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807/coverbig.jpg)
제2화 내가 성대한 결혼식을 열어줄게
전화를 끊은 후, 소지윤은 온몸에 힘이 빠진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초점 없는 눈으로 응급실 문 쪽만 멍하니 응시했다.
전화 너머의 남자는 문시혁이었다. 그는 소지윤의 아버지와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우정을 나눈 사이로, 그녀보다 겨우 몇 살 많을 뿐이었다.
과거, 소지윤의 아버지는 임종 직전 그녀의 손을 꽉 붙잡고 서용준은 평생을 맡길 만한 사람이 못 된다며, 그녀가 해성의 문시혁과 결혼해야만 자신이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소지윤은 사랑에 눈이 멀어 아버지의 뜻을 단호하게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오만하게 문시혁에게 전화를 걸어 쏘아붙이기까지 했다.
"헛된 꿈 꾸지 마요. 난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평생 당신과 결혼할 일은 없을 거예요!"
당시 문시혁은 그녀의 말에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그저 낮게 웃으며, 나중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든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말했다.
단, 조건은 자신과 결혼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이혼한 몸이 되더라도 상관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때의 소지윤은 문시혁이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몇 마디 욕을 퍼붓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녀는 서용준이 곁에 있는 한, 평생 이 늙은 남자의 도움이 필요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한때 그토록 싫어했던 이 남자가 연이를 살릴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40분 후, '문' 자 마크가 새겨진 헬리콥터가 병원 옥상 헬기장에 착륙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가 직접 혈장 보온 상자를 끌고, 다섯 명의 의료진과 함께 황급히 헬리콥터에서 내려 응급실로 뛰어 들어갔다.
응급 처치 시간이 일 분 일 초 흘러갈수록, 소지윤의 마음은 마치 펄펄 끓는 기름에 지져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한 시간 후, 마침내 응급실 문이 열렸다.
그녀는 쏜살같이 달려가 격앙된 채 의사의 팔을 붙잡았다. "선생님, 제 딸은..."
"죄송합니다."
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의사는 한숨을 쉬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해성의 혈장과 전문의들이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입니다만, 그래도 한발 늦었습니다..."
소지윤은 멍하니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벼락이 여러 번 내리친 것처럼 쾅쾅 울렸다.
"용성의 혈장과 전문의들을 강제로 빼돌리지만 않았어도, 아이는 절대 죽지 않았을 겁니다..."
의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소지윤을 깊이 바라보았다. "보호자님, 들어가서 아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세요..."
소지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겨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병상 위에는 연이의 작고 마른 몸이 누워 있었고,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음에도 숨을 쉴 때마다 복부에 잔뜩 힘을 주어야 했다.
아이는 그곳에 누워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두 눈동자만은 여전히 물기를 머금은 채 소지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어린아이는 그녀의 등 뒤쪽을 바라보며 모기 소리만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빠는... 안 왔어?"
소지윤은 순식간에 코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연이의 작은 손을 꽉 움켜쥐고 목이 멘 소리로 겨우 말했다. "아빠는... 많이 바빠..."
"아빠... 또 백 이모랑 같이 있는 거지?"
연이는 눈을 들어 소지윤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도 알아. 나 곧 죽는 거."
"아빠는 엄마도 나도 사랑하지 않아. 나 이제 아빠 딸 하기 싫어..."
"엄마, 연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
소지윤은 이미 울음이 북받쳐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봐, 엄마가 다 들어줄게!"
"엄마... 아빠랑 이혼해."
어린아이는 맑고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엄마, 난 아빠가 백 이모한테 가방 사주는 것도 싫고, 나 하교할 때 데리러 오지 않는 것도 싫고, 내 뺨을 때리는 것도 싫어... 엄마는 나중에 엄마한테 꽃도 사주고, 퇴근할 때 데리러 와주고, 엄마를 때리지 않는 남자를 만나, 알았지?"
소지윤은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래, 엄마가 약속할게, 꼭 약속할게!"
"다행이다..."
연이는 아주 힘겹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소지윤의 손가락을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엄마, 연이는 엄마가 앞으로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 말을 끝으로 아이의 손은 소지윤의 손바닥에서 미끄러져 툭 하고 무겁게 떨어졌다.
"연아―!"
응급실 안에는 소지윤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오랫동안 멈추지 않았다.
세 시간 후, 소지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직원이 건네는 작은 유골함을 받아 들었다.
유골함에는 아직 연이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 상자를 꽉 끌어안았지만,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눈물이 이미 모두 말라 버린 것만 같았다.
소지윤이 화장터에서 나오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연이의 유골함 위에 작은 꽃화환을 올려놓은 뒤, 통화가 연결된 휴대폰을 소지윤에게 건넸다. "저희 대표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답니다."
휴대폰을 건네받은 소지윤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세요."
그녀의 감정에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하는 듯, 전화 너머 남자의 목소리는 한없이 나지막했다. "미안해. 도움이 되지 못해서."
소지윤은 씁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말씀 마세요, 보내주신 분들은 충분히 빨리 오셨어요..."
어리석었던 건 소지윤 자신이었다.
만약 그녀가 서용준의 진면목을 조금 더 일찍 알아채고 그에게 희망을 걸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모든 것이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소지윤은 코를 훌쩍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비록 연이는 살리지 못했지만, 제 약속은 여전히 유효해요. 약속대로 당신과 결혼할게요. 하지만 시간이 필요해요..."
전화 너머의 남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낮게 말했다. "내가 널 도운 건, 그저 여섯 살짜리 아이의 목숨을 살리고 싶어서였어. 네가 한 약속과는 상관없어."
"나와 결혼하고 싶지 않다면 억지로 할 필요 없어."
"억지 아니에요."
소지윤은 눈을 감은 채 차분히 말을 이었다. "당신이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약속을 지키고, 이런 순간에 제게 가장 큰 도움을 주셨으니, 저도 약속을 어기지 않을 거예요."
또 한 번의 짧은 침묵이 흐른 뒤, 전화 너머로 남자의 약간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지금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시찰 중이라 보름 뒤에나 귀국할 수 있어."
"그동안 딸아이의 장례를 잘 치르고, 지금의 결혼 생활도 깨끗이 정리해."
"만약 보름 뒤에도 네가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내가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게."
챕터 목록
총 1장
/1/129327/coverbig.jpg)
/1/112084/coverbig.jpg)
/0/95007/coverbig.jpg)
/1/125396/coverbig.jpg)
/0/93016/coverbig.jpg)
/1/103806/coverbig.jpg)
/1/129329/coverbig.jpg)
/1/129395/coverbig.jpg)
/1/129328/coverbig.jpg)
/1/129330/coverbig.jpg)
/1/131294/coverbig.jpg)
/1/131303/coverbig.jpg)