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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우리 헤어져
시하린이 구시가에 위치한 셋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
그녀는 비좁은 문앞에 서서 발치에 놓인, 너무 닳아 모양이 살짝 변형된 회색 남성용 슬리퍼를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건우의 것이었고, 신발 밑창에는 그녀가 낮에 걸레질을 할 때 남긴 물 자국이 아직 묻어 있었다.
세면대 위에는 파란색과 분홍색 플라스틱 양치 컵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침대 협탁 위에는 그녀가 아껴 입고 아껴 먹으며 돈을 모아 그에게 사준 면도기가 놓여 있었다. 아직도 옷걸이에는 너무 빨아 하얗게 색이 바랜 그의 재킷이 걸려 있었다...
모든 물건들이 이곳에 건우라는 남자가 살았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와 건우는 두 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갑자기 휴대폰이 진동했다.
시하린은 기계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안건우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늘 밤에 중요한 고객을 접대해야 해서 못 돌아갈 것 같아. 먼저 자, 내일 다시 설명해 줄게.]
'고객을 접대?'
'송명희와 함께 있으려는 건 아니고?'
'그것도 아니면, 그와 곧 약혼할 하씨 가문의 영애와 함께 하는 건가?'
'거짓말이 이미 나에게 들통 났는데, 그는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계속 나를 속일 수 있지?'
시하린은 시큰거리는 눈을 비비며, 단 몇 글자만 답장했다.
[우리 헤어져.]
다음 날 아침.
시하린은 평소처럼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다.
그러나 현실의 따귀는 그녀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매섭게 날아왔다.
오전에는 한약방 사장은 문 앞을 막아서며 그녀더러 앞으로 나오지 말라고 했고,
점심에는 마라탕 노점 주인이 그녀에게 월급을 정산해 주며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했다.
오후에 그녀가 오피스텔로 달려갔을 때, 청소 담당 팀장은 아예 그녀의 이름을 근무표에서 지워버렸다.
하루 만에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모두 잃었다.
참다 못한 시하린이 청소 팀장의 팔을 덥석 부여잡았다.
"선영 언니,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누군가 뒤에서 저를 괴롭히고 있는 거 맞죠?"
유 팀장은 사방을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하린아,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거든. 네가 어젯밤에 안 도련님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소문이 지금 이 바닥에 쫙 퍼졌어. 널 고용하는 것은 곧 안씨 가문과 척을 지겠다는 뜻인데 누가 감히 널 고용하겠니? 우리 같은 작은 회사가 어떻게 그런 위험을 감수하겠어?"
말을 마친 그녀는 마치 시하린과 엮일까 봐 두려운 듯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시하린은 오피스텔 밖에 서있었는데 온몸에 한기를 느꼈다.
안건우는 그녀를 속이고 바람을 피운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녀에게 살길조차 남겨주려 하지 않았다.
그녀가 분노를 삭히기도 전에, 휴대폰이 다급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화면에는 고향 마을 보건소의 전화번호가 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시하린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하린아, 네 어머니 체내에 남은 독이 또 발작했어. 밤새 통증에 시달렸는데, 이제는 탈수 증세까지 보여."
전화기 너머로 평소 친하게 지내던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빨리 자지호심액을 써야 한대. 안 그러면 오늘 밤에 독소가 심장까지 퍼져서 고비를 넘기지 못하실 수도 있대."
시하린은 목이 메어왔다. "당장 약을 살게요! 제발 먼저 저희 엄마 상태 좀 안정시켜 주세요!"
과거 할아버지가 누군가와 시 한의사 협회 회장 자리를 두고 다툰 적이 있었다. 상대방은 정정당당하게 이길 수 없게 되자 그녀의 집 우물에 독을 풀었다.
할아버지는 그 일로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지도 3년을 버티다 돌아가셨다.
이제 어머니만 남았는데, 중독 증세가 가장 가벼웠음에도 불구하고 독이 몸을 망가뜨린 탓에 몇 년 동안 시하린이 지어주는 한약으로 간신히 목숨을 연명하고 계셨다.
일단 독성이 도지면, 반드시 값비싼 수입 약제를 써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전화를 끊은 시하린은 즉시 잔액을 확인했다.
자지호심액은 한 병에 160만원인데, 그녀의 카드에는 60만원 밖에 없었다.
엊그제 그녀는 분명 월급으로 160만원을 받았었다.
하지만 건우가 자신의 창업 회사에 초기 자금이 조금 부족하다고 해서, 그녀는 당시 단돈 10원도 남기지 않고 전부 그에게 이체해 주었다.
시하린은 이를 꽉 깨물고, 한때 상단에 고정해 두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한참 동안 울렸지만, 끝내 아무도 받지 않아 자동으로 끊어졌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다섯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 마침내 전화가 연결되었다.
"건우야, 내가 엊그제 너한테 보낸 돈..."
"시하린 씨, 좀 적당히 하시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것은 건우의 목소리가 아니라, 몹시 짜증이 난 젊은 남자의 호통이었다.
안 도련님의 신분을 알았으면 좀 주제 파악을 하셔야지,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지 마십시오! 안 도련님은 지금 송명희 씨와 프랑스 요리를 드시고 계시니, 당신처럼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자를 상대할 시간 없습니다!"
"그 사람한테 매달리려는 게 아니라, 내 돈을 돌려받고 싶을 뿐이에요." 시하린은 휴대폰에 대고 소리쳤고, 그녀의 목소리는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그건 우리 엄마 목숨을 살릴 돈이라고요! 그 사람한테 내 돈을 돌려달라고 해요!"
하지만 상대방은 듣지도 않고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시하린은 시끄러운 교차로에 서 있었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물밀듯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목숨 바쳐 아껴주고 보살핀 남자가, 결국 가장 날카로운 칼이 되어 그녀의 가슴을 무참히 찌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스무 살 되던 해, 그녀는 뒷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숨만 간당간당하게 붙어 있던 안건우를 업고 집으로 돌아왔고, 사흘 밤낮을 눈 한 번 붙이지 못한 채 염라대왕의 손에서 그를 구해냈다.
그가 깨어난 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을 때, 그녀는 그 말을 믿었다.
그녀가 그를 먹여 살리겠다고 하자,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앞으로 평생 그녀에게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한성으로 와서 창업하고 싶다고 하자, 그녀는 그를 따라 이곳으로 와서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세 탕씩 뛰며 번 돈을 꼬박꼬박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가 입을 열기만 하면, 그녀는 단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녀가 아껴 먹고 아껴 입으며 갖다 바친 진심은 그저 조난당한 안씨 가문 도련님의 유희거리에 불과했다.
시하린은 화가 난 나머지 온몸이 떨렸지만, 억지로 눈물을 참아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앞으로 남자한테 일전 한푼이라도 더 쓴다면 나는 개야!'
하지만 당장 어머니의 약값이 100만원이나 모자랐다.
시하린은 심호흡을 하고 미주 언니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미주 언니는 고급 개인 일거리를 전문적으로 소개해 주는 사람으로, 인맥이 아주 넓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상대방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도련님 심기를 건드려 놓고 감히 나한테 연락을 해? 앞으로 이런 일은 무서워서 너한테 못 맡기겠다."
시하린은 휴대폰을 꽉 쥐고 애원하며 말했다. "미주 언니, 어젯밤 일은 사고였어요. 언니한테 폐를 끼친 거 알아요. 하지만 저 정말 돈이 급해서 그래요. 제발 한 번만 더 도와주세요. 궂은일, 힘든 일 다 할 수 있어요!"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끝내 마음이 약해진 듯 그녀가 말했다.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하나 있긴 해. 고용주가 3년 동안 계약 결혼할 사람을 찾고 있는데, 입이 무겁고, 예의 바르고, 사람을 잘 돌볼 줄 아는 여자를 원해. 할 거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거야. 나중에 또 무슨 말썽 피우지 말고."
시하린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고, 자존심마저 안건우에 의해 진흙탕 속에 처박혔다.
그녀는 엄마마저 잃을 수는 없었다.
"할게요!"
챕터 목록
총 8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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