁이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
고주혁은 천천히 눈을 뜨고 밤샘으로 인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강유진에게 전화해서 담백한 음식을 만들어 오라고 해."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덧붙였다. "그리고 병원에 연락해서 장모님의 수술을 최대한 빨리 진행하라고 일러 둬."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그는 어젯밤 강유진이 차갑게 내뱉은 "필요 없어요."라는 말이 떠올랐고 그는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
최근 정신 없이 바쁘게 지내느라 그녀를 소홀히 한 것은 사실이다.
잠시 고민에 잠긴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날 대신해 선물도 하나 골라 줘. 저녁에 내가 직접 가져다 줘야겠어."
그는 최근에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강유진이 적당히 화를 풀고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기를 바라는 그였다.
고주혁의 말에 진세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주혁을 바라봤다.
'수술이라니?'
'사모님의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시지 않았나?'
"하지만, 강 노부인께서는 이미..."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 해외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고주혁은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더니 멍하니 서 있는 진세호에게 손짓을 한 뒤, 창가로 다가가 유창한 영어로 통화를 시작했다.
진세호는 사무실을 나서며 문을 닫고 중얼거렸다. "각하께서 요즘 너무 바쁘게 아닐까? 이렇게 중요한 일도 기억하지 못하시다니?"
방금 고주혁이 지시한 말을 떠올린 그는 강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린 후, 전화는 끊겼다. 그는 다시 별장에 전화를 걸었고, 유 아주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유 아주머니는 사모님이 출장을 갔다고 말했다. 진세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사모님은 전업주부 아니었나? 언제부터 출장을 다니기 시작한 거지?'
고주혁이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린 그는 고주혁이 화를 낼까 두려워 전복죽과 몇 가지 반찬을 주문했다.
고주혁이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10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집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불빛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넥타이를 풀고 팔에 걸친 정장을 현관 캐비닛에 올려놓았다.
불이 다 꺼진 집 안에는 그의 발소리만 들릴 뿐, 고요하기만 했다.
고주혁은 미간을 찌푸리고 스위치를 눌렀다. 그는 이런 차가운 느낌이 너무 낯설었다.
예전에는 그가 해외에 오래 머물러도, 강유진은 집 안에 불을 켜두곤 했다.
그가 어둠두운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봤다. 항상 씻어 놓은 과일이 준비되어 있던 식탁은 텅비어 이었고, 냉장고 안에는 아무 음식도 없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강유진의 연락처를 찾았다. 그녀의 프로필 사진 옆에는 알림 금지 기능이 켜져 있었다.
대화창을 열어 보니 마지막 대화 기록은 3일 전이었다.
수많은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 왜 전화를 받지 않는지, 언제 집에 돌아올 수 있는지, 왜 심장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이식해 주었는지 묻는 메시지였다.
당시 여진의 상황이 위급했기 때문에, 그는 그녀의 어리광을 받아줄 기분이 아니었다.
이미 장모님의 상황이 안정적이라는 것을 사전에 확인한 그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위로 스크롤을 올렸다. 온통 그녀가 보내 온 메시지였다.
그의 인터뷰 영상을 봤다는 둥, 병원 마당에 피어난 장미가 아름 답다는둥, 모두 사소한 일들이었다. 심지어 오늘은 어떤 과일을 먹고 싶은지, 날씨가 추우니 옷을 많이 껴입으라든 당부도 담겨있었다.
그는 간혹 '응'이라고 단답으로 답장을 하거나, 아예 무시할 때도 많았다.
그는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끼리 굳이 이런 의미 없는 말을 주고 싶으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손에 든 선물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물 한 잔을 따른 뒤, 긴 손가락으로 메시지를 입력했다.
[출장은 어때? 순조로워? 언제쯤 끝나는지 알려줘. 돌아오면 네가 즐겨가던 레스토랑으로 가자.]
잠시 고민에 잠긴 그는 자신의 평소 말투가 아닌 것 같아 메시지를 삭제하고 다시 입력했다.
[출장은 갔다며? 언제 돌아와?]
하지만 그는 또 다시 삭제했다.
[왜 아직도 안 돌아 와?]
그리고 전송했다.
컵에 담긴 물이 완전히 식을 때까지, 강유진에게선 답장이 오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전화를 걸었다. 세 번의 신호음이 울린 후, 전화는 끊겼다. 그는 다시 몇 번 전화를 걸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 드레스룸에는 그녀의 옷, 가방, 액세서리가 여전히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화장대 위에는 그녀의 화장품이 놓여 있었다. 몇 가지 눈에 띄지 않는 물건을 제외하고는 아무 이상도 없었다.
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유진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 봐."
'전화도 받지 않고, 메시지도 답장하지 않다니?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전화기 너머, 진세호는 잠시 멈칫했다. "사모님께서 출장을 가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디로 출장 갔는지 알아 내."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진세호는 빠르게 답했다. "사모님께서 언제부터 출장을 다니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방금 사모님의 스케줄을 확인했는데, 항공권 구매 기록이 없습니다."
진세호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사모님께서 어머니 일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신 것 같습니다. 아마 친구 집에 며칠 머무시게 아닐까요?"
사모님은 사소한 일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일은 정말 대통령이 비난받아 마땅했다. 가족의 생명이 걸린 일에 대통령은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내렸다. 그러니 사모님께서 화를 내는 것은 물론이고, 이혼을 요구해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서인 그는 고주혁에게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내일 당장 비서 일을 때려칠게 아니라면 말이다.
고주혁이 한참이나 답하지 않자 진세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며칠 동안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분이 좋아지면, 그때 사모님께 사과하는 건 어떻습니까?"
고주혁은 차갑게 실소를 터뜨렸다. 그는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아무래도 널 아프리카로 한 달 동안 파견 보내야 할 것 같군!"
진세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은 고주혁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나더러 사과하라고?'
'아주 삐치는게 습관이 된 모양이군,'
'내가 그동안 너무 오냐오냐 해준 탓에 그 여자가 아무래도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모양이야.'
답장이 없는 대화창을 바라보던 그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냉전? 좋아!'
그는 허리춤에 손을 얹더니 다른 손으로 으스러뜨릴 듯 휴대폰을 꽉 쥐었다.
[네가 뭘 잘 못했는지 깨달았을 때, 다시 날 찾아 와.]
그는 빠르게 메시지를 전송한 뒤, 휴대폰을 침대에 던지고 욕실로 향했다.
챕터 목록
총 37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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